6
우리는 삼도순찰사의 오만 대병이 적병 사오 인의 칼에 흩어진데 들뜬 비위를 잠깐만 참고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부원수 신각(申恪)에 관한 우습고 슬픈 이야기를 하나 더 듣자.
애초에 도원수 김명원(金名元)이 한강을 지킬 때에 부원수 신각(申恪)의 의견은. 「우리 군사가 오합지중이 되어서 싸움을 당하게 되면 도망하기가 쉬우니. 차라리 전군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가서 배수진을 치자. 그러하면 뒤로 도망할 곳이 없으므로 부득이 적과 사생을 결할 것이요. 그리하면 적병은 천리 행구에 피곤한 군사요. 우리는 잘 자고 잘 먹은 군사일뿐더러. 우리편은 먼저 험한 곳을 잡아 진을 치고 있을 것인즉 아직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새로 서투른 지방에 오는 객군인 적병을 싸워 이기는 것은 심히 쉬운 일이다. 그러나 한강을 앞에 두고 이쪽에서 적을 막으려 하면. 젖병은 한강 저편에 자리를 잡고 몇 날이든지 군사를 쉬이며 우리 형세를 염탐할 것이요. 또 그동안에 강을 건널 꾀를 할 것이니. 이왕 군국을 위하여 한번 싸우는 바이면 강을 건너 가 배수진으로 자웅을 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명원은 이런 위험한(제 목숨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신 각의 의견을 좇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김명원이 다른 군사보다도 먼저 적병이 강을 건너오기도 전에 강 저쪽에 있는 적병을 보기만 하고 뺑소니를 하는 양을 보고는 신각은 김명원을 버리고 서울로 유도대장 이 양원(李陽元)을 찾았다.
이제 이 양원의 군사나 가지고 한번 싸워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양원도 김명원과 다름이 없는 위인이었다. 도원수 김명원은 강 저쪽에 있는 적병의 빛이라도 보고 달아났지마는 유도 대장 이 양원은 적병이 온다는 소리만 듣고 벌써 처첩을 끌고 동소문으로 빠져 나갔다. 그들의 생각에 피난처는 동소문 밖에 있는 줄 아는 것이 유행이었다. 강원도. 함경도를 안전 지대로 알았던 것이다. 고관대작의 처첩 자녀들은 물게뭉게 동소문을 나간 것이다. 이 양원이 그리로 나가지 아니할 리가 없다.
신 각도 동소문으로 나간 사람임에는 틀림 없다. 적병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동소문으로 따라 나갔다. 신 각이 이 양원의 무리와 다른 것은 그가 양주(楊州)에서 이 양원을 만나 때마침 올라 오던 함경 남도 병마 절도사 이 훈(李훈) 의 군사와 합하여 서울로부터 노략질하며 내려 오는 적병을 깨뜨려 모가지 육십여 급을 베인 것이다. 사월 십 삼일 적병이 부산에 상륙함으로부터 적병이 경상. 충청 . 경기도를 석권하는 동안에 우리 사람이 적병을 이긴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양주의 첩보를 듣고 백성들이 기뻐하는 양은 시로 비길 데가 없었다.
그런데 웬 일인가. 부원수 신각이 양주에 전승한 지 사흘 만에 개성에 쫓겨 가 있는 왕으로부터 신각을 베라는 교지를 가진 선전관이 와서 신각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김명원이 한강에서 도망하여 임진강을 건너서야 비로소 정신을 수습하여 장계를 하되. 자기가 한강을 지키지 못함이 마치 부원수 신 각이 자기의 호령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달아난 데 있다는 것같이 하였다. 이것을 볼 때에 여러 사람들은 패군장의 책임 전가로 생각지 아니함도 아니었으나 우의정 유 흥도 그 흥분 잘하는 어조로.
『 주장의 호령을 아니 들은 자는 죽음이 마땅하오?』
하고 바로 추상 열일같이 대의 명분을 내세우는 통에 주장 없는 왕은 그리로 솔깃하여 베이라고 전교를 내린 것이다. 아마 이것이 유흥의 필생의 공적일 것이다. 이튿날 양주에서 부원수 신 각이 적병을 깨뜨리고 육십여 급을 베었다는 첩보를 받고 왕은 크게 뉘우쳐 곧 선전관을 뒤따라 보내었으나 벌써 늦었다.
패 장군 김명원의 손에. 승전한 신각이 죽은 것이다.
7
이 모양으로 서울이 함락되니. 왕이 또 쫓기는 길을 떠날 것은 물론이지마는 왕은 갈 데로 간다 하더라도 군략상 임진강을 지키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번 한강의 요해를 잃어 버리면. 다음에 지킬 것은 임진강이다.
만일 임진강에서도 적병을 막지 못한다하면. 그다음에 버티어 볼 데는 대동강을 앞둔 평양 밖에는 없다. 그리고 만일 평양까지 잃어버린다 하면. 이쫓기는 무리들은 마침내 명 나라 황제에게 살려 줍소사 하고 빌고 붙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처자와 신주를 끌고 압록강을 건너. 그리고 좋아하던 명나라에 내부(內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셋 밖에 있느냐.
그것은 비둔한 몸뚱이와 처자와 그리하고 신주가 아니냐. 강산과 동족은 그들을 먹이기에 필요한 모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무려나 임진강을 지키는 것은 필요하였다. 경성을 점령한 적군은 반드시 왕을 사로잡으려고 승승 장구하여 임진강을 건널 것이다.
경성 함락의 경보를 듣고 대관의 무리는 왕을 모시고 또 개성을 떠났다.
대관들 중에는 함경도로 가자는 자가 많았으나 류 성룡이 반대하였다. 함경도로 가자는 대관들의 동기는 아무 다른 계책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네 식구들을 먼저 함경도로 보냈으니까 그것을 만나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함경도로 갔다가 만일 거기도 적병이 들어오면 다시는 쫓겨 갈 데가 없다는 이유로 평양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평양에 갔다가는 다시 의주로 도망할 수도 있고 의주서도 못배기게 되면. 평생 소원인 명 나라로 도망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류 성룡이 속으로 믿는 것은 명 나라 청병이요. 이 항복의 무리가 믿는 것은 바로 명 나라로 도망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급하였던지 개성을 떠날 때에 종묘 신주를 잊고 떠났다.
보산역(寶山驛)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떤 종실 한 사람의 머리 속에 종묘 신주를 개성 목청전(穆淸殿)에 내어 버리고 왔다는 생각이 나서 울고불고 왕께 아뢰었다. 그래서 밤으로 개성에 달려 가서 종묘 신주를 봉환하였다.
평산(平山). 봉산(鳳山). 황주(黃州). 중화(中和) 등을 지나서 이렛만에 왕의 일행이 대동강을 건너 평양에 들어갔다.
이렇게 왕이 평양으로 읆고 전략으로 임진강을 지키는 것을 주장 삼았다.
그러나 임진강을 지키는 데도 무슨 일정한 방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는 적병의 수효가 얼마요. 병기가 어떠한 것이니 싸워야겠다 하는 것을 생각할 위인은. 왕의 좌우에 있는 대관이란 무리들 주에는 하나도 없었다. 있다 하면 류 성룡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일생에 계획이라든지 주장이라든지를 가져 본 일이 없는 무리다. 그들은 자기 일개의. 기껏행 자기의 조그마한 당파의 이익. 그것도 목전의 이욕을 위하여 고식적으로 준동할 뿐이었다. 그 준동도 적당한 길을 밟아서 정정 당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음모와 음해의 비열한 수단으로 하였다. 그중에 그래도 나라를 안중에 두는 이는 류 성룡 하나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류 성룡은 미움을 받았다. 닭의 무리에 끼인 학은 닭들의 배척을 아니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임진강을 지키는 데도 이 무리들의 하는 일은 그들의 성격(이것은 조선 민족의 성격은 아니다. 조선 민족 중에는 이 순신 같은 사라도 있지 아니하냐)을 유감없이 폭로시킨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모양으로 임진강을 지키려 하였는가.
8
도원수 김명원이 한강에서 패하여 패한다는 것보다도 적병의 먼빛을 보고 달아나서 임진강에 다다랐으나 곧 행재소인 개성에 올 용기는 없었다. 면목도 없었으려니와. 혹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임진강에 앉아서 한강에 패한 시말을 장계하고 가만히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명원의 패군 장계를 보 조정은 크게 흥분하였다. 김명원은 마땅히 벨 것이라는 말을 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와 심히 가까운 우의정 유홍의 두호로 근 패군한 죄를 용서함이 될 뿐더러. 여전히 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경기도. 황해도의 군사를 거두어 임지니강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리하여 도망하는 도원수 김명원에게는 또 한번 도망의 재수를 시험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마는. 왕은 패군지장인 김명원을 안심하고 신임해지지를 아니하여 함경 북도 병사로 있다가 갈려 온신 할(申할)에게로 임진강을 지키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도 임진강이 안심이 되지 아니하여. 북경으로부터 새로 돌아 온 지사(知事) 한 응인(韓應寅)에게 평안도 강변 정병 삼천인을 주어 임진에가서 적병을 치기를 명하고 (이때에는 벌써 적병은 임진강 남쪽에 와서 진치고 건너 올 꾀를 하고 있었다)도원수 김명원의 절제를 받지 말라 하였다. 이것은 한 응인이 명나라에 다녀왔다는 권위가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평안도 정병이란 것을 크게 믿은 까닭도 있었다. 한 응인을 임진으로 보낼 때에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는.
『이 사람이 얼굴에 복기가 있으니 반드시 좋은 일이 있으리라.』
고 주장하였다. 장수를 전장에 보낼 때에 얼굴에 복기를 믿는 정승도 갸륵하거니와. 이 말을 믿는 다른 무리들도 차라리 가긍하여 임진강을 지키는데 김명원(金命元). 신 할(신할). 한 응인(韓應寅)세 사람이 각자의 대장이 되었다.
신할은 도원수의 절제를 받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일은 없지마는 대장부 어찌 남의 절제를 받으려 하는 따위요. 게다가 김명원이 한강에서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한 위인이니 부하에게 위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한 응인은 바로 명 나라부터 돌아 온 사람이 아니냐. 왕으로부터 도원수의 절제를 받지 말라는 명까지 받은 당당한 장수가 아니냐. 임진강 언덕 위에 세 알 닷곱 되는 군사를 가지고 각각 독립하고. 반목하는 도원수 세 분이 공을 다투는 장관을 이루었다.
맨 처음 임진강에 온 김명원은 임진강 북안에 진을 치고 군사를 나누어 여러 여울목을 지키게 하고. 강에 있는 배를 하나 없이 거두어 적병이 타고 건널 배가 없게 만들고 다만 소수의 유병(유병)으로 하여금 강을 건너가 적병을 부수려는 적극적 작전을 할 사람도 못되고. 또 그러할 병력을 부수려는 적극적 작전을 할 사람도 못되고. 또 그러할 병력도 없었다. 다만 그는 아직 적병이 건너 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목적을 삼고 있었다. 이러하기를 십여 일이나 하였다.
하루는 대안에 있는 적병이 강변에 짓고 있던 여막에 불을 놓고 장막을 걷고 군기를 싣고 물러 가는 양을 보였다. 이것을 보고 신 할(신할)은 김명원 더러.
『보시고. 저놈들이 못 견디어 달아나오. 호기를 물실이라. 따라 가 잡읍시다.』
하였다. 도원수 김명원은.
『필시 그놈들이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요. 고만하고 달아날 놈들이 아니요.
뒤에는 군사도 많고 군량도 많거든. 달아날 리가 있소?』
하고 신할을 힘을 막았다.
9
『도망하는 적병을 가만히 보고만 앉았단 말이요?』
하고 신 할(신할)은 얼굴이 주홍빛이 되어서도원수 김명원(金命元)에게 대들었다. 경기 감사 권징(權徵)도 신 할의 의견에 찬성하여.
『급격 물실이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른 말이요. 도망하는 적병을 그대로 놓아 보내면 무슨 면목으로 성상을 대하오?』
하고 추격설을 주장하였다. 김명원은 원래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우기어 내일 의지력이 없는 사람인 데다가 신할과 권징의 주장에 기가 질리어서 굳세게 막지를 못하고 다만.
『적병은 그렇게 쉽게 볼 것이 아니요.』
하고 입을 다물었다.
『대감을랑 여기 편안히 앉아 계시오. 소인은 적을 치러 가겠소.』
하고 신할은 한강의 패장 김명원을 비웃는 듯이 한번 흘겨 보고 자리를 차고 나왔다. 권징도 신할을 쫓아 나왔다.
신할은 도원수의 승낙도 없이 강변에 매어 둔 배들을 꺼내어 군사를 싣고 의기양양하게 임진강의 물결을 헤치며 건너 갔다. 도원수 김명원은 자기의 절제를 받지 않고 자행자지하는 두 장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큰일 났군. 저녁때가 다 못되어서 적병이 임진강을 건너 오겠군.』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도원수다. 신 할. 권징을 억지로 내려 누를 수도 있었고 또 군법을 시행하여 목을 베일 권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우유 부단하는 성품과 한강의 패전이라는 허물은 그로 하여금 그러한 권력을 부릴 의지력을 잃게 하였다.
신할과 권징이 도원수 김명원의 막하게 있던 군사대부분을 제 마음대로 가지고 강을 건너가 바로 적병이 물러간 길을 추격하려고 먼지를 일으킬 때에.
한 응인(韓應寅)이 평안도 강변 정병 삼천명을 몰아서 임진강에 다다랐다.
응인은 김명원을 만나 왕이 자기에 준. 도원수의 절제를 받지 말라는 패를 내어 보이고 마치 도원수 김명원이 자기보다 자리가 낮은 사람이나 되는 듯이.
상관이 하관에게나 묻는 듯이 적병의 형세를 물었다.
왕이 한응인에게도원수인 자기의 절제를 받지 말라는 패를 준 것을 볼때에.
또 한 응인이 안 하게 무인하게 연치로나 관등으로나 그러할 수 없는 처지에 자기에게 심히 무례함을 볼 때에. 모욕감과 분노로 전신이 싸늘하게 식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김명원은 이 모든 모욕을 은익하지 아니치 못하였다.
김명원은 자기가 적병을 십여 일이나 임진강에서 막던 말과 적병이 오늘 돌연히 여막을 불사르고 군기와 군자를 다 싸싣고 임진강을 떠난 것은 결코 도망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슨 계교가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신할과 권징이 자기의 말도 듣지 아니하고 자의로 월강하여 적을 추격한다는 말을 대강 하였다.
한응인은 김명원의 말을 듣고 신할이 앞서 간 것을 분하게 여겼다.
『내가 경성을 회복하거든 대감은 천천히 뒤따라 오시오.』
하고 한 응인은 저편에 군사 싣고 건너 간 배들을 부르고 자기가 거느린 군사더러 곧 도강하기를 제촉하였다.
평안도 군사 중에서 나이 지긋한 군사 한 사람이 응인의 앞에 나서며.
『안전께 아뢰오. 군사가 먼 길을 걸어 와서 다리가 앞은 데다가 아직 밥도 먹지 아니하옵고. 또 기계도 정비하지 아니하옵고. 그뿐 아니라 후군도 아직 다 들어서지 아니 하였을 뿐더러. 적의 정위도 아직 알 수 없사온즉 오늘 하루를 여기서 군사를 쉬면서 척후를 놓아 적성을 알아 본 연후에 명일 형세를 보아 전진함이 옳을까 하오.』
하고 아뢰었다.
10
오늘은 쉬고 명일 행군하자는 말을 들을 때에 한 응인은 낯빛이 주홍빛이 되어 호령하였다.
누구의 영이라고 네 감히 『 잔소리를 하는고. 다시 말이 있으면 군법 시행할 테다.』
하고 발을 굴렀다. 그 군사는 입을 벌리려다가 곁에 사람에게 끌려서 제자리에 들어 갔다. 그러나 강변에 있으면서 소시로부터 오랑캐와 수없이 싸워서 실전의 경험이 있는 평안도 군사의 눈에 한 응인이 하는 일은 도무지 싸움이란 것을 모르는 것이었다.
비록 어러운 병서는 읽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싸움의 첫째 비결이 적의 형편을 아는 것에 있는 것은 강변에서는 아이들도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양반 한 응인은 대체 적병이 몇 명이나 되고. 어떠한 곳에 있고. 어떠한 기계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덮어 놓고 가서 싸우라고만 하니 정신 있는 사람의 일 같지 아니하고. 또 주린 군사와 피곤한 군사를 전장에 내세우는 것은 병가에서 대기하는 일인데. 오늘 개성서 임진강까지 몰아온 군사를 밥도 안 먹이고 나아가 싸우라는 것도 정신 있는 사람의 일 같지는 아니하였다. 오직 하나 믿는 것은 신 병사(신할)의 군사가 앞서 간 것이지마는. 도원수의 말에 의하면. 신병사도 무턱대고 간 모양이었다. 이런 줄을 잘 아는 평안도 군사들은 숙맥 같은 한 응인의 말대로 강을 건너는 것보다는. 바로 말을 하여 응인으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게 하려 하였다. 그래서 늙수그레한 사람이 삼사인이나 뒤를 이어서.
『사또께서 나가라면 가옵지오마는. 이 피곤하고 주린 군사를 끌고 형세고 알지 못하는 적군중에 들어가는 것은 오계인가 하오. 첫째. 나가는 군사들이 제각기 적병이 얼마인데 어떠한 기계를 가지고 어떠한 곳에 있다 하니.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했으면 이기리라는 자신이 있어야 하지를 아니하오? 군사가 의심을 가지고 가는 것은 병가에서 대기하는 것인데. 지금 군사들이 모두 의심이 있으니 오늘 하루르 쉬어서 내일 적병을 치는 것이 옳을까하오.』
하그들의 일생에 체험한 진리로 한 응인을 가르쳤다. 한응인은 분이 상투끝까지 올랐다. 하향 천종이 양반을 몰라 보고 무엄이 그지 없이 - 한응인은 칼을 빼어 높이 들었다.
『오. 너희놈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는구나!』
하고 처음부터 말하던 군사 사오인을 불러서 열밖에 내어 세우고.
이놈들 양반을 몰라 『 . 보고 함부로 주둥아리르 놀려 인심을 현란케 하는 놈들!』
하고 나무 찍듯이 손수 그 군사들의 목을 찍어 버렸다.
『다시 입을 놀리는 놈이 있으면. 모조리 이 모양으로 법을 알릴테니 그리 알어!』
하고. 한 응인은 앞가슴을 떡 벌리고 기고 만장하여 군사들에게 배에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아무도 감히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이때에 별장 유 글량(유克良)이 나서며 한응인을 보고.
『강변 군사들의 말이 지당한가 하오.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만견지계가 아닌가 하오.』
하였다. 한 은인이 크게 노하여 칼을 빼어 극량을 베려 하니. 극량이 태연히 말하기를.
『내가 결발 종군하여 일생을 견장에 살았거든 어찌 죽기를 피하겠소? 마는.
나라 일이 그릇되니까 하는 말요.』하고.
『가자!』
하고 자기의 부하를 앞세우고 선봉이 되어 강을 건넜다. 응인도 도원수 김명원에게 서울에서 만날 것을 장담하고 배에 올랐다. 그러나 한응인은 자기가 왕의 증명을 받은 몸이라 하여도원수 김명원과 같이 강 이쪽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