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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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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 문제가 남았다. 그것은 책봉으로 하여 명나라와 일본과의 화의는 되었으나 조선과 일본과의 화의는 아직 아니 된 것이었다. 풍신수길은 조선 조정에서 보낸 사신 황신(黃愼)이 벼슬이 낮다 하여 만나기를 거절하였다.
『내가 포로로 잡아 온 조선 왕자를 놓아 보냈거든 왕자가 와서 사례를 해야 옳지 그래 미관말직을 보내어?』
하고 아무리 해도 조선 사신을 만나 보려 아니하였다. 심 우경은 조선서는 대언 장어로 만사를 자기가 해결할 듯이 말하였으나. 풍신수길 앞에서 벌벌 떨고 입도 잘 벌리지 못하였다.
이에 평조신(平調信)이가 아무리 하여서라도 조선과 화의를 하여 전쟁이 다시 일지 않게 할 양으로 풍신수길 앞에 이르러 조선 사신 인견하기를 간청하였다.
『안된다니까 그러네.』
하고 수길은 여전히 어성을 높였다 -.
『왕자가 사신으로 오기 전에는 안된다니까 그래. 이소서놈은 어디 갔니?
너희놈들 하는 일이란 다 그래. 명 나라와만 하더라도 나를 명 나라 왕을 봉한다길래 화의를 한다고 했는데 그 책문인가 보니까 어디 그렇더냐. 나를 일본 왕을 봉한다고 했으니. 그래 내가 일본 왕이 되려면 명나라 왕이 봉하기를 기다린단 말이냐. 모두 이소서 놈의 농간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조신은 소서행장의 사위다.
그런게 아니요 조선으로 『 . 말씀하면. 왕자는 나이도 어리고 또 싸움통에 북방에 가서 일을 잘못해서 민심을 잃었다고 먼 곳에 귀양을 가서 아직 아니 돌아오고. 또 대관들로 말씀하오며. 일본에만 가면 죽는 줄만 알고 아무도 오려는 사람이 없사옵고. 이 황신(黃愼)이란 사람만이 예로부터 사신을 죽이는 나라는 없는 범이라고 해서 자청해서 온 것이요. 또 소인도 일본이 비록 강하나 결코 사신은 죽이지 아니한다고 담보를 하여서 오게 된 것이요. 이번 사신을 잘 우대하셔서 돌려 보내시면 그 후에는 안심하고 왕자라도 올는지 모르오.』
하고 거짓말을 꾸며대었다.
『하하하.......조선놈이란 못난 놈들이다. 황가인가 한 놈이 자청해 왔다니 어디 불러라! 하하.......』
하고 웃었다.
이리하여 조선 사신의 사관도 수길이 손수 지정하고 또 만나 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형식적 예절은 끝이 났으나 며칠을 지나는 동안에 수길은 이번 화의란 것이 결국 자기에게는 아무 소득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가둥 청정(加謄淸正)일파의 보고로 이번 책봉이란 것도 도리어 욕이란 관념을 수길이 가지게 되었다.
이래서 책봉사 일행은 다시는 풍신수길을 만나지도 못하고. 또 풍신수길이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책봉을 감사하다는 회답도 받지 못하고 섣불리 굴다가 목숨이나 잃어 버릴 것을 두려워 슬몃슬몃 꽁무니를 매어서 일본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황신(黃愼)은 일본과의 화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과 풍신수길의 생각이 반드시 그대로만 있지 아니할 것을 보고 곧 본국에 새람을 먼저 보내어 수길이 봉을 받지 아니함을 아뢰고 필시 적이 다시 움직일 것을 아뢰었다.
이 보고를 받고 왕은 이 원익(李元翼)을 불러 눈물을 흘리며 적을 막을 방책을 원익에게 맡겼다. 원익은 적극적으로 청적으로 적을 싸워서 막을 힘이 없으므로 소극적으로 청야법을 쓰기로 하여 영남. 호남. 호서 각지에 명령하여 곡식과 사람을 모두 산성으로 옮기어 적병이 오더라양식을 얻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22

병신년 십 이월에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는 식은 거행하였으나 다만 책봉뿐이요. 명 나라에서 땅을 비어 주는 것도 없고. 또 통상조차 허하지 아니하고. 그 뿐더러 조선에서는 왕자를 돌려 보낸 사례사도 오지 아니할 뿐더러 이 순신에게 대한 원수를 갚지 못하여 일본군의 위신을 잃었다는 것이 새로 분하게 되어 수길은 가등청정(加藤淸正)에게 병선 만여 척을 주어 정유년 정월에 다시 조선을 침범케 하였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이때에 부산에 있었으나. 명 나라와 화의를 알선하다가 실패한 까닭에 수길의 신용을 잃어 다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등청정이.
첫째 조선 왕자를 치히 일본에 사례사로 오게 할 것.
둘째 조선 수군을 격멸할 것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받아 가지고 조선으로 건너 올 때에 그에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순신이었다. 그의 생각에 정면으로 이 순신과 충돌하여 가지고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육년 전에도 백전 백승하던 이순신이어든 지나간 육년 동안에 병선을 세 갑절이나 더 짓고. 군량을 많이 쌓고. 장졸도 날로 조련하여 수로나 길로나 한산도 싸움 적에 비길 배가 아닌데다가 포로 일본 군사를 이용하여 조총 기타 일본 무기를 많이 제조하였을 뿐더러. 경상. 전라. 충청 제도의 요해지에는 거미줄 같이 망대와 파수병과 수비하는 군사를 두어 물 한 방울 부어서 샐틈 없이 방비를 엄밀히 하였다. 또 일본군에서 염탐한 바에 의하면 한산도 기타 요해지에 쌓아 놓은 군량과 소금. 마른 생선 등속은 넉넉히 삼년 동안 이순신의 오만 대군과 연해 백성을 먹일 만하다고 하였다.
『명 나라는 두렵지 않지만 이 순신이 큰 일이다!』
이것이 가등청정 이하 일본 장졸의 입버릇이었다. 이때에 조정에는 류 성룡(柳成龍)의 세력이 떨어지고 서인과 동인풍에 북당이 채를 잡게 될 뿐더러 몇 해 동안 전쟁이 쉬인 틈을 타거 당쟁이 다시 불 일 듯 일어났다. 마치 오랫동안 전란 통에 싸우지 못한 설치나 하려는 듯이 밤낮으로 피차에 취모벽자하여 「 」 「 」(죽여라!)이라는 대의 명분론을 주고 받고 하노라고 나라에는 배가 산으로 올라 가는지 바다로 들어 가는지도 모를 형편이었다.
게다가 한산도 싸움의 고마운 맛도 거의 잊어 버려 이순신의 공로를 생각함보다도 일개 무부로서 정이품이라는 벼슬자리가 아니꼽게 생각하는 편이 많게 되었다. 이 기회를 타서 이 순신을 미워하는 현 충청 병사 원균(元均)이 천 가지만 kr지로 이 순신을 무함 중상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 요지는 한산도의 싸움이나 당포(唐浦). 당항포(唐項浦)의 싸움은 기실 이순신보다도 원 균 자신의 공이라는 것. 또 부산의 적병의 소굴을 무찌르자고 자기가 강경히 주장하였음에 대하여 이 순신은 항상 겁을 내어 피하기 때문에 대첩을 못하였다는. 이 순신이 조정의 분부를 듣기도 전에 제 마음대로 논공 행상을 하여 사정을 썼다는 것.
통제사가 된 뒤에는 제 마음대로 백성을 섬으로 옮기고 군기를 제조하고 병선을 제조하고 한산도에 궁궐과 같은 집(제승당 =制勝當)을 지어 왕공고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것. 하향 천민을 심복으로 써서 제 당파를 만들고 경관(서울서 온 벼슬아치)을 무시한다는 것 등등이었다.
「그놈 죽일 놈이다」하는 소리가 서울 장안의 대관집 사랑에서 가끔 들리게 되었다. 그놈이란 물론 이 순신을 가리킨 것이었다.

23

바로 이때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통사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경상 병사 김응서(慶尙兵使金應瑞)를 찾아 보게 하였다.
요시라는 조선말을 잘하는 사라이요. 또 일본군 중에 주화론자인 소서행장의 부하이기 때문에 김응서는 매양 안시하고 그를 만났다.
요시라는 김응서를 보고 지금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대군을 거느리고 정월 칠일에 부산에 올 예정이니 조선 수군으로 하여금 중로에 맞아 싸워 멸하라.
그리하면 두 나라가 다시 싸우지 아니하고 무사하게 될 것이요. 조선으로 말하면 임진년 원수를 갚게 된 것이요. 소서행장으로 말하면 가등청정에게 대한 원수를 갚게 될 것이니 피차에 좋은 일이 아니냐 하였다.
그리고 요시라는 소서행장이 어떻게 가등청정과 원수인 것을 재주있게 말하고 또 어떻게 일본 군사가 싸움을 원치 아니하는 것을 말하였다.
김응서는 이 말을 믿었다. 그리고 대구(大邱)에 유진하고 있는 도원수 권율(都元帥權慄)에게 이 말을 보고하였다. 권율은 다시 이 말을 조정에 장계하였다. 왕은 권율의 장계를 받고 비국제신(備國諸臣)을 불러 물었다.
『참 좋은 기회요.』
하고 그 말대로 하기를 주장한 이는 윤두수(尹斗壽)의 아우 윤근수(尹根壽)였다. 그러나 황신(黃愼)은 윤근수의 말에 반대하였다.
『행장(行長)과 청정(淸正)이 비록 틈이 있다 하오나 비밀한 계교가 적에게서 나왔단 말씀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속에는 필시 괴계가 있는가 하오.』
왕은 영의정 류성룡(柳成龍)을 돌아보며.
『황 신의 말이 옳은 것 같소마는 경의 생각에 어떠하오?』
하고 물었다.
류성룡은 이 말에 대하여 가부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속으로는 황신의 말을 옳게 여겼으나 자기의 말 한 마디가 또 무슨 트집이 될까를 두려워함이었다.
말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때다. 류 성룡은 자기의 지위가 풍전등화인 것을 자각하였다. 그는 심히 마음이 약하여졌다.
왕은 이에 황신으로 위유사(慰諭使)를 삼아 비밀히 순신에게 보내었다.
이때에 이 순신은 가등청정군이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 준비에 분주하였다 관하 각읍주령 . 첨사. 만호. 군관 등에게 대변령(오늘날 말로 대령)을 내리고 한산도에 있는 함대에도 출동 준비를 명하여 오랫동안 잠잠하던 충청.
전라. 경상도의 연해 각지는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장졸이든지 일반 백성이든지 하나도 겁내는 이가 없음은 마치 승전을 굳게 믿는 사람들과 같았다.
지나간 육년 간에 이순신의 정치적 수완. 군사적 수완. 인격의 감화를 본 장졸과 인민들은 완전히 이순신과 동심일체를 이루어 그와 사생을 같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늘이 정한 일로 알고 있었고. 또 이순신이 살아 있는 동안 적병은 한 걸음 견 내도를 넘지 못할 것을 확신하였다.
황신이 위유사로 한산도에 이르매 이 순신은 봉명하사라 하며 배에까지 내려와 국궁하고 맞았다. 황신은 이 순신을 처음 보거니와. 오십을 하나 둘 넘을락 말락 그의 풍신과 태도에 자연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더구나 여려 백척 전선에 수만 군졸이 마치 잠이나 든 듯이 정숙하게 자기를 맞는 양을 볼 때에 꿈의 세상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더구나 순신이 거처하는 방이 다른 장졸이나 다름 없이 검소하고 진중에 일개 여자도 없는 것을 보고는 더욱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 순신이 왕공과 같이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말은 누가 지어 내었는가. 왕공과 같은 것은 오직 이 순신의 인격뿐이라 하였다.

24

황신은 이 순신에게 왕의 분부를 전하고 의견을 물었다. 순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첫째로 청정과 행장이 비록 사이가 좋지 못하다 하더라도 적에게 제 나라의 군기의 비밀을 누설할 리가 없고. 둘째로 설사 행장의 말과 같이 그날 그시에 청정의 군사가 온다 하더라도 먼저 그럴듯한 말로 조선의 수군을 유인할 적에는 필시 작은 해로에다가 북병을 많이 베풀거나 무슨 음모를 하였을 것이니 함대를 많이 끌고 간다면 적이 모를 리가 없고. 그렇다고 적게 거느리고 간다면 도리어 적에게 습격을 받을 것이요.
셋째. 일본의 소식을 듣건댄 풍신수길은 해전에 패한 원수를 갚고자 하여 새로 배를 많이 지었다하니. 저는 전 국력을 기울여 오거든 우리는 겨우 삼도의 수군을 가지고 싸울 때에는 지세와 조수의 힘을 빌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어늘.
이제 망망한 대해에서 수많은 함대와 수 적은 함대가 싸운다 하면 백 번 패할 근심이 있을지언정 한번 이길 소망은 없는 것이요.
넷째. 적이 아무리 많은 수군을 거느리고 온다 하더라도 경상. 전라의 바다를 지나지 아니하고는 소용이 없을 것이니 가만히 남해의 요해를 지키고 있다가 적을 맞아 싸울진댄 모든 섬과 바다의 물이 다 이편의 힘이 될 것이요.
다섯째 설사 망망한 대해에서 . 싸워서 적을 이긴다 하더라도 적은 달아나면 고만이나 소득이 없을 뿐더러 만일에 이편이 불리하다 하면 앞에는 적의 함대가 있고 뒤에는 부산. 김해의 적의 소굴이 있으니 그 사이에 끼인 이편은 진퇴 유곡할 것이니대해에 적을 맞아 싸운다는 것은 만만 부당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순신의 말을 듣고 황신은 절절이 옳다고 탄복하였다.
『그러면 어찌하리이까?』
하는 황신의 최후의 질문에 순신은.
『순신이 살아 있는 동안 적병은 하나도 전라도 바다를 넘기지 아니 하리다고 상감께 아뢰시오.』
하였다.
황신이 한산도에서 북명하기 전에 요시라(要時羅)는 김응서를 찾아 벌써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조선 땅에 하륙하였다는 말을 고하고.
『글세 왜 이 순신이 가만히 있었소?』
하고 원망하는 빛을 보인 뒤에.
『들으니까 청정이가 대마도(對馬島 =조선말로 「두마섬」에서 순신에게 사람과 폐백을 보내었다 하오.』
하였다. 김응서는 요시라의 말을 고대로 대구(大邱)에 있는 도원수 권율(權慄)에게 보하고. 권도원수는 또 그대로 조정에 장계하였다.
황신이가 서울에 들어 온 때에는 벌써 권도원수의 장계가 궁정에 올라「 ) (순신을 죽여라)」이라는 상소가 하루에도 사오 차씩 오르는 때였다.
그중에도 박성(朴惺)이란 사라은. 순신은 적의 뇌물을 받고 나라를 판 놈이니 곧 베라고 격렬한 상소를 하였고. 이러한 틈을 타서 평소에 류 성룡(柳成龍)과 이 순신의 공명을 못마땅이 생각하던 서인들의 다수와 동인들 중에도 북당에 속한 자들은 순신을 죽일 것을 극론하였다.
류 성룡도 말이 없고 오직 이 원익(이원익)만이 이 순신이 결코 그러한 사람이 아님을 역설하고. 그가 체찰사로 지난 해에 한산도에 갔을 때에 본 것을 예로 들어 순신의 충성을 증명하였다. 군률 엄한 것. 순신이 검소하고 사졸과 고락을 같이 하는 것. 인민과 군사가 모두 순신을 부모와 같이 사모하는 것. 청렴 결백하여 진중에 한 계집과 두 벌 옷이 없는 것. 또 소를 잡고 술을 마련하여 체찰사인 자기의 이름으로 군사를 호케한 것등을 아뢰었다.

25

왕은 원익의 말을 들으매 순신의 충성을 믿으나 좌우가 하고 순신의 죄상을 적발하므로 사성(司城) 남 이신(南以信)을 한산도로 암행시켜 당시 사정을 엄탐해 오기를 명하였다.
왕이 특별히 사성 벼슬하는 사람을 택한 까닭은 아무쪼록 정치에 관계 없는 사람을 택하려 함이었다. (사성이란 대학 교수와 같은 벼슬이다).
남이신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몇몇 요인의 부름을 받았다. 남이신은 한산을 잠깐 들러 병사 김응서(金應壻)와 대구의 도원수 영문에 들러 서울로 달아 왔다.
그의 회보는 이러하였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은 배 한척을 타고 조선으로 오다가 해중에서 바람을 만나 조그마한 섬에 칠일 동안이나 걸려 있었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곧 요시라(要時羅)를 이 순신의 진중에 보내어 그 뜻을 말하고 곧 전선을 보내어 가등청정을 사로잡기를 재촉하였으나 이 순신은 가등청정을 두려워하여 나아가 싸우지 못한 것이었다.
남 이신의 보고도 그가 정치 관계자가 아니요. 공정한 학자라는 점에서 더구나 믿을 만한 것이라고 주장되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 순신을 「 」(큰 소리를 하여 임금을 속인다)」한다는 죄로 금부에 명하여 잡아 올리라 하였다. 원균(元均)은 더욱 이 기회를 이용하여 순신을 모함하였다. 그는 애초에 전라 좌수사로서 아무리 적병이 경상도 연해를 유린하여도. 당시 경상 우수사인 원균 자기가 아무리 구원을 청하여도 듣지 아니하여 마침내 자기는 고군 분투를 청하여도 듣지 아니하여 마침내 자기는 고군 분투하다가 패하였고. 그 후에 이 영남(李英男)을 순신에게 보내어 수십차 청한 결과로 겨우 출동한 짓이요. 당포.
다항포. 한산도 등 여러 번 싸움에도 순신은 매양 회피하는 것을 자기가 재촉하여 부득이 웅전하였고. 싸울 때에도 매양 자기가 앞장을 섰으며. 그러므로 공은 원균에게 있건마는 순신은 모두 저 하나의 공인 것처럼 장계한 것이라는 것이다.
원균의 이 말은 일반 여론에 큰 충동을 주었다. 그것은 여태껏 이 순신에게 속은 것이요. 정말 공훈은 원균이라 함이 판명된 까닭이었다. 「임금을 속인다」는 것 중에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이제 이 순신을 잡아 올리는데 대하여 큰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이 순신이 만일 그렇게 흉악한 놈이라 하면 호랑이 떼 같은 일본 총으로 못 당해 내는 이 순신이 잡혀 올 것이냐가 문제된 까닭이었다. 만일 힘으로 이 순신을 잡는다 하면 조선의 힘은커녕 명 나라에 청병을 하여서라도 잡을 수 없을 것이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하는 말이요. 순신을 잡으려는 대관들은 순신을 잡아 오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인 줄을 잘 알았다. 그것은 순신은 충신이요. 다른 뜻이 없음을 안 까닭이었다. 왕명이라 하면 그는 두 말 없이 잡혀 올 것을 믿은 까닭이었다.
금부 도사가 십여 명 나졸을 데리고 순신을 잡아 올리라는 명을 받들고 한산도에 온 것이 정월 이십 오일이었다. 통제사를 잡으러 왔다는 말을 듣고 장졸들과 백성들은 물 끓듯하였다.
순신은 제승당 뜰 아래서 엎디어 금부 도사가 가지고온 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즉석에서 금부 나졸의 손에 항쇄와 수갑을 채움이 되었다.
『통제 대감이 잡혀 가시면 우리는 다 죽는다.』하고 백성들은 제승당 앞에 모야 울고 떠들었다. 『조정에 간신 놈들이 우리 대감을 시기하여 죽는다.』하고 금부 도사가 앉았는 제승당 앞에 등장을 들었다.『경관 놈들은 죽여라!』하는 폭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