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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03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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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좌병사이 각은 동래 부사 송상현의 말을 옳게 여겨 조방장(助防將)홍 윤관(洪允寬). 울산 군수 이 언함과 칠천 병마를 거느리고 밤도와 행군하여 십사일 오정에 동래부에 도달하고 양산 군수 조영규도 군사 이천을 거느리고 그보다 좀 일찍 동래성에 들어 왔다. 이리하여 동래성에는 모두 이민의 군사가 있었다. 미시 말이나 되엇 부산진의 패보가 동래에 들어오고 또 얼마 아니하여 좌수사 박홍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좌수영이 싸우지도 아니하고 무너졌다는 경보가 들어 왔다. 이 경보를 받더니 참땋게 있던 좌병사이 각(李珏)이 동래 부사 송상현을 보고.
『여보 동래. 나는 가오.』
하고 동래에서 떠날 차비를 하였다.
『가시다니 사또가 어디를 가신단 말씀이요? 적병을 막으려고 밤도와 어셨다가 적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가시다니. 어디로 가신단 말이요?』
하고. 송 부사는 병사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니. 내가 피하는 게 아니요. 나는 대장이니까 밖에 있어서 각진 군사를 지휘를 하야지 성안에 있어서 쓰겠소. 성을 지키는 것은 동래가 맡아 하오.』
하고. 동래 부사 송상현이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아병 이십 명만 동래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는 별장과 군사를 데리고 서문을 열고 달아나 소산(蘇山)이란 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좌병사이 각은 부산진이 함락되고 첨사 정발이 육천 병사로 더불어 전사하였단 말을 듣고 잔뜩 겁을 집어 먹어서 듣기 좋은 핑계로 동래성을 빠져 나온 것이다. 그의 생각 같아서는 곧장 서울로 도망이라도 하고 싶건마는.
아직도 염치가 약간 남아서 소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여기서 기회를 보아서 동래성 싸움에 일본군이 지면 자기도 의기 양양하게 동래성으로 들어 가고.
동래가 지면 내빼자는 계교다. 왜 태평 시절에 병사 노릇을 못하고 난시에 병사가 되었던고 하고 이 각은 수없이 한탄하였다.
이 각이 바로 소산에 이르러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동래성에서는 포향과 고각이 진동하엿다. 일본군과 접전이 된 것이다. 이 각은 자기가 선견지경명이 있어서 도망한 것을 다행히 여겼다.
병사 이 각이 달아난 뒤에 동래 부사 송사 송상현은 그 병슬을 따라 주장이 되어서. 동래성 남문에 올라 전군을 지휘하였다. 울산 군수 이 언함(李喭諴)은 죄위장은 삼아 동문을 지키게 하고. 양산 군수 조영규(趙英珪)호우위장을 삼아서문을 지키게 하고. 조방장 홍 윤관(洪允寬)으로 충군을 삼아 성중과 북문을 지키게 하였다. 십사일 유시에 일본군의 선봉이 동래 남문 밖인 취병장(지름 말로 연병장)에 이르러 유진하였다.
일본 진중으로서 어떤 키 큰 순사 하나가 무기를 들지 아니하고 손에 흰 목패 하나를 들고 성 가까이 오더니 그것을 성중에 던졌다. 군사가 그 목패를 집어 부사 송상현에게 드리니. 부사는 가도 문제에 관하여 평 수길의 사자인 대마도주 평조신(平調信 =() 調信)과 절충한 일도 있었고 또 조정으로부터 「다시 가도에 관한 청이 있거든 단연 거절하고 이체 접제 말라.」는 훈령도 있으므로.
『..(죽어도 길을 못 빌린다.)』
이라고 큰 목패에 써서 성 위에 세우게 하고. 곧 방포하고 활을 쏘아 싸움을 돋우었다.

7

해가 지도록 양 진이 대 접전을 하여 피차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겼으나 무론 승부가 나지 아니하였다. 밤도 낮과 같이달이 밝았으므로 으레히 일본군이 엄습할 것을 믿었으나 적연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 군사들은 아마 일본군이 잠을 자고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싸우려는 가 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사는 자지 아니하였다. 동래 부사 송상현이 쉽사리 달아나거나 항복할 위인이 아닌 줄을 안 일본군은 계교를 쓰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밤 동안에 군사를 성으로 돌려 방비가 약한 북문으로 쳐들어 오자는 것이었다.
송 부사는 충성과 용기가 있었으나 결코 장수의 재목은 아니었다. 하물며 울산 군수 이 언함은 병사 이 각이 달아날 때에 같이 따라 가지 못한 것을 향하여 벌벌 떨고 앉았고. 오직 조방장 홍 윤관. 양산 군수 조영규 같은 장수들은 죽기로써 성을 지키려고는 하나. 적군은 오만이 넘고 이편은 이만이 다 못되니.
비록 성이 있다. 하더라도 승패는 벌써 정한 일이었다. 만일 도망하였던 이 각이 그 군사를 끌고 온다면 며칠 동안은 견딜 만도 하지마는 돌아 올 사람이 도망할 리가 있는가.
이렇게 군사는 잔약하고장수는 없는 동래성은 마치 도마에 오른 고기와 같은데. 사월 보름의 달 그림자는 점점 금정산(金井山)으로 빗기고 뒷산의 두견만 목이 메어 울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진중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지금으로 이르면 아침 네 시가 될락말락한 때에 동북방을 지키던 군사가 놀래어 일시에 소시를 쳤다. 그것은 새벽빛이 훤히 올려 쏘는 동쪽으로부터 불의에 괴상한 물건이 올라 온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삼 갑절이나 큰 허수아비에 붉은 옷을 입히고 푸른 수건을 동이고 등에 붉은 기를 지고 번쩍번쩍하는 긴 칼을 찬 흉물이 성안으로 넘실넘실 들여다보는 것이다.
밤새도록 겁을 집어 먹고 있던 군사들에게 이 흉물은 완전히 정신 착란을 주었다 더구나 장수 되는 . 울산 군수 이 언함이 소리를 치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은 병기를 던지고 통곡하였다.
그러나 이 언함이 피신할 수 있기도 전에 성을 넘어 정말 일본 군사들이 칼을 두르고 조총을 놓으며 달려 들었다. 울고불고하던 조선 군사들은 두 팔을 들고 땅바닥에 앉은 대로 칼과 총에 맞아 죽었다. 달아나던 이 언함은 다리에 기운이 없어 일본군에 붙들렸다.
그는 일본 군사 앞에 엎드려 합장하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일본군은 그가 울산 군수 이 언함인 줄 알고는 죽이지 않고 뒷짐으로 결박을 지어 앞을 세우고 성내의 길을 인도하라고 하였다. 이 언함은 길을 인도하여 부사 송상현의 진을 가리켰다. 일본군은 성을 넘어서 엄살하는 줄을 안 조방장 홍 윤관은 군사를 돌려 일본군이 남문으로 향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군사는 너무나 적었다. 홍 윤관이 거느린 이천명 군사는 순식간에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홍 윤관 자신도 군사들과 한 가지로 맞아 죽었다. 그러나 홍 윤관이 죽은 것이 결코 값이 없지는 아니하였다. 홍 윤관의 저항이 없었던들 남문에 있는 본진은 준비도 없는 동안에 경각 간에 함몰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 뿐더러 홍 윤관의 군사는 졌더라도 하나가 하나씩은 적군을 죽이고 죽었다.

8

홍 윤관의 군사가 전멸을 당한 뒤에 일본은 조선군의 시체를 밟고 넘어 관사 앞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거기는 서문을 지키던 조영규가 지키고 있었다. 관 앞은 길이 넓어서 양쪽 군은 수천 명이 한꺼번에 단병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소서행 장군의 주력이 남문의 본진을 습격할 때이므로 본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무서운 혈전을 하기 약 한 시각에 조영규는 민가의 지붕에서 내려 쏘는 적의 총환에 맞아 죽고 조영규는 군사도 거의 전멸하였다.
진시가 넘어서 남문을 본거로 한 본진은 복배로 적의 공격을 받았다.
부사는 비장 송봉수(宋鳳壽). 김희수(金希壽). 향리 송 박(宋迫) 등을 데리고 끝까지 싸웠으나 중과 부적하여 마침내 남문은 열리고 본진은 함락이 되었다.
남문을 중심으로 길과 성에는 피를 뿜고 넘어진 군사가 몇 겹씩 덧쌓였다.
부사 송상현은 일이 끝난 줄 알았다. 죽더라도 이 나라의 신하 된 절과 예를 잃지 아니하리라 하여. 갑옷 위에 조의를 껴입고 호상에 걸터 앉아 싸움을 독려하였다. 이윽고 일대의 일본 군사가 남문 누상으로 침입하여 상현에게 칼을 견주었다. 그 군사들 중에 평 조익(平調益)이라는 장수가 있어서. 상현을 향하고 달려 드는 군사를 제지하여 뒤로 물리고 상현더러 어서 도망하기를 재촉하였다.
대개 평 조익은 대마도주 평 조신의 친척으로서 작년에 동래부에 사신의 한 사람으로 와서 송상현의 관대를 받았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상현은 듣지 아니하였다.
내가 왕명을 받아 『이 성을 지켰거든. 죽기 전에 이 자리를 떠나겠느냐.』
하였다. 그래도 평 조익은 상현의 옷을 끌어 피할 틈을 가리켰다. 상현은 마침내 면하지 못할 줄을 알고 호상에 내려 북향하고절한 끝에 부채를 당기어.
『(....)』
이라고 쓰니. 이는 그의 노부 복홍(福興)에게 보내는 결별사다. 그 뜻으로 말하면.
『외로운 성이 적에 에워 싸였으되. 다른 진들이 본체 아니하도다. 군신의 의는 무겁고 부자의 은은 가볍도다.』함이다.
평 조익도 송상현을 구하지 못할 줄 알고 밖으로 몸을 피하니. 다른 군사들이 달려 들어 칼로 상현을 위협하고 항복을 청하니. 상현은 오른손에 병부를 잡고 왼손에 구리인을 잡고 호상에 앉은 대로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이때에 벌써 성중에는 어디나 붉은 기가 날리고 총소리와 고각함성도 그쳤다.
『사또. 항복을 하시오. 거역하면 죽을 길 밖에 더는 있소?』
하고. 송사현에게 권하는 것은 울산 군수 이 언함이었다. 그는 일본 장수의 복색을 입고 일본 칼을 찼다. 송상현을 대하매 부끄러워 감히 낯을 들지 못하나. 모리 휘원의 명령을 거슬리지 못하여 말을 한 것이었다.
『이놈. 역적놈아!』
하고. 상현은 이 언함을 보매 눈초리가 찢어질 듯하고 그의 검은 어룩ㄹ은 노기로 주홍빛이 되었다. 상현은 병부와 인을 한 손에 걷어 쥐고 한 손으로 칼을 빼어 이 언함을 치려 하였으나. 곁에 있던 일본 군사 하나가 나는 듯이 칼을 들어 송상현의 칼 든 팔을 쳤다. 상현의 팔은 조복 소매와 함께 떨어졌다.
또 한 일본 군사가 상현의병부와 인을 잡은 팔을 찍으니. 상현의 팔은 병부와 인을 꼭 쥐인 대로 마루에 떨어졌다.
두 팔을 다 잃은 상현은 오른편 발로 자기의 떨어진 손에 있는 인과 병부를 밟았다. 오른편 발과 왼편발이 다 떨어지매 상현은 엎드려 인과 병부를 입에 물었다. 그의 목이 잘릴 때에도 그의 입은 병부와 인을 놓지 아니하였다. 병부와 인을 아니 놓는 것은 오늘날로 이르면 국기나 군기를 아니 놓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이리하여 동래성 남문에서 송상현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