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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10 (16~20)

16

유월 일일에 명나라 요동도 사사 진무( ) 임 세록 이는 (林世祿) 조선의 일본군의 형편을 살피러 왔다. 왕은 그를 대동관(大同관)에서 접견하고 적병의 흉포함과 나라의 흥망이 경각에 달렸으니 명 나라에서 곧 구원을 보내어 주기를 간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임세록은 가다 부다 하는 말을 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말하는 눈치를 보건대 조선조정 말을 믿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임 세록의 이 태도는 왕과 및 대관들의 마음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였다.
이에 왕은 명장의 맘을 돌리기 위하여 얼마 전에 파직하였던 전 영의정 류성룡으로 하여금 당장(명 나라 사람을 당인. 명나라 군사를 당병. 명 나라를 당장이라고 부른다)을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비록 평소에 류 성룡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자라도 이 일에는 류 성룡을 반대할자가 없었다.
류 성룡은 당장 임 세록에게 조선의 현상과 왜정을 간곡하게 설명하였다.
임 세록은.
『왜병이 부산에 왔단 말을 들은 지 며칠이 안되어서 국왕이 경성을 버리고.
또 며칠이 안되어서 개성을 버리고. 또 며칠이 안되어서 왜병이 벌써 평양에 왔다고 하니 어찌 그렇 수가 있소? 아무리 왜병이 갑작스럽게 났다기로소니 이럴수야 있소? 또 조선에도 사람도 있고 군사도 있으려든 이렇게 빨리 적병을 끌어 들이는 수야 있소?』
하는 임 세록의 말 속에는 조선이 왜병을 인도하여 명 나라를 침범하려는 불측한 뜻을 가졌다는 소문(명 나라에는 그때에 이러한 소문이 떠돌았다)을 믿는 듯한 기미를 머금었다.
류 성룡은 글력으로 조선이 왜와 통한 사실이 없는 것을 변명하였다. 그리고 왜병이 대동강 저편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란 것을 실지로 보이기 위하여 류 성룡은 임 세록을 데리고 연광정(연광정)에 올라 경치와 형세를 가리키며 설명하였다. 일굴 수상이던 늙은이가 일개 젊은 외국 군관에게 호의를 얻으려고 애쓰는 양은 눈물겨운 일이었다. 임 세록은 당장인 것을 자세하고 가끔 류 성룡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언사와 행동을 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탄하지는 못하였다.
류 성룡이 바야흐로 인 세록에 세 평양의 형세를 설명할 때에 마침 까만 왜병 하나가 강쪽 수풀 속으로 번뜻번뜻 보이더니 이윽고 이삼인이 뒤이어 나와서 혹은 앉고 혹은 서고. 그 한가한 모양이 마치 길을 가다가 쉬는 것과 닽았다.
성룡이 세록을 보고 손으로 강 저쪽을 가리키며.
『옳지. 나왔소. 저게 왜병 척후요.』
하였다.
세록이 연광정 기둥에 기대어 성룡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거 어찌 왜병이 그리 적소?』
하고. 성룡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빛을 보인다. 성룡은.
『아니요. 왜가 본래 교사해서 대병이 뒤에 올 때에는 반드시 앞에 정탐을 보내는 법인데. 정탐은 언제나 이삼인에 불과하는 법이요. 만일 몇 명 안된다고 마음을 놓았다가는 반드시 적의 꾀에 빠지는 것이요.』
하고. 사실대로 정성껏 설명하였으나 세록은 말같지 아니한 소리라는 듯이 픽 웃고.
『그렇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임 세록은 돌아가서 회보할 길이 바쁘다고 평양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임 세록이 떠난 뒤에 왕과 여러 대관들은 성룡을 보고.
『어떻게 되었소? 당장이 의심이 풀려서 갔소? 구원병이 곧 올 모양이요?』
하고. 조바심을 하고 물었다.
『우리 나라에 대한 의심이 매우 깊은 모양이요.』
하는 성룡의 말은 왕 이하 여러 대관의 가슴에 큰 못을 박는 듯하였다.

17

류성룡의 말 한마디.
『우리나라에 대한 의심이 매우 깊은 모양이요.』
는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평양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평양에 주저앉으려 한 것도 명 나라 구원병을 믿은 것이다. 이제 만일 명나라가 우리 나라를 의심한다 하면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곳이 없다고 이 무리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해낸다는 생각은 이 무리의 마음속에는 나 본 일이 없고. 언제나 저는 가만히 앉고 남이 다 해 주기를 바라도록 대가리가 생신무리들이다.
『피난 가자. 산골짝으로 가서 목숨을 부지하자.』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원이요. 정신 작용의 전체였다. 차차 꽁무니를 빼는 자가 생기고 왕의 마음도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이런 줄도 모르고 백성들은 왕이 평양을 지킨다는 성명을 듣고 다들 피난처로부터 성중으로 돌아 왔다. 그래서 평양 성중에는 빈 집이 없도록 사람이 찼다.
『상감님이 평양은 안 떠나신다.』
하는 말을 부로들은 가가호호에 돌아 다니며 개유하였다. 상감님이 평양을 안 떠난다는 것은 곧 죽기로써 평양을 지킨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당장 임 세록이 조선을 의심하였다는 말을 들은 대관의 무리들은 대동강 건너편에 적병의 그림자가 하나씩 둘씩 늘어가면 갈수록 겁이 나서 식불안 침불감 하였다.
이때까지에 전라 좌수 수군 절도사 이순신(李舜臣)이 거제도(巨濟島) 연해에서 여러 번 승전하였다는 장계가 오나 조정에서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류 성룡이 수군이 필요함을 누누이 말하였으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적병의 한 떼가 대동강 저편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편 형편을 살피는 것이 보였다. 이것을 보고 적병의 총공격이 있을 줄 알고 왕은 은밀히 재신 노직(노직)을 시켜 종묘와 사직의 위패와 궁인을 보고 적병의 총공격이 있을 줄 알고 왕은 은밀히 재신 노직(노직)을 시켜 종묘와 사직의 위패와 궁인을 호위하여 칠성문으로 나가려 하였다. 이것을 본 평양 백성들은 손에 칼과 몽둥이를 들고 길을 막고 노직. 궁인 할 것 없이 함부로 두들겼다. 이 판에 종묘와 사직의 위패가 땅에 떨어져서 굴렀다.
백성들은 일행 중에 있는 노직이와 재신들을 가리키며.
『이놈들 평일에 국록을 도적해 먹고 이제 와서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속이니 너희같이 죽일 놈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고 고함을 쳤다. 행궁 곁에도 백성들이 부녀와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모여 들어서 모두 발을 구르고 입에 거품을 물며.
『평양을 안 지키고 달아나겠거든 무슨 까닭에 참땋게 피난 가 있는 우리들을 속여서 불러 들여다가 적병의 손에 어육이 되게 하고는 저희만 살겠다고 달아나? 이놈 간신놈들 나서라! 네놈들의 모가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가만히죽을 줄 알았더냐?』
하고 아우성을 하였다. 행궁 안에서는 백성들이 일어나 반란을 일으킨다 하여 처음에는 군사로 하여금 무찌르려 하였으나 군사들이 도리어 백성들에게 물리침을 당할 뿐더러. 더러는 도리어 백성들 편이되므로 정 철 이하 대관들은 행궁 안에 서서 낯빛이 흙빛이 되어 떨고만 있고. 왕도 어찌할 발를 모르고.
『성룡을 불러라. 성룡이 어디 갔느냐?』
하고 애를 썼다.

18

이때에 류 성룡은 연광정(練光亭)에서 군사 회의를 하다가 민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곧 행궁을 향하고 달렸다. 길에서 여러 번 백성들에게 봉변할 뻔하였으나 류정승이라는 말을 듣고는 백성들은.
류정승이다. 류정승은 충신이다. 류정승은 평양을 지키자는 사람이다.』
하고. 길을 열어 주었다.
류성룡이 행궁문에 들어서니 왕과 백관들은 이제 살아난 듯이 일제히 숨을 길게 쉬었다.
『이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이를 어찌하오?』
하고. 왕이 성룡에게 물을 때에 성룡은.
『반란이 아니요. 거가가 평양을 떠나시지 말라는 것이요.』
하였다.
반란이 아니란 말에 왕은 적이 안시하였다. 다른 대신들은 이것을 반란이라고 왕에게 아뢰었던 것이었다. 성룡이 곧 행궁 문 밖. 성 위에 나서서 백성들 중에 수염 많이 난 늙은이를 손으로 불렀다 그 늙은이는 성룡의 앞으로 가까이 갔다.
그 늙은이는 토관(이땅 벼슬아치)이었다.
성룡은 그 늙은이더러.
『너희들이 거가가 평양을 떠나지 마시고 힘을 다하여 성을 지키시기를 원하는 것은 지극히 충성된 마음이지마는 이렇게 민란을 일으켜서 궁분을 놀라게하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느냐. 또 소정에서도 시방 성상께 여쭈어서 평양을 굳이 지키기로 성상이 허하시었거든.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네 모양을 보아 하니 유식한 듯 싶으니 네가 뜻으로 백성들을 효유하여서 물러가게 하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도 장차 중죄에 빠져서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하였다.
그 늙은이가 성룡의 말을 다 듣더니 손에 들었던 지팡이를 놓고 손을 들어 옵하고 하는 말이.
『백성들이 성을 버리려 한다는 말을 듣잡고 분함을 못이겨서 그러한 것이요.
대감 말씀을 들으니 소인의 가슴이 툭 터지는 것 같소. 평양 백성이 하나라도 살아 있고는 적병의 발이 한걸음도 평양 성안에 들어오지 아니할 터이고 다시는 백성을 속이고 평양을 떠난다는 의론이나지 말게 하시오.』
하고. 백성들에게 성룡의 말을 전하여 안심하고 해산하게 하였다.
이날 평양 백성들이 성룡의 말을 듣고 물러간 뒤에 조정에서는 오늘 민란의 책임 문제가 났다. 저녁에 감사 송언신(宋言愼)을 불러 민란 진정 못한 책이을 물으니 언신은 민란 장두라고 지목하는 사람 세 사람을 잡아 대동문(大同門)안에서 목을 베었다.
백성도 다 물러가고 밤이 고요하게 되매. 왕은 정철(정철) 이하 제실을 불러 어디로 갈 것인가를 토론하였다. 평양을 아니지키고 버린다는 것은 이미 정한 것이었다. 아까 백성들에게 한 말은 전혀 거짓말이었다. 더구나 한번 민란을 당하고 나니 평양이 진저리가 나는 듯하였다.
조신들은 대부분 함경도로 가기로 주장하였다. 그것은 전에도 말하거니와.
자기네의 처. 가족이 대개 함경도에 피난한 까닭이었다. 이때로 말하면 벌써 함경도는 가등청정의 손에 들어서희령까지 쫓겨 갔던 왕자들까지도 사로잡힌 때이지마는 길이 통치 못하고 아무도 보변하는 자가 없어서 조정에서는 모르고 있던 것이다. 마침 동지(동지) 이 회득(이회득)이 일찍 영흥 부사로 민심을 얻었다 하여. 그로 함경도 순검사(함경도순검사)를 삼고. 병조 좌랑(병조 좌랑) 김 의원(김의원)으로 종사관(종사관)을 삼아서 내전과 궁번을 부탁하여 밤중에 먼저 함경도를 향하여 떠나 보내었다.

19

류 성룡은 왕에게 함경도로 피하는 것이 옳지 아니한 것을 말하였다. 이미 백성들에게 평양성을 지키기를 약속하였으니 이제 곧 평양을 보리면 이것은 백성을 속이는 것이라. 임금이 한번 백성을 속이면 다시는 백성이 임금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리라는 것으로 누누이 간하였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였다는 것보다도 피출설을 주장하는 무리가 다수인 까닭에 그리로 기울어진 것이었다.
『서울과 개성을 버린 것도 명나라의 의심은 더욱 클 것이요. 명나라가 우리 나라를 의심하면 구원병은 더욱 오기가 어려운 것이니. 평양을 굳게 지켜서 명 나라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인가 하오.』
하고. 성룡은 명나라의 의심을 끌어서 평양을 떠남아 옳지 아니함을 말하였다. 백성을 속이는 것이 옳지 아니하다는 말에는 까딱 없던 무리들도 명나라가 의심한다는 말에는 미상불 겁이 났다.
『명 나라에 보할 때에는 평양성에서 크게 싸워서졌다고 하면 그만 아니요?』
하고. 어떤 사람(그의 명예를 위하여 이름은 쓰지 말자)이 말하였다.
류성룡은 이어.
『또 제 이책으로 평양을 버리고 다른 데로 피한다 하더라도. 함경도로 피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오. 원래 거가가 서쪽으로 오신 것은 명나라를 의지하여서 나라를 회복하자는 것인데. 이제 명나라에다가 청병은 하여 놓고서 깊이 북도로 들어 간다고 하면 중간에 적병이 막혀서 명나라와 소식이 끊어질 터이니 통할 길도 통하기가 어려 우려든 회복을 어찌 바라오? 또 적병이 각도에 흩어져서 아니 간 곳이 없거든 북도에라고 반드시 적병이 없으란 법이 없으니. 만일 북도에 갔다가 적병을 만면 다시 갈 곳이 오랑캐 땅 밖에는 없지 아니하오.
그야말로 의지할 곳이 아주 끊어질 터이니 이런 위태한 일이 또 어디 있으리이까. 이제 조신들이 가족이 많이 북도에 가 있으므로 각각 사사로운 생각으로 북편으로 가기를 주장하는 것이요. 신으로 말하여도 늙은 어미가 동으로피난하였다 말을 들었으니 비록 간 곳을 알지 못하나 필시 강원도나 함경도에 있을 것이온즉. 사사로운 정으로 말하오면 신인들이 어찌 북으로 갈 마음이 없아오리까마는 국가의 대계로 보아 여러 사람의 뜻과 같지 아니하게 사뢰는 것이요.』하였다.
왕도 성룡의 말에 측연히.
『경의 모친이 지금 어디 있을까? 내 탓이로군.』
하였다.
『아니요!』
하고. 지사(知事) 한준(韓準)이 성룡의 말을 반대하여 북도로 가는 것이 좋은 것을 역설하였다. 그는 북도로 가족을 보낸 대관들의 시킴을 받아 성룡의 말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도록 하러 한 것이었다.
이때에 대동강에는 적병이 온 지가 사흘째 되었다. 류 성룡. 윤두수 등이 연광정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떤 왜병 하나가 나무때기 끝에 조그마한 종이 조각 하나를 끼어서 강가 모래판에 꽂고 이것을 와보라는 듯이 손을 들어 손짓을 하였다.
류 성룡은 아마 그것이 무슨 편지리라 하여 화포장(火砲匠) 김 생려(金生麗)를 시켜 매생이(대동강에 있는 작은배)를 타고 가서 가져 오라 하였다.

20

화포장 김 생려가 성룡의 명을 받아 매생이를 저어 강을 건너가 그 나무때기가 꽂힌 모래 위에 오르니. 그 나무때기를 세운 사람이 손에 아무 병기도 없이 생려의 곁으로 와서 반가운 듯이 생려의 손을 잦ㅂ고 등을 어루만져. 말은 통치 못하나 친절한 뜻을 표하며 막내 끝에 달았던 편지를 주고 연광정을 가리키며 가져 가라는 뜻을 표하였다.
생려는 그 왜병을 작별하고 매생이를 저어 연광정으로 돌아 와 그 편지를 수성 대장인 윤두수에게 올렸다. 윤두수는 손을 들어 그 편지를 밀며.
『그것은 보아 무엇 하오.』
하였다.
『안 볼 것은 무엇 있소?』
하고 류 성룡이 그 편지를 받았다. 겉봉에는.
『上 朝鮮國)』
하었다. 이것은 이 덕형(李德馨)을 가리킨 것이었다. 편지를 쓴 이는 평 조신(平調信)과 현소(玄蘇)이었다. 그러고 편지 사연은 서로 만나서 강화할 일을 의논하자는 것이었다.
원래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처음부터 풍신수길의 조선 침입에 반대하였다.
그는 아무쪼록 이 전쟁이 나지 아니하게 하려고 여러 번 두 나라 사이게 섯 애를 썼다. 전쟁이 열린 뒤에도 부산(釜山)에서 한번. 동래(東萊)에서 한번.
상주(尙州)에서 한번. 또 임진강(臨津江)에서 한번 조정에 화의하자는 뜻을 통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 평양에서도 한번 더 이 뜻을 표하자는 것이었다. 평 조신으로 말하면.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 )의 신하로 여러 번 서울에 사신으로 와서 그 공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까지 봉한 사람이요. 현소 라는 중도 조신과 같이 조선에 왔던 사람으로 책략과 문필이 있어서 소서행장의 비서 모양으로 있었다.
윤두수는 원하는 빛이 없었으나 류 성룡의 주장으로 이 덕형(李德馨)을 보내어 저편이 말하는 바를 듣기로 하였다.
이 덕형이 가는데 대하여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평복으로 갈 것이라는 이. 관복으로 갈 것이라는 이. 강 중에 뜨더라도 가운데까지 갈 것이라는 이.
가운데보다 이쪽에 서서 저편을 부를 것이라는 이. 통틀어 말하면. 저편을 얼마나한 정도로 대접할까 하는 데 대한 예문 토론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도.
강화를 할 것이냐. 한다 하면 어떠한 조건으로 할 것이냐 하는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의견을 내는 이가 없었다. 윤 두수는 애초에 만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니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서 만나기를 주장하는 류 성룡에게도 어찌하든지 적군을 속여서 하루라도 공격을 연기시키려는 생각 밖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
이 모양으로 화하거나 싸우거나 간에 아무 작정된 방침도 없이 이 덕형은 종사판과 이삼 호위하는 무사를 데리고 배를 타고 강주에 나떴다. 의복은 많이 토론한 결과 이편의 예의와 위의 범절을 적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하여 관복을 입고 따르는 자도 각각 위의를 갖추었다. 저편에는 배가 없으므로 이편에서 배 한 척을 보내어서 저편 사신에 타게 하였다.
두 배가 강중에서 만나매 평 조신은 뱃머리에 나서서 이편을 향하여 공손히 예하고 중 현소도 중의 법으로 합장하였다. 이 덕형도읍하여 답례하였다.
평조신은 가선 대부요. 이 덕형은 자헌대부(資憲大夫)니 하관이다 하는 생각이 이덕형의 머리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