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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1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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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큰 싸움(만일 이 싸움에 조선 편이 졌다면 일본 수군은 곧 전라 충청의 바다를 지나 서해로 돌아 갈 것이요. 그리하면 오직 하나 조선 땅으로 남았던 전라도 마저 적의 손에 들어 갔을 뿐더러. 평양에서 수군의 응원을 기다리덙 소서행장(小西行長)의 군사는 평안도를 두루 말아 의주까지 들이쳐 왕은 압록강을 건너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팔도는 완전히 풍신수길 손에 들어 가 다시 회복할 길이 없고 말았을 것이다)에 제장 중에 가장 먼저 적의 장선을 깨뜨려 큰 공을 세운 이는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준(權俊)이다.
이 사람은 지난 사월에 처음 순신이 원정을 떠날 때에는 순신을 비방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번 싸움에 순신의 인격과 수완에 감복하여 마침내 순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날 권 준은 맨 먼저 용감히 적진에 달려들어 적의 장수가 탄층각선을 깨뜨리고 그 장수 열 명의 목을 베이고 그 배에 있던 조선 사람 하나를 사로잡아 전군의 사기를 만장이나 돋구었다.
이 조선 사람은 적군을 위하여 물길을 인도한 자였다. 이 사람은 문초함을 따라서 적의 수군이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있는 것을 자세히 고하였다. 그 공으로 목숨은 살려 정말 그의 말과 같은가 아니 같은가를 징험하기로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건댄. 구귀 가륭(九鬼嘉隆)이란 장수와 가등 가명(加藤嘉明)이란 장수가 제일 큰 수군 대장인데 전선 사십여 척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온다 하고 또 부산포(釜山浦)에는 그 밖에도 사십척의 병선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오늘 싸움의 주장은 누구냐고 물으매. 그 협판안치(脇坂安治)라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협판안피가 어느 배에 탔느냐 한즉 자기와 같은 배에 탔다고 하나 권준이가 베인 머리 중에는 협판안치의 머리는 없었다. 제 배가 깨어질 때에 협판안치는 헤엄쳐서 다른 배에 기어오른 것이었다.
권 준이 다음 큰 공을 세운 이는 광양 현감(光陽絃監) 어영담(魚泳潭)이었다.
그도 장수가 탄 충각선 한 척을 온이로 잡아 거기 탔던 장수 하나를 사로잡아 결박하여 바치었다. 그러나 그 장수는 화살을 맞아 대단히 중상이 되어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어 영담은 그 밖에 십 이급을 베이고 조선 사람 한 사람을 사로잡았다. 사도 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이 대선 한 척을 잡아 장수를 사로잡고 머리 십여 급을 베이고. 흥양 현감(興陽縣監) 배흥립(裵興立)이 대선 한척을 잡고 머리 팔급을 베이고.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이 대선 한척을 잡고 머리사급을 베이니. 이것은 죽이기를 위주하고 머리 제이기를 힘쓰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이 순신(李純信)은 또 작은 재 두 척을 뱃머리를 받아 깨뜨리고 불살라 버렸다.
좌돌격장(左突擊獎)이기남(李奇男)이 대선 한척을 잡아 머리 칠급을 베이고.
좌별도장 영군관(左別都獎營軍官)전만호(前萬戶) 윤사공(尹思恭). 가 안책(賈安策)등이 층각선 두 척을 온이로 잡아 머리육급을 베고.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호(申浩)가 대선 한 척을 잡아 머리 칠급을 베고.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 운(鄭運)이 픙각 대선 이척을 불살라 깨뜨리고 머리 삼급을 베이고 우리 사람 삼명을 사로잡고. 여도 권관(呂島權官) 김인영(金仁英)이 대선 한 척을 잡아 머리 상급을 베이고. 발포 만호(鉢浦萬戶) 황 정록(黃廷祿)이 층각선 한척을 받아 깨뜨리매 여러 배가 합력하여 불살라 버리고 머리 이급을 베이고. 우 별도장(右別都將) 전 만호(前萬戶) 송응민(宋應珉)이 머리 이급을 베고.
흥양 통장(興陽統將) 전현감(前縣監) 최천보(崔天寶)가 머리 삼급을 베이고.

7

참퇴장 전첨사(斬退將 前僉使) 이 응화(李應華)가 머리 일급을 베이고. 돌격장 급제(突擊將及弟) 박 이량(朴以良)이 머리 일급을 베이고. 이 순신이 탄 주장선이 머리 오급을 베이고. 유군 일령장(遊軍一領將) 손 윤문(孫允文)이 소선 이척을 따라 가며 대포를 놓아 적군을 산으로 올려 쫓고. 오령장(五領將) 전봉사(前奉事) 초 도전(崔道傳)이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 나모지 대선 이십척과 중선 십 칠척과 소선 오척은 전라 좌우도 제장이 힘을 합하여 불살라 깨뜨리고.
적병 사백여 명은 세궁역진하여 배를 버리고 한산도로 오르고. 대선 일척. 중선 칠척. 소선 육천만이 뒤에서 바라보다가 견 내 도로 달아나고 말았다.
싸움이 끝이 매 순신은 함대를 견 내도 안 바다에 모아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이 밤에 장졸들은 곤한 것도 잊고 기뻐 뛰며 소리를 질렀으나 밤이 깊으매 순신은. 아직도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요. 내일도 또 어떻게 큰 싸움이 있을는지 알 수 없으니 다들 잠을 자서 몸을 쉬라 하였다.
전군이 다 잠이 든 때에 어떤 배 사오척이 바다 가운데로 가만가만히 떠도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원균이 낮에 공을 세우지 못함을 분히 여겨 바다에 떠다니는 적병의 시체를 찾아 죽은 목을 베이는 것이었다. 원균이 그 어두운 바다 위로 떠돌며 적병의 세체를 찾아 머리 백여 급을 베어 소금에 저렸다.
이것은 싸움이 끝나거든 순신 모르게 왕에게 바치자는 생각이었다.
한산도 큰 싸움의 첩보가 의주의 행재소에 이른 것은 이로부터 십여 일이나 지난 칠월 하순께였다.
이날 적막한 행재소에서는 군신이 오늘이나 내일이나하고. 일련은 평양에 웅거한 소서행장의 군사가 밀려 들어오지나 아니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행여나 명 나라로부터 구원군이 온다는 선문이 오나 하고 무서움 절반 희망 절반으로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더구나 이삼일 전에 평행장(平行長 =小西行長)이 왕에게 글을 보내어.
『日本 ...).』
하는 말로 위협을 받음으로부터는 왕 이하로 흔이 몸에 붙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전라도사(全羅都事) 최철견(崔鐵堅)이 순찰사 이광(李光)의 명을 받아 전라 좌도 절도사 이순신의 「견애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壯)」이라는 장계를 가지고 밤낮으로 달려 행재소로 온 것이었다.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 이순신이 견내량에서 적의 수군을 깨뜨렸다.
하오.』
하고 좌의정 윤두수가 전라 도사 최철견과 안동해 온 순신의 군관을 옥좌 앞으로 인도할 때에 왕은 마치 무서운 꿈이나 깨친 듯이 전신을 경련하였다.
최철견은 관복도 갈아 앞에 엎디어 이 순신의 장계를 두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왕은 순신의 장계를 떼었다.
장지 전폭에 힘있는 초서로.
『見乃梁破倭兵壯』
이라고 머리에 쓰고. 다음에 첫줄에.
『 』
라는 것을 허두로. 대전의 경과와 공을 이룬 사람의 이름까지 자세히 쓰고.
끝에.
『 』
이라 한데까지 단숨에 읽어 버렸다.

8

『과연 순신은 천하 명장이다.』
하고 왕은 기쁨을 못 이기어 허리를 펴며 소리를 질렀다.
『또 글이 문장이요. 글씨도 명필이다.』
하고 왕은 좌우를 돌아보았다. 좌우에는 영의정 최흥원(崔興源).
좌의정(左義政) 윤두수(尹斗壽). 우의정 유흥(兪泓). 전대신 류 성룡(柳成龍). 정철(鄭澈). 도승지 이 항복(李恒福)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순신의 대승전을 기뻐하는 이도 있고 기뻐 아니하는 이도 있다. 기뻐 아니하는 까닭은 이 순신이 류 성룡의 거천한 사람이어서 동인이라고 할 만한 까닭이었다.
왕은 순신의 군관이 올리는 적장의 머리 세 개와 왼편 귀만을 젓 담근 항아리를 손수 열어 보고. 또 친히 군관에게 싸움할 때 광경을 말하게 하고 곧 도승지 이 항복을 불러 순신으 일품에 올리는 교지를 쓰라 하였다. 이 항복이 왕명을 받아 붓을 들 때에 정철(鄭撤)이왕 외 앙ㅍ에 나와 엎드려.
『순신의 공이 적다 할 수 없소마는 그만한 공에 일품을 주시면 더 큰 공을 세울 때에 무엇으로 갚으려 하시오? 공은 남용하는 것도 장려하는 속도리가 아닌가 하오.』
하고 왕의 일품 주자는 말씀에 반대하였다. 이러서 우의정 유 흥(兪泓)이 왕의 앞에 엎드리며.
『소신의 생각도 그러하오. 순신이 비록 적지 아니한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일개 수군 절도사에게 일품을 주신다 하면 이는 기강이 무너지는 것이니 옳지 아니한가 하오.』
하고 정철의 말을 도왔다.
정철과 유홍의 용감한 말에 조정의 많은 서인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왕은 또 이놈들이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는 당파 싸움을 하는 구나 하고 마음에 분이 북받쳐 오름을 금할 수 없어서 흥분으로 떨리는 어성으로.
그러면 일풉은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고 싸우는 사람들만 가지는 것인가?』
하고 정철과 유홍을 노려보았다. 정철과 유홍은 왕의 노함을 보고 낯이 붉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류성룡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도승지 이 항복은 붓을 든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조정이 다 순신에게 일품 나리심을 외다 하니 정이품으로 하심이 옳은다 하오.』
하고 조정하였다. 심지가 약한 왕은 이렇게 된 처지에 도망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따르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수많은 서인들의 감정을 상하는 것이 미안도 g사고 두렵기도 하여 두수의 말대로 순신을 정 이품 정헌대부(正二品正憲大夫).
원균(元均)과 이억기(이억기)를 종이품 가선 대부(從二品嘉善大夫)로 하였다.
그리고 순신에게는 특히 정이품 정헌대부를 준다고 교서를 내렸다.
류 성룡은 이 순신이 그만한 작위로 하여 충성이 더하고 덜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징 비록(징비록)에 한산도 싸움에 관하여 이렇게 적었다.
『 』
이것은 한산도 싸움이 아니더면 전라.충성. 황해. 평안. 각도의 연해를 보전하여 군량을 대고 연락을 취하여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