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신은 미리 예비하였던 술과 고기를 올리라 하여. 손수 잔을 들어 제장을 이받았다. 처음에는 나아가기를 원치 아니하던 장수들도 모두 감격하여 나아가 죽기로써 싸우기를 맹세하였다.
오월 초하룻날 경오. 병선이 전양(앞바다)에 모였다. 이날 날이 흐리나 비는 오지 아니하고 남풍이 대단히 불었다. 순신은 진해루(鎭海樓)에 올라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 홍양 현감(洪陽縣監) 배흥립(裵興立).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 운(鄭運)을 불러 군사를 의논하였다. 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 사람들 이름을 쓰고.
『(.) (다분격하여 몸을 생각지 아니하니. 가위의사로다).』
하고 썼다. 오월 이일 신미. 날이 맑았다. 군관(軍官) 송 한련(宋漢璉)이 남해(南海)를 염탐하고 다녀 와서 그 정형을 아뢰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순신은 적었다.
『(............) (송 한련이 남해로서 돌아와 이르기를. 남해원과 메주목이 첨사와 상줏개. 굽은개. 평산개 등을 지키던 관원들이 적병 온다는 소문만 들으면 문득 도망하여 그 군기 등물이 다 흩어져 남음이 없다고 하니 놀랍구나).』
하고 또 그날 일기에.
『(.......... (낮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라가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약속 명령이라는 뜻 하였다. 다 줄 겁게 나아가려는 뜻을 두건마는 낙안이 피하려는 뜻이 있는 듯하니 가탄이다.
그러나 군법이 있거니. 피하련들 제 어찌 피하랴).』
하고 적었다. 낙안이란 것은 군수 신호(申浩)를 가리킨 것이었다.
저녁때에 방답진. 첩입진(疊入鎭) 배 세 척이 들어 왔다.
오월 초 삼일 임신. 아침에 가는 비 오다. 중위장 방답 첨사 이순신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이날에 여도 수군(呂島水軍) 황 옥천(黃玉千)이가 도망하여 집에 가 숨은 것을 잦ㅂ아다가 목을 잘라 굴강에 효시하였다.
오월 사일 이른 새벽에 이 순신은 전라 좌도 수군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떠났다 이날 날은 맑고 바람은 . 잔잔한 서남풍이었다. 동천이 불그레할 때에 일성 방포를 군호로 대소 팔십 육척의 배가 일제히 돛을 달고 뱃머리를 동으로 향하여 남해 바다에 나섰다. 수군의 부서는 어떠한다?
경상도의 수로를 잘 알고 또 충성 있고 담력 있는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으로 선봉장을 삼고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이 전라 관찰사 이광(李珖)의 부름으로 전주로 가버리매.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과 가리포(加理浦僉使) 구 사직(具思稷)으로 중위장(中渭將)을 삼고.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호(申浩)로 좌부장(左部將)을 삼고. 보성군수(寶城郡守)김득광(金得光)으로 우부장(右部將)을 삼고. 녹도 만호 정운으로 후부장(後部將)을 삼고. 흥양 현감(興陽縣監) 배흥립(裵興立)으로 전부장을 삼고. 사도 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으로 우척후장(右斥候蔣)을 삼고. 여도 인가 아닌가를 확실히 알아 보게 하였다. 원균은 이순신의 앞에 이르매 목을 놓아 울며
『소인은 만사 무석한 죄인이요.』
하고. 이순신이 온 것을 백 번 사례하였다. 순신이 원균을 위로하여 병선 한 척을 주어 타게 하고. 새로 군복과 평복 일습을 주어 위의를 갖추게 하였다. 원균은 순신의 후의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영감은 재생지은인이요. 재생지은인이요.』
하고 수없이 사례하였다. 순신은 원균에게 수효와 있는 곳과 접전할 절차를 물었으나. 원균의 대답은 시원치 아니하였다. 대개 원균은 아직 눈으로 적선 구경을 해본 일도 없는 까닭이다.
적서이 얼마나 되며 어디 많이 있는지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이날에 도망하였던 남해 현령(南海縣令) 기효근(寄孝謹). 메주목 첨사(메주목僉使) 김 축(金軸) 등이 판옥선 한 척을 타고 오고. 사량 만호 이 여념(李汝拈). 소비포. 권관(所非浦權管) 이 영남(李英男) 등이 각각 협선을 타고 오고.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치적(禹致積 이 영등포는 거제에 있는 것).
지세포 만호(地世浦萬戶)한 백록(韓百祿).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 운룡(李雲龍)등 도 판옥선 두 척을 가지고 오고. 이 모양으로 이 순신의 함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장수들이 많았다. 이 순신은 조금도 이 도망한 장수들을 괄시하여 한산도(閑山島) 북쪽 노쿠리도를 지나 거제도(巨濟島) 송미포(松未浦) 앞바다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일시에 배를 띄워 적선이유박한다는 천성(天城). 가덕(加德)을 향하여 가는 길에 오시나 되어 옥포(玉浦) 앞바다에 이르러 척후 장 사도 첨사(斥候獎蛇渡僉使) 김완(金玩). 여도 권관(呂島權官) 김인영(金仁英)의 척후선으로부터 마황기(魔黃旗)를 들어 신기 보변(神機報變)함이 있었다. 앞에 적선이 보인다는 뜻이다.
2
순신은 앞서 가던 척후선을부터.
『적선이 보인다.』
는 보변을 듣더니. 곧 초요기(招搖旗)를 달기를 명하였다. 군사가 순신이 탄 장선에 초요기를 높이 다니 전후 좌우에 옹위하였던 제장이 모두 배를 저어 주장의 명령을 들으려고 장선 곁으로 모여 들었다. 제장은 무슨 무서운 큰일을 기다리는 듯한 눈으로 수사를 바라보았다. 경상 우도 수군에 속한 제장들도 사실상 이 순신의 절제를 받았다.
제장이 장선에 다오르기를 기다려 순신은 왕께서 받은 칼과 편지에 숙배하기를 제장에게 명하고 그것이 끝나매.
『지금 적이 옥포에 있다 하니. 우리는 인제 나아가 싸우려니와. 충영을 발하는 곳이 두려울 것이 없으니. 만일 물러 가는 자는 군법으로 시행할 것이요.』
하고 최후에 한층 소리를 높여.
『망동을 말고 고요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오.』
하는 약속을 주었다. 제장은 엄숙하게 영을 듣고 일제히.
『예이.』
하고 그리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약속이 끝난 뒤에 척후선이 앞을 서고 다음에 선봉이요. 그다음에 중위요. 그다음에 장선이여. 장선의 좌우에는 좌위와 우위요.
뒤에는 간후요. 이 모양으로 진형을 정제하여 찬 돚을 달고 노를 저어 위풍이 당당하게 옥포를 향하여 행선하였다.
이날은 오월 칠일. 행진하기 한시가 못하여 미시 주에 옥포 앞에 다다르니 포구 선창에는 적의 병선 오십여 척이 바닷가에 매여 있고. 옥포의 시가에는 불을 놓아 연기가 창천하였다. 옥포 선창에 매인 큰 배는 사면에 장막을 둘렀는데. 장막에는 채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무늬르 놓았고. 장막 가에는 대막대기를 축 늘여 세우고. 거기는 붉은 기와 인기를 달았으며. 기는 좁고 긴 것도 있고 넓고 짧은 것도 있으되. 다 무늬 있는 비단으로 만들어 바람결에 펄렁거려 사람의 눈을 현황케 한다.
적군들은 배를 내려서 촌려에 들어가 노략하다가 이편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창황히 배에 올라 떠들며 노를 저어 바다 가운데로 나오지 아니하고 바닷가로 연하여 행서하여 나왔다. 그중에 선봉 여섯 척이 앞서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따르기를 명하였으나. 좌척후장여도 권관 김인영(金仁英)과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완(金浣)이 겁을 내어 머뭇거리는 양을 보고. 간후장 녹도 만호 정운(鄭運)이 분을 참지 못하여 칼을 빼어 들고 노를 재촉하여 앞서 나아갔다. 노를 젓는 군사가 잠간만 손을 멈추어도 정운은 칼을 들어 독촉하니 배가 빠르기 살과 같아서 곧 도망하는 적선을 따라 잡아 활을 쏘고 화전을 놓아 싸우기를 시작하였다. 적선에서도 화살과 조총이 날아 왔다.
정 운의 배가 적선에게 포위를 당함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싸움을 재촉하니 다른 배들도 노를 저어 달려 나가서 싸움이 어울려졌다. 순신은 명하여 화전(불화살)을 쏘게 하니 그것이 적선의 돛을 맞혀서 순식간에 십여 척병선에 불이 일어 불길과 연기가 하늘을 찌르고 적병이 규호하는 소리와 총포 소리가 바다를 흔들었다. 적의 함대가 한 곳에 결집한 때를 타서 순신은 거북선을 놓았다.
거북선이 이십 개 노를 저으니 빠르기 나는 듯하고 칠십여 혈의 포혈로 대포를 놓고 입으로 불과 연기를 토하며 좌충 우돌하니 닥치는 대로 적선이 부서지거나 불이 붙었다.
3
이 모양으로. 혹은 화살을 맞아 죽고 혹은 불에 타 죽고 혹은 물에 빠져 죽고.
마침내 지탱하지 못하여 더러는 배를 끌고 달아나고 더러는 물에 뛰어 들어 헤엄쳐 달아났다. 때는 신시가 되어 해가 거의 지게 되었다.
이 싸움에 겁 많은 좌부장 낙안 군수 신호(申浩)는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적장의 수급(모가지)하나를 얻었는데. 그 배에 실린 검. 갑옷. 관복 등물로 보아서 이것은 장수의 것인 듯하였다. 이때 일본 함대의 장수는 드당 고호(騰堂高虎)였었다.
우부장 보성군수 김 독광(金瀆光)이 큰 배 한 척을 깨뜨리고 포로로 잦ㅂ혀 갔던 조선 사람 하나를 사로잡고. 전부장 흥양 현감 배흥립(裵興立)이 큰 배 두척을 깨뜨리고. 중부장 광양 현감 어영담이 중선 두 척과 소선 두척을.
중위장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이 큰 배 한 척을. 처음에는 겁을 내이던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완(金完)이 대선 한척을. 우부기전통장 진군관 보인(右部騎錢統將鎭軍官保人) 이춘(李春)이 중선 한척을. 유군장 발포가강 전라 좌수영 군관 훈련 봉사 나대용(羅大用) 이 대선 두 척을. 후부장 녹도 만호 정운이 중선 한척을. 좌부 기전통장 순철 대장 전봉사(左部崎戰統蔣順天代蔣前奉事) 유섬(劉蟾)이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사로잡혔던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고. 간후장 전라 좌영 군관급제 최대성(崔大成)이 대선 한 척을 참퇴 장군관급제 배웅륙(裵應陸)이 대선 한척을.
참퇴장 군관 이언량(李彦良)이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순신의 막하 군관 훈련 봉사 변 존서(卞存緖)와 전봉사 김 효성(金孝誠)등이 합력하여 대선 한척을.
경상도 제장이 적선 다섯 척을 깨뜨리고 잡혀갔던 조선 사람 세 사람을 사로잠았다. 도합 적선 이십 육척을 깨뜨렸다.
바다 위에 타는 배는 해가 지도록 불길과 연기를 뿜었다. 살아 남은 적군은 산을 올라 수풀 속에 숨어서 죽기를 면하였다.
순신은 걸음 잘 걷고 활 잘 쏘는 군사를 놓아 도망하는 적을 잡으라 하였으나.
거제도에는 산이 험하고 초목이 무성한데다가 또 날이 저물었으므로 군사를 거두어 영등포 앞바다에 물러와 진을 치고 군졸로 하여금 나무를 하고 물을 기렁 밤을 지내려 할 즈음에 신시 말이되어 바다에 적군의 대서 sektjt 척이 지나간다는 척후장의 보변을 받았다. 정히 갑옷을 끄르고 쉬려 하던 차에 이보변을 받고 순신은 곧 제장에게 영하여 배를 저어 적선을 따르라고 하였다.
비록 옥포 싸움에 몸이 피곤하지마는 오늘 승전에 기운을 얻은 장졸들은 기운이 하늘에 닿아 함성을 지르며 배를 저어 황혼이 가까운 바다의 물결을 차고 적선을 다. 따랐다. 적선은 힘을 다하여 싸우면서 도망하여 웅천(熊川)땅 합포(合浦)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배를 버리고 물에 올라 도망해 버렸다.
사도 첨사 김완(金浣)이 대선 한척을 불사르고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이 대선 한척을. 광양 현감 어영담(魚泳潭)이 대선 한 척을. 방답진에 귀양 사는 전첨사 이응화(李應華)가 소선 한 척을. 전라 좌수영 군관 봉사 변 존서(卞存緖). 송희립(宋希立). 김효성(金孝誠). 이 설(李渫)등이 합력하여 대선 한 척을 깨뜨려 불사르니 황혼의 산과 바다에 화광이 충전하였다.
적선이 깨어졌다느 소문을 듣고 ant 백성들과 배 탄 사람들이 모여 와서 양식과 어물과 간장과 채소 등속을 바쳤다.
순신은 싸운 자리에서 밤을 지나는 것이 위태하다 하여 밤으로 배를 저어 창원(昌原) 땅 남포(藍浦) 앞바다에 진을 치고 순신이 친히 술을 부어 장졸을 위로하고 기쁨소게 밤을 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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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곧 오월 초파일이다. 날은 맑고 덥다. 아침밥도 먹기 전에 진해 지고리도(鎭海地古理渡)에 적의 병선이 우진하고 있다는 보변이 왔다. 순신은 곧 영을 내려 배를 띄웠다.
순신은 함대를 둘로 나누어 안과 밖으로 협공할 계교를 세웠다.
돼지섬(돼지섬)을 지나 고성(固珹)지경인 붉은돌(붉은돌)에 이르니 적선 십삼척이 바다목에 한 줄로 늘어서고 군사들은 더러는 포구와 동네에 들어 재물을 노략하고 집을 불사르러 가고 배에는 지키는 군사만 얼마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 힘들이지 아니하고 그 배르 다 잡아 불살라 버릴 수가 있었다.
낙안 군수의 부하에 있는 순천대장(順天代將) 유섬(兪贍)이 대선 한 척을. 동부 통 장군거 급제 박영남. 보인 김봉수 등이 합력하여 대선 한 척을. 보성군수가 대선 한 척을. 방답 첨사가 대선 한 척을. 사도 첨사가 대선 한 척을. 녹도 만호가 대선 한 척을. 이순신의 대솔군관이 설. 송희립 등이 합력하여 대선 두척을. 군관 정 노위(定虜偉). 이 봉수(李鳳壽)가 대선 한 척을. 군관 별시위 송 한련(宋漢蓮)이 중선 한 척을 화약으로 깨뜨려 불살라 버린 뒤에야 장졸로 하여금 조반을 먹게 하였다. 전군이 아침밥을 먹고 휴게하는 중에 웬 사람 하나가 등에 어린아이 하나를 업고 산꼭대기로부터 울며 내려와 주사를 향하여 하소할 것이 있는 양을 보인다.
순신은 군사를 시켜 종선을 보내어 그 사람을 태워 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순신의 앞에 와서 더욱 슬피 울었다. 아비가 우는 양을 보고 등에 업힌 어린것도 목을 놓아 울었다.
『네 성명이 무어니?』
하고 군관이 묻는 말에 그 사람은.
『소인은 살기는 적진포(赤珍浦) 근처이옵고. 본시는 향화인이옵고. 성명이온즉 이 신동(李信同)이라고 하오.』
하고 대답한다. 그제는 순신이 친히.
『그래 무슨 일로 왔어?』
하고 물은즉. 신동은.
『에. 소인이 여쭐 말씀이 있어 왔소.』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고 나서.
『적병이 들어온 이후로 경상도는 무인지경이 되었소. 수령 방백이 다 달아난다는 소문을 들었어도 싸운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 데 아까 뱃사람에게 듣사온즉 사또께서 주사를 거느리고 오시와 어제 거제도에서 적선 백척을 함몰하시고 또 돼지섬에서도 부수히 함몰시키시고 또 여기 적진포에 왔던 배도 저렇게 다 함몰을 하시니 소인이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하옵다가 우리 군사가 숭전하는 양을 보오니 이런 기쁜 일이 어디 있소? 소인은 금시에 죽어도 여한이 없소. 대체 어떠하신 양반이 이처럼 갸륵하신고 하고. 한번 뵈옵고 이런 하소나 할 양으로 사또께 왔소.』
하고 무수히 순신을 향하여. 절하였다. 그의 모양이 하도 지성 즉달해서 보는 사람들이 다 감동하였다.
『적병이 그동안 어찌하였느냐?』
하고. 순신은 그 백성의 찬양하는 말을 막고. 적병의 형세를 물었다.
『예. 젛사오되. 적병이 어제 이 포구에 들어 왔소. 어제 이포구에 들어 와서 여염으로 돌아 다니면서 재물과 우마를 약탈하여다가 지금 싸또께서 불살라 버리신 저희들의 배에다 갈라 싣고 어젯밤 초경에 배를 끌어 내어 띄우고 소를 잡고 술을 먹고 소리를 하고 저를 불고 놀기를 밤새도록 하였소. 가만히 그 곡조를 들으니까. 개시 우리 나라 음률입데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반은 배를 지키고. 반음 물에 내려서 고성으로 갔소.』
하였다.
5
수사뿐 아니라. 이 신동의 말을 듣는 사람은 다 비감하지 않을 이 없다.
『네가 여기서 나가다가는 적병에게 붙들릴 염려가 있으니. 병선을 타고 같이 가는 게 어떠하냐?』
하고. 순신이 이 신동에게 말하였다. 신동은 이마를 조아리며.
『사또 은혜는 백골난망이오나. 늙은 어미와 처자가 간 곳을 모르오니 소인 혼자 편안히 사또를 따라 갈 수가 있소? 소인은 가서 어미와 처자를 찾아 보아야 하겠소. 벌써 죽었는지도 알 수 없사오나. 죽었으면 신체라도 찾아서 묻어야 하겠소.』
하고. 어린 것을 업고 배에서 내려 갔다. 이것을 본 장졸들은 더욱 가슴이 아파 서로 격려하여 동심육력할 것을 맹약하였다.
순신은 곧 주사를 끌고 천성(天城). 가덕(加德). 부산(釜山) 등지로 가서 적의 소굴을 복멸할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아직 전하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의 함대가 오지 아니하였은즉 미약한 힘을 가지고 혼자 적의 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 위태한 일이라 하여 거제 앞바다에서 이억기의 주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문득 본영(전라도 좌수영)의 탐보선이 달려의서 전라도사 최철견(全羅都事崔鐵堅)으로부터 이 순신에게 온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사월 이십 구일에 왕이 서울을 버리고 관서로 피난하였다는 것을 보고 순신은 한손에 최 도사의 편지를 쥐인 채 엎더져 통곡하였다.
모든 장졸들도 이 소문을 듣고는 북향하여 통곡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최 도사의 편지 사연이 심히 간단하여 서울이 적병의 손에 들었는지 아니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왕이 서울을 버리고 관서로 달아났다는 말 한 마디는 모든 장졸에게.
『인제는 다 망했구나.』
하는 벼락 같은 격분을 준 것이다. 순신은 심히 마음이 비창하여 전군에 영을 내려 본영으로 돌아 가게 하였다. 순신의 생각에는 우선 본영에 돌아 가 서울 소식과 왕의 소식을 자세히 알아 보고. 혹은 다시 전라 좌우도 수군을 합하여 천성(天城). 가덕(加德). 부산(附酸)의 적의 수군을 소탕할 계획을 세우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주사를 끌고 평안도로 가서 왕을 호위할까. 좌우간에 결정 하자는 것이었다.
이때로 말하면. 경상도와 경성 간에는 세 길이 다 적군에 막혀서 소식을 통할 수가 없으니. 경성서나 이북의 소식을 알자면 전라도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순신에게는 또 한 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적병이 육로로 전라도를 침범하지 아니할까 함이었다. 적병이 육로로 전라도를 침범하려면 진주(晋州)를 지나서 섬진강(蟾津江)을 건너는 길과 충청도르 거쳐서 전주(全州)로 들어오는 두 길이 있다. 만일 진주와 전주가 무너지지 아니한다면 육로는 염려가 되지 아니하니. 그러한 경우에는 순신 자기는 주사로 물길을 막을 자신은 있었다. 그러니 진주가 과연 지켜질까. 순신은 그것을 염려하였다.
오월 구일 오시에 순신은 주사를 끌고 무사히 본영에 돌아왔다. 돌아 와서 왕이 무사하다는 소문을 듣고 적이 마음을 놓고 병선과 병기를 준비하며 군사를 조련하기로 일을 삼았다.
순신은 이번 옥포 기타의 싸움에 적선 사십여 척을 깨뜨리던 전말과. 주사가 지나 가는 곳마다 어떻게 백성들의 형편이 참혹이 참혹하더라는 것이며. 이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이 우리 주사가 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기뻐 뛰며 반기던 것이며. 그들은 다 배에 실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 오지 못한 것이 유감이란 것이며. 적선 사십여 척에서 몰수한 물건이 다섯 창고에 넣고도 남은 말이며. 그 물건들이 어떻게 사치하고 흉악하다는 사정을 세세히 왕께 계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