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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10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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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군사들은 머뭇머뭇하고 적진을 습격할 기운을 내지 못하였다. 더구나 장수 고 언백이 적진 있는 데까지 건너오지 아니하고 배를 타고 능라도 쪽으로 치우친 곳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군사들의 용기를 꺾었을 뿐더러. 그보다도 군사들의 비위를 상함이 더욱 컸다.
이때에 일각이 금싸라기보다도 더 귀한 이때에 군사들이 머뭇거리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큰 손실이었다 이때에 군사들 중에서 한 군사가 뛰어 나서며 칼을 들어 앞을 가리키고 자기가 먼저 적군 중으로 돌입하니. 모든 군사들이 기운을 얻어 뒤를 따랐다.
그 앞장선 군사는 평양병정 임 욱경(任旭景)이었다.
임 욱경은 적병이 자는 초막 하나를 습격하여 수십 명 적병을 죽였다. 다른 군사들도 임 욱경의 칼에 흐르는 피를 보고는 기운을 내어 저마다 한 초막을 습격하였다.
이 통에 첫째 진의 적병이 놀라 잠을 깨어 일어났으나 미처 수족을 놀릴 새가 없이 조선 군사의 칼 끝에 죽었다.
이 모양으로 첫째 진의 적병 수천 명이 거의 전멸하였다. 그리고 말 삼백여 필과 조총. 장검 등 좋은 군기를 수 없이 노획하여 이편으로 가져 올 양으로 강변으로 나를 적에 다른 진에 자던 적병들이 일어나 일시에 몰려오니 조선 사람들은 빼앗은 말과 군기를 모래판과 강물에 내버리고 다투어 배에 올랐으나 적병의 추격이 급하므로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는 자. 적병의 칼에 맞아 죽는 자가 수없고. 중류에 나떴던 배도 너무 사람을 많이 실어서 뒤집힌 것이 적지 아니하였다.
물길을 잘 아는 군사들은 왕성란(왕성란)이라는 여울목으로 걸어 건너 왔다.
고언백은 적병이 밀어 오는 것을 보고는 곧 배를 대어 달아나고. 오직 임 욱경과 그를 따르는 몇 십 명이 한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싸웠다. 나중에 임 욱경이 혼자 살아 남아서 좌충 우돌로 수십 명의 적병을 더 죽였다.
적병은 겹겹이 임 욱경을 에워싸고 사방에서 칼로 찍었다. 그러나 임 욱경의 용기와 칼 쓰는 재주에 여러 번 뒤로 물러날 때마다 몇 명씩 죽었다.
마침내 욱경은 적병의 탄환에 한 다리를 맞고 뒤로 치는 칼에 한 팔을 끊겼다.
그러나 그는 외다리와 외팔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싸웠다. 그러다가 마침내 적병의 탄환이 가슴을 뚫었다. 욱경은 피를 뿜고 땅바닥에 쓰러지면서도 칼을 들어 가까이 있는 적병을 향하여 던졌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고언백이 군사 패한 보고를 할 양으로 성중에 들어오니 성중에는 인적이 묘묘한데 대동관에 들어오니 온통 빈집이었다.
『오. 다들 미리 달아났고나!』
하고. 고언백은 말을 달려 수안을 향하고 도망하였다. 김명원은 고언백을 시켜 적신을 치게 하였으나 도저히 이길 것 같ㅊ지 아니하여 윤 두수에게 도망하자는 헌책을 하였다. 그리고 도망하는 법도 설명하였다. 도망하는 법은 어떤고 하면. 김명원의 계책에 의하면. 첫째로 성문을 열어 성중 백성을 내보내고 둘째로 군기와 군량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김명원이 여러 번 경험한 것으로 이 점에서 그는 도원수였다. 이 헌책을 하고 몰래 나와서는 급히 백성들이 소란을 일으키기 전에(혹시 일으킬지 모르므로) 먼저 달아나 버렸다.
윤두수는 김명원의 헌책대로 삼경에 성문을 열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다들 피난해라!』
하고 길로 다니며 외치게 하고 군기와 화포 등속은 풍월루 앞 못에 집어 넣고 윤 두수 이하고관 대작들은 몸에 경보를 지니고 걸음 잘하는 말에 올라 캄캄한 밤에 보통문(普通門)을 더듬어 수안으로 달아났다. 보통문을 나서서야 윤 두수는 군량고(각지에서 모아다 쌀은 것이 십여만 섬이었다. )에 블 놓기를 잊은 것이 생각났으나 그냥 달아나 버렸다.

27

유월 십 오일 석양에 . 일본군은 왕성탄으로 건너기 시작하였다. 새벽에 습격했던 조선 군사들이 건너는 것을 보고 길을 찾은 것이었다.
왕성탄을 지키던 군사를 향하여 활 한 방 쏘아 보라는 말도 아니하고 말을 타고 평양 성중으로 달아나 버리고. 이것을 본 군사들도 활을 메고 이 윤덕의 뒤를 따라 성중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성중에 들어 와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성중에는 아직도 많은 군사와 대관들이 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왕성탄을 지키되 힘을 다한다고 하던 순찰사 이원익은 밤중에 김명원의 밀서를 보고 이 윤덕과 군사들에게 대해서는 군사와 군기를 가지러 간다고 일컫고 성내로 들어와 버렸던 것이다. 이 윤덕은 윤 두수. 류 성룡. 김명원. 이 원익 들을 실컷 욕하고 원망하고 군사들도 다 내버리고 왕의 뒤를 따라서 달아나 버렸다.
이 윤덕을 따라 성중에 들어 왔던 군사들도 저마다 대관들과 대장들을 욕하고.
『이놈들을 배때기 째지 못한 것이 분하다.』
하고 도망해 버렸다.
일본 군사들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아니하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여울 지키던 군사들이 활 한 방도 쏘지 아니하고 성중으로 들어 가는 것이 필시 꾀가 있음이라하여 곧 성중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부벽루 영명사(永明寺) 근방에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을 말대로 기어 올라갔던 척후의 보고를 듣고야 평양 성중이 텅 빈 것을 알고 대군이 일제히 성중에 들어 왔다.
이 모양으로 그 굳은 평양성까지도 적군에게 내어 주었다. 임 욱경이 죽은 뒤에 한 사람도 싸워 보지도 못하고.
평양을 떠난 왕은 처음에는 영변(零邊)으로 갔다가 다시 박천(博川)으로. 왕이 의주에 도달하시었을 때에는 의주 성중은 무인지경이었다. 의주 목사는 달아나고 백성들은 피난하여 버리고 새와 닭. 개. 짐승의 그림자도 없고 남아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이나. 늙은이. 홀아비 같은 사람뿐이었다.
왕은 이유증(李幼證)으로 의 주 목사를 삼고 따라 온 조신 십여 인을 거느리고 동헌으로 행궁을 삼았다. 왕은 의주에 이르러 동으로 서울 있는 곳을 향하여 통곡하고 글한 수를 지어 중신에게 보였다 -.
『 』
(나라 일 창황한 제 충신이 그 누구냐. 큰 뜻 두고 나라 더나 회복은 너희 믿네 관산 달에 통곡하니 . 압수바람 마음 아파라. 조신아 이 후에도 동야서야 다시 할다!) 동야서야라 함은 이렇게 당파 쌈으로 나라를 망쳐 고도 동인이니 서인이니 다시 하겠느냐 하는 뜻이다. 나와서 가산(嘉山). 정주(定州)를 지나 유월 이십 이일에 의주(義州)에 도달하였다.
평양성을 점령한 소서행장(小西行長)등은 수십 명의 조선 사람을 매수하여 위주에 이르기까지 각처에 염탐군을 늘어 놓아 밤낮으로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래서 소서행장은 연광정에 가만히 앉아서도 평안도 각읍의 사정을 빤하게 꿰어 들고 앉았다.
소서행장이 의주까지 들이치지 아니하고 평양에 지체한 것은 제이차로 일본에서 건너 온 해군이 이 순신(李舜臣)의 해군을 싸워 이기고 경상. 전라.
충청도의 바다를 완전히 손에 넣어 수륙이 서로 응할 수 있는 날의 기다리는 까닭이었다. 부산서 의주. 육로 이천리의 전선을 해상권을 손에 넣지 않고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음을 아는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