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이순신 - 10 (21~25)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이순신 - 10 (21~25)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이순신 - 10 (21~25)

21

두 배에 탄 사람이 파차에 잠깐 주저한 것은 어느 편이 어느 편 배에 오를까 함을 정치 못함이었다.
평조신과 중 현소의 일행은 마침내 이덕형(李德馨)으 배에 올랐다. 이 덕형은 평조신과 현소의 낯을 알았다. 작년에 그들이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 )의 사신으로 왔을 때에도 이 덕형은 그를 접대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덕형과 조신은 왜학 통사를 통하여 마치 전장에서 만난 적국 사람들이 아닌 듯이 웃고 피차에 인사를 하였다 현소가 먼저 말을 내었다.
『두 나라가 간패로 서로 대하게 된 것은 참으로 중원에 조공하려는 것 밖에 없는데 귀국이 그것을 허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일이 이에 이른 것이요.
지금이라도 귀국이 일본에 중원에 조공할 길만 빌려 주면 무사할 것이요.』
하였다. 덕형은.
『황조(皇朝 = 명 나라)에 조공을 청하려면 공손히 할 길이 있을 터인데 왜 이름 없는 군사를 끌고 이웃 나라를 침노하오? 만일 진실로 황조에 조공할 길을 트기를 원하거던 곧 군사를 거두고 다시 오오.』
하고 준질히 책망하였다. 조신은 성내는 빛도 없이.
『귀국에서 일본의 청을 들어 중원에 가는 길을 빌린다면 곧 군사를 거두겠으나 그 허락을 받기 전에는 거둘수 없소.』
하였다. 이모양으로 덕형과 조신과는 서로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여 타협점을 발견할 길이 없었다.
조신은 임진강(臨津江)에서도 군사만 물리길 빌리기를 허락하겠다는 조선측의 말에 속았노라 하고. 덕형은 군사를 물린다기에 믿었더니 도리어 복병을 하고 있다가 이편 군사를 역습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여 서로 약속을 저버린 것을 책하였다. 이리하여 피차에 어성은 높아 가고 감정은 흥분되어 조신은 마침내.
『지금 뒤에 삼십만 대병이 있고 또 십만 명수군이 전라도. 충청도를 돌아 평안도로 올 터이니 그리 되면 다시 용서가 없을 것이요. 귀국 왕을 사로잡아 항서를 씌우는 자리에서 대감도 다시 만납시다.』
하고 호기를 부렸다.
덕형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이제 며칠이 아니하여 『천병(天兵= 명나라 군병) 백만이 올 터이니 그때에 후회하지 말라.』
하였다. 이러고 조신과 현소는 자기네 배로 돌아가고 덕형도 연광정(연광정)으로 돌아 왔다. 연광정에 앉아서 하회를 기다리던 윤두수(尹斗壽). 류 성룡(柳成龍) 이하 여러 사람들은 강중에서 이덕형과 평 조신의 높은 어성을 가끔 들었다. 이렇게 유월 십일의 대동강상의 강화 담판은 파열이 되었다.
이 기회에. 오월 십 육일 임진강(臨津江)에서 소서행장(小西行長)이 평 조신(平調信 = )을 시켜 조선 조정에 보낸 편지를 보자.
( )

22

이 글은 서투른 일본말식 한문으로 쓰였다. 그것은 중현소가 지은 것이다.
이것을 조선말로 번역하면 이러하다. - 두 번째 글을 올리나이다 『 . 이제 올린 글에 화친하자는 말을 한 것을 귀국에서 믿지 아니하심은 그럴듯한 일이로소이다. 우리 군사. 만리 풍파의 어려움과 강산의 험함을 지나 곧 서울에 들어 왔거늘 이제 연고 없이 화친하려 하니 귀국에서 믿지 아니하심이 또한 그럴듯한 일이로소이다. 신(적은 글자로)이 귀국을 위하여 그 연유를 설명 하리이다. 우리 전하 길을 빌어 대명국을 치려 하시매 비록 제장이 명을 받자와 이곳에 왔으나. 이로부터 또 수천리를 지나 대명국에 들어 가고자 아니하니. 이러므로 먼저 귀국과 화친하고 그런 후에 귀국의 한 말씀을 빌어 대명국과 화친하려 함이로소이다. 귀국도 한 말씀으로써 대명국으로 하여금 일본과 화친케 하시면 세 나라가 다 평안하리니 이에서 더한 양책이 없는가 하나이다. 제장의 고생을 면하고 만민을 소생케 하시면 세 나라가 다 평안하리니 이에서 더한 양책이 없는가 하나이다. 제장의 고생을 면하고 만민을 소생케 하자 하는 것은 우리 모든 장수들의 뜻이로소이다. 전하도 귀국고 절교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나 귀국이 이웃 나라 사귀는 도리를 잃어 우리 군사를 막으므로 우리도 싸움을 할 뿐이로소이다. 신(적은 글자로 )이 공로 없이 귀국의 큰 벼슬을 받자오니 어찌 큰 은혜를 잊사오리까? 나라 명을 받자와 모든 장수의 앞장을 서는 것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연고로소이다. 이제 간담을 기울여 누누이 아뢰오니 족하를 살피소서.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거든 그 또한 가하나이다. 의지와 행장 두 사람이 한 종이에 쓴 편지를 올리나이다. 자애하심 빌고 이만 올리나이다. 자애하심 빌고 이만 올리나이다.』
이 편지 속에 전하라고 한 것은 태합(太閤) 풍신수길(豊臣秀吉)이다. 풍신수길이 외아들을 죽여 버린 홧김에 명나라를 치려는 생각을 내어 모든 장수가 부득이 온 것이지마는 명나라에까지 싸우러 갈 생각은 없으니 조선에 거명 나라에 잘 말해서 풍신수길의 마음을 풀어 주게 하면 자연 싸움이 없어지리란 것이요. 또 평 조신(平調信)이 조선의 높은 벼슬을 받았다 함은 작년인 신묘년에 그가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에 조선에서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주었음을 기리킨 것이었다.
대동강상의 강화 담판이 파열이 되매 그날 저녁으로 일본군은 평양성 총공격의 결심을 한 듯하였다. 전에는 그렇게 빛을 보이지 아니하던 일본군 수천 명이 강 동쪽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위엄을 보였다. 그들의 찬란한 깃 발과 번쩍거리는 검빛이 석양에 비치어 여름 구름의 뱃경과 아울러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였다.
대동강상의 강화 담판의 파열과 그날 석양의 적병의 시위는 왕이하 조선의 조정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평양을 버릴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
유월 십 일일 미명에 왕은 영의정 최홍원(崔興嫄). 우의정 유흥(兪泓). 전 대신정철(鄭澈) 등을 데리고 소리 없이 칠성문을 빠져 쫓기는 길을 나섰다.
이렇게 몰래 떠나는 뜻은 백성들을 무서워함이었다. 바로 그저께 백성들을 향하여 몸소 평양을 지킬 것을 서약하지 아니하였는가. 이제 도망군이 길을 떠나면서 첫 번째로는 백성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던 것이었다. 따르는 신하들 중에도 가장 백성을 두려워한 이는 정 철과 유 홍이었다.
매전은 북도를 향하여 그저께 저녁에 도망군의 길을 떠나고 이제 세자를 데리고 초조한 도망의 길을 떠나는 왕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왕의 일행은 철옹성(鐵甕城)이라고 일컫는 영변(寧邊)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23

왕이 평양을 떠날 때에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평안도 순찰사 이원익(李元翼)등으로 하여금 평양을 유수케 하고 류 성룡(柳成龍)으로 하여금 같이 평양에 머물러 당장(명나라 장수)을 접대하게 하였다.
십 일일 왕이 떠난 뒤에 윤 두수(尹斗壽). 김명원(金命元). 류 성룡. 이 원익 등 유 수군(留守軍)의 수뇌부는 연광정(練光亭)에 모여 앉았다. 그들은 마치 적군이 공격하는 양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같았다. 그들은 명색은 수성 대장이니 도원수니 하여. 마치 훌륭한 장수나 되는 것 같지마는 기실은 월귀나 좋이 짓는 선비들에 불과하였다. 일찍 활 한번 잡아 본 일 없고 병서 한권 본 일 없었다.
다만 병원은 문관 자기네 손에 잡고 싶은 욕심에. 다시 말하면. 정말 군인인 무인에게 병권을 주기 싫은 까닭에 체철사니 도원수니 하는 직함을 띠는 것이었다.
지금 적병이 대동강을 건너서 평양성을 총공격을 하려는 이때에 그들은 관광하는 선비 모양으로 연광정에서 강바람을 쏘이고 앉은 것이었다. 왕을 따라서 안전 지대로 도망한 최흥원(崔興嫄). 유흥(兪泓). 정철(鄭澈)의 무리의 신세를 얼마나 부러워 하였을까? 부질없이 류 성룡의 말을 좇아 평양성 고수설에 좌단하였기 때문에 평양을 지키라는 왕명을 받게 된 것을 얼마나 한하였을까?
『어떻게 된 모양이요? 지킬 배비는 다 되었소?』
하고. 류성룡은 유수 대장인 윤두수에게 물었다. 윤두수도 이름이 대장이지 군사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도수원 김명원을 돌아 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도원수요. 도망하는 싸움이라도 두어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이가 김명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명원도 . 항상 적군이 가까이 오기 전에 피하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에 실지로 싸우는 양은 본 일도 없고 지휘한 일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평양성의 수비에 대한 사실상 책임자다. 이 자리에서 한 마디 아니할 수가 없었다. 김명원은.
『배비라야 별 배비 있소. 본도 감사 송 언신(宋言愼)이 대동문을 지키고.
병사 이윤덕(李潤德)이 부벽루(浮碧褸) 이상의 여울을 지키고. 자산 군수(慈山郡守) 윤유후(尹裕後)등이 장경문(長慶門)을 지키고. 성중 사졸들이 성첩을 돌아 지키오.』
『성중 사졸이 모두 얼마나 되오?』
하고. 이번엔 윤두수가 물었다.
『한 삼사천되지요.』
하는 것이 김명원의 대답이었다. 삼사천이라는 것이 숫자에 대한 대답으로 김명원은 아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삼사천명 사졸은 어떻게 배비하였소?』
하는 것은 이 총중에서는 가장 병법에 소양이 있다는 류 성룡의 물음이다.
김도원수는 말문이 막혔다. 한참이나 주저하다가.
『그저 성을 돌아 지키라고 하였소.』
하고 강가에 연한 성을 바라보았다. 과연 성 위에는 여기 한떼 저기 한 모여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혹은 여청 군복에 다홍동 달고 벙거지 쓴 정식 군사도 끼었지마는 대부분은 흰 바지저고리에 수건 동여맨 보통 백성들이었다. 이름을 붙이자면 의용병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떤 곳에는 백여 명이나 한데 뭉치고 어떤 곳에는 둘씩 셋씩 따로 떨어져서. 혹은 앉고 혹은 서고 혹은 강을 들여다 보소 홋은 대관들이 좌정하신 연광정을 눈이 부신 듯이 바라보았다. 여름볕은 찌는 듯하나 강바람은 그대로 서늘하였다.

24

또 을밀대(乙密臺) 근처 소나무 가지에는 혹은 저고리를 걸고 혹은 바지를 걸어 마치 빨래터와 같았다.
『저건 다 무엇이오?』
하고 유성대룡이 김도원수에게 물었다.
『대감 그것을 모르시오? 그것이 의병(의병)이란 것이요.』
하고 도원수는 자랑하는 듯이 웃었다.
『저걸 보고 누가 군사로 안단 말이요?』
하고 류성룡도 웃었다.
『어떤 것은 너무 높이 걸렸어.』
하고 윤두수도 웃었다. 일좌가 다 웃었다. 김도원수는 무안하여 종사관더러.
『여보게. 어떻게 시켰는데 옷을 저 모양으로 걸어 놓는단 말인가?』
하고 책망을 하였다. 이때에 강 저쪽을 바라보니 비록 수효가 많지는 아니하나 동대원(東大院) 강 언덕 위에 적병이 일자진(한일자 모양의 진)을 치고 우리 나라 만장과 같은 붉은 기. 흰 기를 늘여 꽂고 군사들이 모두 큰 검을 비껴 들었는데 그것이 햇빛에 비취어 마치 없는 번개와 같이 번쩍거렸다. 이편 군사와 저편 군사의 위풍을 비교할 때에 일좌는 모두 기가 막히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저기 다 정말 검일까?』
『그게 검이 아니라 나무칼에다가 납을 발라서 멀리서보는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것이라오.』
이러한 회하도 있고.
『적병도 모두 얼마 안되는 모양이야. 공연히 초막만 많이 짓고 깃발만 많이 달았지 모두 풍인 모양이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에 적병 육칠인이 조총을 들고 강변으로 나오더니 성을 향하고 일제히 쏘는데. 그 소리가 웅장하여 총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초d알이 성을 넘어 대동관(大同館) 지붕 기왓장 위에도 떨어지고 혹은 성루 기둥을 맞혀 두어치 깊이나 들어 가 박혔다. 적병 중에 붉은 옷을 입은 자가 연광정(練光亭)을 바라보고 조총을 어깨와 볼 틈에 끼고 겨누어 주춤주춤 물가까자 내려 와 쏜 총알이 연광정 위에 앉은 사람들을 맞혔다. 다행히 죽지는 아니하였으나 성 사람들이 모두 놀라 몸을 오그리고 기둥 그늘에 숨었다. 윤두수(尹斗壽). 김 명원(金命元) 이하로 모두 눈이 둥그레져 어 찌할 바를 몰랐다.
『이러고 있어 되겠소? 우리도 응전을 하여야지.』
하고. 류 성룡 한 사람이 그래도 정신이 남아서. 군관 강 사익(姜士益)으로 하여금 방배에 몸을 숨기고 편전(片箭)을 쏘게 하였다. 살이 날아 적병이 있는 모래 위에 떨어지니 적병들이 두려워 주춤주춤 물러갔다. 그제야 도원수 김명원도 기운을 얻어 활 잘 쏘는 군사 수십 명을 뽑아 결음 빠른 배를 태워 중류에 나떠서 쏘게 하였다. 일변 쏘며 일변 저어 배가 강 동쪽 언덕에 가까이 가매 적병이 두려워 뒤로 피하였다.
우리 군사가 배에서 감을현자 총으로 화전(火箭)을 쏘니 서까래 같은 불이 강을 건너 갔다. 적병은 그것을 우러러 보고 모두 부르짖고 떠들며 화전이 떨어진 곳으로 모여 다투어 그것을 구경하였다.
이날에 병선을 준비하는 거행이 태만하다 하여도원수 김명원은 공방 아전 하나를 잡아 들여 연광정 앞에서 군법 시행을 하였다. 목을 벤 것이다.

25

활로 잠시 소부대의 적병을 물리쳤으나 그것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적병이 가진 조총의 위력은 그것을 처음 보는 이편 장졸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평양성에서 적병을 막을 길은 대동강 물을 깊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단군묘(檀君廟). 기자묘(箕子廟). 동명왕묘(東明王廟)에 왕이 제신을 보내어 빌었으나 비는 오지 아니하고 강물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아무리 물이 줄더라도 능라도(綾羅島) 이하로는 도보로 건너 가기 어렵지마는 그 이상으로는 얕은 여울이 많아서 길만 알면 건널 수가 있었다. 적병이 아직까지는 길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에는 반드시 길을 찾을 것이요. 또 만일 대동강 물길을 잘 아는 우리 사람을 붙들기만 하면 금시라도. 오늘 밤에라도 건너 올 것이니. 대동강을 건너기만 하는 날이면 평양성을 지킬 수 없으리라는 것은 다만 윤두수. 김 명원 등의 의견뿐이 아니라 류 성룡의 생각도 그러하였다. 류 성룡은 윤 두수더러.
『대감. 어찌하자고 저 여울목을 아니지키시오? 다른데는 못하더라도 여울목만은 엄히 지켜야 하지 않겠소?』
하면서 재촉하였다.
윤두수는 대답하는 대신에 김명원을 돌아보았다. 그는 오직도원수 김명원을 믿는 이었다. 원체 성미가 느린 김도원수는.
『왜 여울을 안 지키나요? 이 윤덕(李潤德)이가 지킵니다.』
하고 류성룡에게 대답하였다. 류성룡은 어성을 높여.
『이 윤덕이 따위를 어떻게 믿는단 말이요!』
하고. 순찰사(巡察使) 이원익(李元翼)등을 향하여.
『여보. 하루 종일 이렇게 모여 앉아서 마치 무슨 잔치나 하는 것 같으니 이러고 어찌하잔 말이요? 왜 가서 여울을 지키지 아니하시오?』
하고 책망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이 원익은 무안한 듯이.
『가 보라고 하시면 소인이 안갈 리가 있소?』
하고 수성 대장 윤두수를 바라본다. 윤두수는 잠깐 도원수 김명원의 눈치를 보더니 이원익을 향하여.
『그러면 대감이 가 보시오그려.』
하였다. 이것이 명령이다.
이 원익은 막하를 데리고 연광정을 내려서 청류벽으로 천하 제일 강산의 경치를 완상하고 글귀를 생각하면서 능라도 여울을 향하여 올라 갔다.
류 성룡은 연광정에서 돌아 와 도저히 평양성을 오래 지키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의 맡은 직분이 성을 지키는 군무가 아니라 당장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여 종로까지 가서 하루바삐 당장을 맞아 오는 것이 평양성을 지키는 일이 된다는 핑계로 그날 밤 달빛을 타서 종사관(從事官) 홍종록(洪宗錄). 신 경진(辛慶晋)을 데리고 평양성을 떠났다.
이날 밤에 도원수 김명원은 정병 수백 명을 가리어 고언백(高彦伯)으로 총사령을 삼아서 밤 삼경을 기회로 부벽루(浮碧樓) 밑에서 배로 능라도 나루를 건너 적진을 야습하기로 하였다.
삼경이라고 맞추어 놓은 것이 군사들은 삼경 전에 약속한 곳이 모였으나 장수 되는 고언백이 사경이나 지나서야 왔다. 그래서 군사들이 적진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훤하게 먼동이 텄었다.
적진에서는 여러 날 강을 건너지 못라여 지루한 생각이 난데다가 조선군이 적극적으로 습격할 것을 생각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잠이 들어 아직 일어나지를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