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이순신 - 03 (01~05)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이순신 - 03 (01~05)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이순신 - 03 (01~05)

1

임진 사월 십 이일 진시에 일본의 함대는 대마도의 대포(大浦)를 떠나서 신시 말에 부산진 앞바다에 다다랐다. 병선 칠백여 척이었다. 이 칠백여 척의 대함대가 구름과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한 보고가 곧 전라 좌수영에서 수사 이순신이 사월 십 오일에 받은 첫 경보이었다. 이렇게 칠백척이나 되는 대함대가 국경에 침입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 계책이 없던 조선 관헌들은 실로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그 이튿날인 사월 십 심일 미명에 일본 함대는 아무 저항도 받음이 없이.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진을 향하고 개미때와 같이 진군하였다. 이날에 부산진을 지키는 주장인 첨절제사(僉節制使) 정 발(鄭撥)은 절영도(絶影島)에 사냥을 나가서 자고 아침에야 비로소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다는 경보를 듣고 타고 갔던 병선 세 척을 끌고 창황하게 부산진으로 돌아 와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일 같이 있었다. 군사들이나 백성들이나 조금도 놀라지 아니하고 성 위에 올라 가서. 일본군이 이상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소총을 메고 개미떼와 같이 몰려 들어오는 것을 구경삼아 보고 있었다. 이것은 조정이 심 성일의 말을 믿어서 일본이 싸우러 오리라는 말을 일체 입 밖에 내기를 금지하여. 백성들이 전혀 난리가 난 줄을 모를는 까닭이었다. 해마다 한번씩 일본 배들이 장사하러 오는 예가 있으니. 이것도 아마 그것인가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도 많고 사람도 많고 차림차림도 현란하구나 할 뿐이었다.
『사또. 암만 해도 저 일본 사람들이 군사인가 보오. 평수 길이 싸우러 온다더니 과연엔가 보오.』
하고. 부하가 의심스럽게 말하나 결의 사람들은 나라에서 금하는 말(싸움이 난다는 말)을 한다고 눈을 끔적거리고 첨사 정 발은 작취가 미성한 낯에 웃음을 띠우며.
『일본이 아무리 강성 하기로니 무명 지사를 일으켜 가지고 천벌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또 설사 일본이 감히 싸움을 돋운다 하기로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내 이 칼 하나면. 만 명이 오기로 무슨 걱정이냐.』
하고 칼을 만지며 뽐내었다 . . 정발은 칼쓰기를 자랑하고 또 호협한 남아다.그 말이야 시원하다. 또 정 발의 자신에는 노상 이유가 없지도 아니하였다. 부산 해성(釜山海城)에는 육천명 군사가 있었고 성의 주위에는 깊은 못이 있고 바닷가에서 성에 이르는 동안에는 마병이 말을 달리지 못하도록 철질려를 깔았다. 이만한 병력과 설비가 있으면 왠만한 적병은 무서워하지 아니하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다.
첨사 정발은 이러한 모든 것을 믿고 배짱 편안하게 동헌에 앉아서 지난 밤 부족한 잠을 졸고 있었다.
이때에 일본 장수 소서행장(小西行長)에게서 부산 첨사에게 사자가 왔다. 그 사자는 공손히 첨사에게 예하여 소서의 편지를 첨사에세 드렸다. 그 편지에는 보통 편지 모양으로 환훤의 인사가 있고 그 끝에 이번에 평수길이 대군을 발하여 명 나라를 치려 하니. 일본 군사레게 길을 빌려 무사히 명나라로 들어 가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정발을 그 편지를 보고 비웃는 듯이 껄껄 웃고 내어 던지며.
『네 저놈을 성 밖에 몰아 내쳐라!』
하고 호령하였다. 정 발의 생각에 그 편지는 괘씸한 것 보다도 엉큼하였던 것이다.

2

군졸들은 소서행장의 사자를 뒤 떨미를 짚어서. 그야말로 발이 땅에 붙을 새가 없이 성문밖에 몰아 내쳤다. 그러나 한 가지는 판명하였다. 그것은 이 배와 사람들이 해마다 오는 세견선과 상인들이 아니라. 싸우러 온 병선이요. 군사라는 것이었다.
부산진 첨사 정발은 소서행장의 사자를 몰아 내고 곧 군중에 전령하여 성문을 굳이 닫고 적병을 방어할 계획을 세웠다. 군사 이천명을 성 위에 벌여 놓아 성 밖으로 모야 드는 적을 활로써 막게 하고. 남은 군사는 갈라서 혹은 성문을 지키게 하고 혹은 병기를 정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말을 놓아 다대포첨사(多大포僉使) 윤홍신(尹洪信).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박홍(朴泓). 경상 좌도 병마 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 이각(李珏). 동래 대도호부사(東萊大都護府使) 송 상현(宋象賢)에게 일본군이 길을 빌리라 하는 말과 그것을 거절하였다는 말과 자기는 부하를 거느리고 죽기로써 부산성을 지킬 터이니. 만일 부산진의 힘만으로 적군을 막아 내기 어려울 경우에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구원해 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다대포는 남으로 이십리도 못되고 좌수영은 부산에서 동래부로 가는 중로에 있어서 부산진에서는 . 십오리도 다못되는 곳이요. 거기서 동래부는 십리 남짓하였다. 좌병영은 울산 지경에 있으니. 그것도 부산진에서는 하룻길에 불과하였다.
정발은 설사 칠백여 척의 일본 병선이 사오만의 군사를 싣고 왔다 하더라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편 군사로 보면 부산진에 육천이 있고. 좌수영에 일만 이천이 있고. 동래부에 육천이 있고. 좌병영에도 일만여 명이 있고. 게다가 적군이 가지지 못한 성과 지리가 있으며 또 인근에 거진이 많은즉 이삼일 내로 오륙만의 군사를 모으기는 어렵지 아니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방어의 계획을 세우고 첨사 정발이 검은 공단 갑옷에 황금 투구를 쓰고 사랑하는 일검 보국(一劍報國한칼로 나라 은혜를 갚는다)의 칼을 차고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고. 비장. 병장. 군관들도 모두 전복 전립에 우의를 갖추고 활시위를 팽팽하게 매고 새로 갈아서 약을 바른 살촉을 박은 화살을 전동에 가득하게 넣어 메고 성 위에 벌인 진중으로 돌아 다니며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병이 몰아 오기만 하면 융전할 준비를 하고 일변 소와 개를 잡아 군사들을 한밥 먹이고 싸워서 이긴 뒤에는 칠백척 배와 뱃속애 있는 물건은 군사들이 맘대로 나누에 가질 것을 약속하였다. 이리하여서 하늘에 닿을 듯한 기운을 가지고 소서행장의 군사가 쳐들어 오기를 기다렸다.
과연 진시가 되자 일대의 일본 군사다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장사 진형을 가지고 부산진을 향하여 달려 왔다. 멀리서 보기에 일만 명은 될 듯하였다. 맨 앞에는 장수 같은 자가 말을 타고 앞섰고 중간쯤해서는 붉은 비단 갑옷을 입고 금빛이 번쩍거리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쓴 대장이 여러 장수의 옹위를 받고 말을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이 붉은 갑옷을 입은 장수는 제일군의 대장인 소서행장이요, 진의 맨 앞에 선 장수는 선봉장 모리 휘원(毛利輝元)이었다.
소서행장의 군대는 부산 해성에서 활 두어 바탕될 만한 곳에 와서는 진형을 학익진(鶴翼陣)으로 변하여 부산성을 에워 살 모양을 보이고는 잠간 진을 머무른 뒤에 어떤 장수 하나가 단기로 부산성 남문을 향하고 달려 와서 편지 하나를 전하였다. 그것은 아가 편지와 마찬가로 길을 빌려 달라는 것이요. 만일 빌리지 아니하면 십만대군으로써 부산성을 무찌르겠다는 최후 통첩이었다.
『그놈을 죽여라!』
하고 비장들이 분개하였으나 정발은.
『단기로 온 사자를 죽이는 것이 의가 아니다.』
하여 만류하고 왜어 통사를 시켜.
『길을 빌리는 것은 일개 병장이 할 일이 아니니. 우리나라 왕께 여쭈어라.』
는 회답을 전하고 또.
군사를 물려 서울서 『 회답하기를 기다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사정 없이 멸하리라.』
는 위협하는 말을 보내었다.

3

소서행장의 군사는 정첨사의 회답을 받아 보고는 무엇을 생각함인지 군사를 돌려서 물러갔다. 정발은 적군이 물러 가는 것을 보고 심히 만만하게 여겨서.
제장을 불러서 술을 먹고 즐기고 순사들에게도 술을 주어서 질탕하게 먹었다.
마치 승전이나 한 듯하였다.
그러나 소서행장 군이 물러 간 것은 결코 정발과 그 부하가 생각하는 것처럼 서울서 회보가 오기를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부산성의 방비가 심히 삼엄한 것을 보고 당장 공격하면 이기기가 어려운 줄을 알았기 때문에 아직 거짓 믿고 물러 가서 조선군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게 하자는 것이었다.
부산 성내에서는 군사나 백성이나 평일같이 희희낙락하게 그날을 보내고 밤에 각각 자리에 들어 단잠을 잤다. 잠을 자서는 아니 될 첨사 정발과 부하 장졸들까지도 잠을 잤다.
이날은 곧 산과 들에 꽃까지도 역력히 볼 수가 있었다. 따뜻하고 생명에 찬 첫여름의 달밤은 극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성뭉을 지키던 장졸들과 성랑으로 돌며 파수를 보던 장졸들도 잠이 들고 달이 서편 하늘에 기울어져 부산(산 이름)의 그림다가 먹과 같이 검게 부산성을 덮고 새벽빛은 아직 비치지 아니한 축시 말 인시 초쯤해서 수만 명 소서의 군사는 선봉장 모리 휘원의 지휘 밑에 열 겸스무 겹으로 부산 해성을 에워쌌다.
대게 일본군의 본진이 유둔하는 곳에서 부산진까지는 오리는 넘고 십리는 좀 못될 만한 가까운 거리이므로. 달이 넘어 가기를 기다려서 대군을 몰아 삽시간에 부산진을 에워 싼 것이다.
초저녁에는 그래도 파수도 보았으나. 닭이 울고 새벽이 가까우매 술 취하고 훈련 없는 군사들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소서군은 부산의 지리를 황하게 잘 아는 왜호(倭戶)를 앞잡이로 성못(성 밖에 파놓은 못)의 얕은 데를 가리고 성내의 수비가 약한 곳을 가리어서. 일변 흙으로 못을 묻어 길을 내이고 일변 비제(飛梯)를 성애 놓고 깊이 잠든 부산성으로 터 놓은 물같이 밀어 들었다.
소서군은 성에 들어오는 대로 집에 불을 놓고 조총을 콩 볶듯 놓아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에 피와 주검이 길을 막았다. 마음 놓고 자던 백성들은 이 불의의 변에 놀라시 혹은 어린 아이를 안고 혹은 늙은 부모를 업고 갈팡질팡 하다가.
혹은총에 맞아 주고 혹은 군사에게 밟혀 죽었다. 조선 군사들도 활을 들어 응전하였으나 벌써 겁을 집어 먹을 뿐더러. 처음 당하는 조총의 위력에 활이 당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먼 거리에서 마주 보고 싸우면 활이 조총(그때 조총은 멀리는 못 갔다)보다 나은 수도 있었으나 단병 접건에는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군사는 시가 싸움에 익되 조선 군사는 야전에만 익엇 어느 편으로 보든지 조선이 불리하였다. 길 잘 아는 왜호를 앞세운 일본군은 내 집에 들어가듯이 성내의 요새지를 점령하고 마침내는 첨사 아문을 포휘하고 첨사에게 항복을 권하였다.
『사또! 형세가 이 지경이니. 인제는 항복하는 수밖에 없지 아니하오.』
하고 바장(비장) 황운(黃雲)이 칼을 들고 달려 나가려는 첨사 정발의 갑옷 소매를 끌었다.

4

『항복을 말하는 자는 군법에 처하리라.』
하고 정발은 여전히 싸움을 독려하였다. 영문 안에 남은 군사가 아직 천명은 남았다. 육천명 군사 중에 오천명은 벌써 다 죽은 것이다. 비록 늦게 응전하였으나 정발은 잘 싸웠다.
『에크. 검은 갑옷!』
하고 일본 군사는 정 발의 검은 갑옷이 번쩍할 때면 무서워하였다. 그의 칼은 참으로 신인 듯하여. 그의 칼이 번뜩이는 곳에는 적병이 삼 슬 듯하였다.
그러나 중과 부적하여 정 장군은 마침내 남은 군사를 끌고 영문 속에 물러 와서 최후까지 싸우기를 결심한 것이다.
해는 올라 왔다. 성내에는 화광이 충전하고 성 위에는 도처에 붉은 기였다.
붉은 기는 일본 군사의 기었다. 남은 군사도 하나씩 적군의 조총알에 맞아 거꾸러지고 한량 있는 화살도 거진 다하였다. 푸르륵하는 조선 군사의 활쏘는 소리. 밖으로 들려오는 백성들의 우짖는 소리!
『사또! 인제는 살도 다하였으니. 도망하엿다가 훗 기회를 기다림이 어떠하오?』
하고 비장 황운이 정 발에게 청하였다. 활을 쏘자니 살조차 없는 군사들은 부질없어 활을 들고 첨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안에서 화살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일본 군은 납함하며 삼문 밖에 다다랐다.
정발은 웃으며.
사내가 죽을지언정 『 도망을 한단 말이냐. 나는 이 성의 귀신이 될 터이니.
가고 싶은 자는 가거라........』
하고 칼을 빼어 들고 삼문을 향하여 나갔다. 마지막으로 적을 하나라도 죽이고 자기도 죽자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는 아직 아침도 먹지 못한 군사들은 축시 말에서부터 진시가 넘도록 싸우는 통에 시장한 줄도 몰랐으나 살이 진하고 더 싸울 기력이 없으니. 일시에 시장과 피곤이 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정 발의 비장한 말에 군사들은 다시 기운을 내어.
『우리도 사또와 같이 이 성 귀신이 되려오!』
하고 칼이 있는 자는 칼을 들고 칼도 없는 자는 활집과 몽둥이를 들고 정발의 뒤를 따랐다. 정발은 삼문을 열기를 명하였다. 삼문은 열렸다.
밖에 있던 소서행장의 군사는 와! 하고 안으로 몰려 들었으나 정발의 칼바람에 경각간에 수십 명이 죽는 것을 보고 뒤러 물러섰다.
정발은 칼을 두르며 도망하는 소서행장의 군사를 따라 고루(북단 다락)까지 나갔다. 군사들도 정 발의 뒤를 따라 용감하게 적군을 엄살하여 수백의 적군을 죽이면서 장거리까지 나왔으나. 마침내 정발은 조총의 탄환에 십야 군데를 맞아 땅에 엎더졌다. 비장 황운은 엎더지는 정발을 안아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도 탄환에 맞아 주장을 안은 채로 넘어져 죽었다.
이리하여 진시말에 부산진 육천명 장졸은 거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 죽고.
부산진은 일본군에게 점령함이 되었다. 이날에 일본군이 죽은 것도 사천이 넘었다.

5

정발은 형세가 위급함을 보고 여러 번 좌수영9이십리미만)에 구원을 청하였으나. 좌수영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중에 몇 사자는 적군에 붙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빤하게 바라보이는 곳에서 경상 좌수사 박홍이 부산진이 위급한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부산진을 일본군이 에워쌌다는 말을 듣고 경상 좌수사 박홍은 곧 애첩과 가족을 동래부로 피란시키고 자기는 경보를 몸에 지니고 뒤산에 올라 부산진의 형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후. 군관 중에는 군사를 내어 부산진을 구원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박 홍은.
『군사를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다.』
는 핑계로 듣지 아니하였다. 약한 장수의 밑에는 강한 군사가 없었다.
부산진에서 위급하다는 기별이 와도 수사가 꼼짝하지 아니하는 양을 보고 군관.
군졸들은 모두 장수의 밎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가족과 재물을 뭉쳐 가지고 동래부로 도망하였다. 그러다가 정 발로부터.
『위급하다. 곧 구원하라.』
하는 최후의 고목이 온 때에 박홍은 창황히 말을 내이라 하여 도망할 준비를 하고 그래도 후일에 책망을 두려워함인지 서울로 사람을 놓아.
『부산성에는 붉은 기가 찼아오니 아마 적에게 함락된 듯하나이다.』
하는 장계를 띄우고 군사를 시켜 군량고와 병기고와 민가에 불을 놓게 하고 말을 몰아 동래성을 향하고 달아났다. 군사 삼만을 가진 거진으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달아나는 수사 박홍을 향하여 군관 오 억년(吳億年)은 무수히 욕질하고 마침내 분을 참지 못하겨 활을 당기어 박홍의 등을 쏘니. 박홍은 맞아 말에서 떨어지고 말은 놀래어 북을 향하고 달아났다.
오 억 년은 수사 박홍을 죽이고 (기실은 죽지는 아니하였다) 남은 군사를 수습하여 달려가 부산을 구하려 하였으나. 한번 흩어진 군사의 마음은 다시 수습할 길이 없어 몇 개 동지를 규합하여 빈성을 지키리고 하였다. 죽은 줄 알았던 박홍은 죽지는 아니하였다. 다만 그엉덩이에 살이 박혔을 뿐이었다.
그는 종자의 도움을 받아 천신 만고로 밀양까지 도망하였다. 차마 동래부로 들어갈 염치는 없었던 것이다.
부산진을 손에 넣은 소서행장은 선봉 모리 휘원에게 명하여 곧 좌수영을 치게 하였다. 그러나 좌수영의 일만 이천 장졸은 이미 수사 박홍의 본을 받아 다 흩어지고 오직 군관 오 억년이 죽기를 맹세하는 수백의 군졸을 거느리고 모리 휘원의 오만 대군을 대항하였으나 그것은 손으로 바닷물을 막는 것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오 억 년과 그 동지들은 한 아니 남고 다 죽기까지 싸웠다. 일본군이 동래성에 다다른 것은 부산진이 함락된 십사일신시였다.
이보다 먼저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은 일본군이 부산성을 친다는 경보를 듣고 곧 좌병사(左兵使) 이각(李珏). 울산 군수(蔚山郡守)이 언함(李彦譀) 양산군수(梁山郡守) 조영규(趙英珪)에게 이 문하여. 구원을 청하였다.
송상현의 계획으로 말하면. 동래성에 일본군을 막아 한 걸음도 내지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만일 동래부가 함락이 된다고 하면.
일본군은 밀양을 도f아서 서울로 향할 수도 있고. 경주를 돌아서 서울로 향할 수도 있으니. 동래 한 목에서 막지 못하면 그 십배의 힘을 가지고도 막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