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후 이 몽귀가 적의 충루선을 수색할 때에 선상의 적장의 거실(있던 방)인 듯한 방을 수색하였다.
배에 있는 방이라 그리 크지는 아니하나 심히 정결하고 또 바닥에 깐 것이든지. 방안에 놓인 물건이든지 모두가 극히 사치하고 화려하여 마치 사치한 귀인의 침실을 보는 것 같고 무장의 방을 보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이 몽귀는 책상 위에 놓인 금빛 부채 한 자루를 얻었다. 보니 부채 한편에는 한가운데.
『戮月八日이 吉』
이라고 쓰고 오른편에.
『( )』
리는 다섯 자를 쓰고 또 왼편에는.
『( )』
이라는 여섯 자를 썼다. 그래서 이부채를 소중하게 칠한 각에 봉해 둔 것이었다. 이 몽귀는 이것을 순신에게 바치었다.
또 소비포 권관(所非浦權管) 이 영남(李英男)은 이 층루선을 수색하다가 장수 있는 방 곁에서 어여쁜 여자 둘을 발견하였다. 이 영남이 칼을 들어 치려 할 때에 그 여자는 두 손을 들어 비는 양을 하며.
『 장군님 살려주오. 소인은 조선 사람이요.』
하고 외쳤다.
당포에 있는 이십 일척 배를 다 깨뜨리고 싸우이 끝난 때에(이때는 벌써 저녁때였다) 순신은 몸소 그 여자를 심문하였다.
『네가 조선 사라이야?』
『예. 그러하오.』
하고. 한 여자가 대답하였다. 그 여자가 두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집이 어디냐?』
『울산(蔚山)이요.』
『울산서 무엇하던 계집이냐?』
『비자요. (남의 종이란 말이다.)』
『이름이 무엇?』
『상전은 김생원이옵고 소인은 억대(億代)라고 하오.』
『그럼 어찌하여 적장의 배에 탔어?』
『날은 어느 날인지 모르겠소. 상전댁을 따라 피난 가는 길에 오늘 여기서 활 맞아 죽은 장수한테 사로잡혔소.』
『그래서 적장에게 몸을 허하였느냐?』
『그리하였소. 언제나 그 장수와 함께 있었소.』
『적장의 이름이 무엇이냐?』
『소인은 이름은 모르오.』
『적장이 어떻게 생겼어?』
『키가 훌쩍 크고 기운이 세고 매우 잘났소.』
『나이는 몇 살이고?』
『서른 살이나 되었소.』
『적장이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이던고?』
『낮에는 배상층 누에 올라가 누런 비단 전복에 금관을 쓰고 있고. 밤이면 소인의 방에 들어와 잠을 잤소.』
『그놈이 얼마나 높은 장수더나?』
『얼마나 높은지는 몰라도 모든 배에 있는 장수들이 다와서 꿇어 앉아서 영을 듣고. 혹시 영을 어기는 놈이 있으면 용서 없이 목을 베어 죽입데다.』
『적장이 무슨 말을 하였어?』
『예. 혹 술도 가지고 와서 대접하고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지마는.
오롤오롤하는 소리를 소인은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소. 간혹 가다가 울산(蔚山)이니. 동래(東萊)니 전라도(全羅道)니 하는 말은 조선말과 같읍데다.』
『오늘 그놈이 죽기 전에는 어찌하였어?』
하고. 순신이 물을 때에는 억대는 낯이 붉어지고 눈물이 쏟아지며. 매우 흥분한 빛을 보였다.
7
적장의 바로 죽기 전 행동에 대하여 그와 십 오 일간부부 생활의 정을 바꾼 억대는.
『오늘 접전할 때에 그 충루선에 조선 화살과 탄환이 비오듯 떨어지는 때에야 아! 소리를 치고 떨어졌소.』
하고. 적장이 죽을 때에 겁이 없이 태연하던 것을 자랑하는 듯하였다.
화살과 철환에 맞아 쓰러진 군사를 낭자하게 버리고 적병이 다 육지로 도망한 뒤에 적선에 있는 쓸 만한 물건을 수습하고 비인 배를 다 태워 버리고 장차 군사를 놓아 물으로 달아나는 적병을 소탕하려 할 즈음에. 탐망선이 들어 와서 적의 대선 이십여 척이 소선을 수없이 거느리고 거제로부터 당포를 향하고 온다는 말을 과하였다.
순신은 당포는 좁아서 잡전하기 불편하니 큰 바다로 나가자 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함대가 사량 바다에 나서매. 오리쯤 되는 곳에 과연 적전 대소 오륙십척이 장사진으로 오다가 이편 함대를 보고 방향을 돌려 도망하려 하는 것을 이편 배들이 따라 가 난바다로 쫓아 버렸다. 제장은 가는 데까지 따라 가서 때려 부수기를 주장하였으나. 순신은 날이 저문 것을 이유로 군사를 돌렸다.
대개 적선이 이편을 보고 싸우지도 않고 마치 미리 계획하였던 것닽이 어떠한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이 반드시 무슨 흉계가 있을까 함이었다. 이날 밤은 창신도(昌信島)에서 군사를 쉬었다.
이튿날 유월 초삼일 이른 새벽에 배를 떼어 싸리섬( ) 근방의 여러 섬들을 두루 찾았으나 적병의 그림자도 없었다. 이날 밤을 고성 땅 고둔개(古屯漑)에서 쉬이고 초사일 조조에 그저께 싸우던 터인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소선을 보내어 적선의 유무를 바라보게 하였다.
사시나 되어 웬 사람 하나가 산으로서 뛰어 내려와 순신의 주사를 보고 기쁜 듯이 아뢰었다.
『그저께(초이일)접선 후에 적병이 죽은 자기네 편 군사들의 목을 베어 한 무더기로 모아 쌓고 불에 태워 버리고 그리고는 육로로 달아났소. 달아날 때에 우리 사람을 만자도 죽일 뜻은 없고 길에서도 통곡을 하며 달아났소.』\ 하였다.
『그때에 구원 오던 적선은 어디로 갔다더냐?』
하는 물음에 다하여서는 그는.
『당포밖에서 쫓겨난 적 선은 거제로 갔답디다.』
하였다.
이 사람은 강 탁(姜卓)이라고 부르는 토병이었다. 순신은 곧 거제로 가서 당포에서 달아난 적의 주사를 치고. 가덕. 부산의 적의 소굴을 소탕하고 싶으나.
아직도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棋)의 함대가 오지 아니하니 너무도 형세가 고약하였다. 게다가 순신의 왼편 어깨의 총맞은 자리가 여름살이라 용이하게 낫지를 아니하여 고통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적이 있는 곳을 알고도 뒤로 물러 갈 수는 없었다. 순신은 제장을 불러서 거제로 행선할 뜻을 말하고.
『이번 길에는 적의 소굴을 소탕할 터이니 제장은 각기 힘을 다하라.』
하고 약속을 선명하였다.
제장도 첫째로는 번번이 이기는 싸움에 자신을 얻고 또 순신의 지혜와 용기에 신뢰심이 굳어 기뻐 뛰며. 싸우러 갈 것과 죽을 힘을 다하여서 싸울 것을 약속하였다. 저녁 들물을 기다려 막 배가 떠나려고 할 때에 멀리서쪽으로 전라 우도 수사 이억기가 거느린 이십 오척이 위풍 당당하게 오는 것이 보였다.
8
『사또. 우도 주사요.』
하고. 군관 송희립이 순신에게 고하였다.
『우도 주사다!』
하고. 기쁨의 부르짖음은 장졸의 입으로 쏟아져 나왔다. 불과 이십 삼척의 고약한 주사로 날마다 싸움에 피곤한 장졸에게 우도 주사가 온다는 것은 비길 데 없는 기쁨이었다.
순신이 몸소 뱃머리에 나와서 이억기를 맞았다. 과연 전라우도 수사 이억기는 전선이십 오척을 거느리고 순풍에 돛을 달고 달려 왔다.
『영감 웬 일이시오? 왜 이렇게 늦으셨소?』
하고. 순신은 억기의 손을 잡았다.
『풍우에 막혀서 길이 늦었소. 그동안 연전 연승하신 소식은 좌우영서 들었소.
소인이 돕지 못한 것이 죄만하오.』
하고. 이억기는 유감의 뜻을 표하였다. 이억기는 자기보다 연치도 높고 지략도 많고 인격도 높은 순신을 속으로 깊이 존경하였다. 더구나 지난 사월에 적군이 국내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로 대소 제장이 싸우기도 전에 다투어 달아나는 이때에. 오직 이 순신 한 사람이 단약한 주사를 가지고 담연히 적과 싸워 연전 연승하는 것을 볼 때에 억기는 더욱 순신을 흠모하였다.
좌우 양도 주사 연합 함대 오십척은 위풍이 당당하게 당포 앞바다를 떠나서 판데목( )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밤을 지내는 동안에 순신은 억기로 더블어 맹세코 적군을 소탕할 것을 약속하고. 억기는 기쁘게 순신의 절제를 받기를 자청하였다.
이튿날 유월 오일.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배를 놓아 적의 정체를 엄탐케 하면서 안개가 개이기를 기다렸다.
저녁때나 돠어서야 안개가 걷혔다. 순신은 배를 떼어 거제(거제)로 가기를 명하였다. 당포에서 동망한 적선이 거제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배가 한산도 앞에 다다랐을 때에 어떤 작은 배 하나가 마주 나오며 무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배를 세워라.』
하고. 순신은 그 작른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작은 배는 노를 바삐 저어순신이 타고 앉은 장선 곁으로 왔다.
그 작은 배에는 어민 칠팔인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순신의 배를 보고 대단히 기뻐하는 모양을 보였다. 그리고 순신을 향하여 연방.
『사또. 사또.』
하고. 반가움을 못 이겨 하는 양을 보였다.
『사또께서 이리로 오실 줄을 알았소. 그래서 소인네가 어저께부터 여기서 기다렸소.』
하고. 김모란 사람이 대표로 나서서.
『당포 싸우에 쫓겨 달아난 적선들이 거제에 와서 하루를 묵고는 어제 낮물에 당목개(唐목개)로 갔소.』하고. 손을 들어 적선들이 수없이 가던 방향을 가리켰다. 이 말을 고하고는 김 모와 그의 동무들은 무수리 순신을 향하여 수없이 절하고 배를 저어 한산도로 들어 가 버리고 말았다. 순신은 이 백성들이 밤을 새워 가며 자기를 기다려서 적의 행동을 보고하는 그 충성과 그들이 자기와 및 자기가 거느린 주사를 보고 잃었던 부모를 본 듯이 반가와하는 양을 보고 깊이 감동되었다.
『당목개로 놓아라.』
하고. 순신은 함대의 침로를 북으로 돌렸다. 견내도(見柰도) 를지나 고양이 바다를 건너 당목개 앞바다에 이르러 남을 바라 보니. 진해성 밖에 이삼리쯤 되는 곳에 벌판에 갑옷 입고 말탄 군사 천여 명이 기를 꽂고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순신은 사람을 보내어.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올리라.』
하였다.
9
탐문 갔던 사람의 보고에 의하면. 함안군수(咸安郡守)유숭인(柳乘仁)이 말탄 군사 일천 일백명을 거느리고 적병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당목개 형세를 물으니 멀기는 여기서부터 십리나 되고. 넓이도 배가 자유로드나들 만하다고 하였다.
순신은 전선 세 척을 단목개로 보내어 당목개의 지리를 살피라 하고. 만일 적이 따르거든 결코 응전치 말고 거짓 달아날 것을 엄칙하고. 다른 배들은 산굽이에 숨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이윽고 아까 보냈던 배가 포구 밖으로 달아 나오며 신 만일 이차돈이 그 잘 쓰는 칼로 고구려 임금의 묵을 베인다 하면 .고구려가 필시 대군을 가지고 우리 나라를 엄습할 것이니. 고구려가 비록 장수왕 이래로 약하여졌다 하니마는 아직도 장수로는 메주한가 같은 사람이 있고. 옛날 한나라를 때려 부시던 기운이 아직도 다 스러지지 아니하였으니. 오늘날 우리 나라의 힘으로 고구려를 당해 내기는 어려운 일일 뿐더러. 저편은 임금의 원수를 갚는다는 의분심이 강할 것이온즉 더욱이 우리보다 기세가 높을 것이옵고. 또 만일 메주한가의 은란한 솜씨에 저 백제 장수들을 제 것을 만드는 모양으로 이차돈을 달래어 고구려 장수를 만드는 날이면 이것은 원수에게 보검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요. 이차돈 같은 재조를 고구려에 준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옵고. 또 고구려에는 지금 불법이 왕성하다 하온즉. 이차돈이 불법을 배우게 되면 우리 나라에 불법을 편 근심이 있사오니. 그 또한 무서운 후환이 아니오니까? 이런 모든 모로 보옵선댄.
이차돈을 고구려에 두는 것은 무서운 후환이 아니오니까? 이런 모든 모로 보옵건댄. 이차돈을 고구려에 두는 것은 무서운 후환이 될 근심이 있는 줄로 아오.』
공목의 이 말에 임금은 고개를 끄떡끄떡하시며.
『공목 바돌손의 말씀이 옳소.』
하고는 한참 침음하시다가.
『그렇기로 한마로 이손의 손자 이차돈이 우리 나라를 배반하고 고구려에 가 붙기야 하겠소.』
하고 공목의 수염 많은 늙은 얼굴 경난도 지혜도 많은 듯한 얼굴을 바라보신다. 임금은 고옥이 한마로를 좋아하지 아니함을 아신다. 한마로는 어디까지든지 옳은 것을 내세우는 의리의 사람이요. 공목은 옳은 것이란 다 무엇이냐. 이롭고 해로움이 있을 따름이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라 일에 대하는 의견은 서로 어그러지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임금은 어느 편에 치우친 성격인고 하면. 한마로와 같이 이해 관계보다도 옳고 옳지 아니한 것을 따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공목의 싸늘한 지혜에는 매양 경의를 표하고 계시었다. 임금의 입에서 그러한 말씀이 나올 줄을 미리 알아 차렸던 듯이 공목은 곧.
『상감마마. 한마로 이손은 과연 충. 효. 신. 용. 인(忠孝信勇仁)다섯 가지를 겸한 우리 나라의 큰 스승이오. 그러하오나 이차돈은 아직 어린 아이. 비록 그 조부의 훈계를 받았다 하더라도 아직 뜻이 서지 못한 어린 아이옵고. 게다가 이마로 이손의 딸과 살지 못하게 된 것이 상감마마 처분이시라 하여 원망을 품고 있지 아니하오?
배로서 화전을 쏘아 충무선의 김 장막과 돛을 맞히니. 장막과 검은 돛에 불이 당기러 불길이 하늘에 달았다. 그래도 까딱 없이. 깨어지고 남은 충루 위에 칼을 짚고 앉아서 독전하던 적장까지도 마침내 살을 맞아 충루에서 굴러 떨어졌다.
10
충루선의 충루가 깨어지고 불이 붙고 또 장수가 활을 맞아 죽어 떨어지는 양을 보고 남은 적선 네 척이 이창황한 틈을 타서 돛을 달고 북으로 달아나려 하였다. 순신이 이억기로 더불어제장을 거느리고 달아나는 적선을 딸 에워싸고 활과 불로 치고 적병들은 견디지 못하여 혹은 물에 뛰어 들어 헤어서 육지로 나가려 하고. 혹은 큰 배를 버리고 종선을 타고 달아나 산으로 기어 올라서 달아났다. 이편 군사들은 부실부실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무릅쓰고 혹은 창을 들고. 혹은 활을 끼고 적병을 따라 가 혹은 물에서 혹은 발 가운데서 혹은 산에서 둘씩 셋씩 단병 접전을 하여 적병의 머리 사십 삼 급을 베어 가지고 피 흐르는 창과 칼을 두르며 돌아 왔다.
순신은 적선을 전부 불사르고 오직 배 한 척만을 남겨 푸구에 두어 상륙하여 피신하였던 적병들이 도망할 기회를 주게 하고 군사를 거두니. 이때에 벌써 날이 저물어 검은 그림자가 싸움 뒷바다를 덮었다.
그날 밤을 당목개 앞바당에서 지내고 이튿날 평명에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이순신의 명을 받아 그 부하에 달린 배를 거느리고 어젯밤 당목개 어귀에 남겨 둔 배에 적병이 탔나 아니 탔나를 보러 갔다.
방답 첨사 이순신의 배가 다옥개 어귀에 다다르니 아니나 다를까. 적선 한 척이 당목개 어귀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제 싸움에 져서 배를 버리고 물으로 도망했던 적병들이 이편의 계교대로 밤 동안에 돌아 와서 한 척만 남겨 놓은 배를 잡아 타고 장차 부산으로 도망하려 하는 것이었다.
방답 첨사 이순신이 불의에 섬 그늘에서 나서서 그 배의 앞길을 막고 지현자 총통(地玄字銃筒)을 놓아 아직도 어두운 당목개의 새벽을 흔들었다.
불의에 포향을 들은 적선은 창황하게 뱃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달아나려 하였으나 동쪽으로서도 또 이편 배가 내달으며 우선 방포하여 적선의 기운을 지르고 연하여 장편전(長片箭). 철환(鐵丸). 질려포(蒺藜砲). 대발화(大發火) 등을 쏘고 던지었다.
적선은 좌우로 협공을 받으매. 달아나기 어려울 줄을 알고 대적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이편의 공격이 자못 맹렬하여 다수의 군사가 사상하매. 도저히 견디지 못할 줄 알고 화전에 뚫어진 돚과 총통에 부서진 뱃머리로 죽기를 무릎쓰고 달아나려 하였다 방답 첨사 . 이 순신은 군사를 시켜 쇠갈고리를 던져 적선을 끌어 내었다. 적선은 그 쇠갈고리를 벗으려고 만단으로 애를 썼으나. 아무리 하여도 벗을 길이 없이 바다로 끌려 나갔다. 바다 가운데로 끌려 나갔으니.
물르로 내려서 도망하려 하나 도망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선중에 있던 적병들이 반이나 살은 맞아 죽고 반이나 물에 빠져 죽었다.
그중에 이십 사오 세나 되는 적장 하나가 부하 여덟 명을 데리고 끝까지 싸웠다.
그는 키가 크고 얼굴이 준수하고 화려한 군복을 입고 긴 칼을 짚고 우뚝 섰다.
이편에서 그 장수를 향하여 활을 쏘아 살을 칠팔 개나 맞아서 전신이 붉은 핏빛이 되어도 그는 까딱 아니하고 여전히 칼을 짚고 섰다. 살아 남은 여덟 명 부하도 죽기까지 그의 명령을 복종하여 싸웠다. 그러나 마침내 살십여 개를 맞으매. 그 장수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한「으흑」하는 한 소리를 지르고 물에 떨어졌다. 이편 군사들은 곧 그 장수의 머리를 베었다.
살아 남았던 여덟 명 장수는 칼 짚은 장수가 죽은 뒤에 다 죽을 때까지 칼을 두르고 활을 쏘았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엎어졌다가는 다시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싸웠다. 죽을지언정 사로잡히지는 아니할 결심인 듯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군관 김성옥(金成玉)등의 손에 다 죽어 버리고 말았다. 싸움이 다 끝난 뒤에.
『괴시용사다!』
하고. 방답 첨사 이순신은 아홉 적장의 머리를 앞에 놓고 술을 따라서 혼을 위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