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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할(신할). 한 응인(韓應寅)등의 군사는 서로 앞을 다투고 공을 다투어 임진 벌판을 지내어 미시나 되어서 문산포 뒷산에 다다랐다.
평안도 정병 중에 한 사람이 여기가 정히 적이 복병 하염즉한 곳이니 잠시 군을 멈추고 적세를 엄탐해 본 뒤에 가자고 하였다. 별장 유극량(유극량)도 그 말을 옳게 여겨서 신 할에게 간절히 경진 말 것을 말하였으나. 신할은 듣지 아니하고 군사를 몰랐다.
한응인이 거느리고 온 강변 정병은 한응인이 임진강 저편에 머물고 그들은 아무 인도 연도 없는 신 할에게 복종할 까닭도 없었다.
『어차피 죽는 길이니. 한 놈이라도 더 죽일 도리만 해라. 불원천리하고 왔다가 이렇게 싱겁게 죽기는 아까운 일이다.』
하고. 그들은 각자위위 대장으로 싸울 결심을 하였다.
신할은 청함 받은 사람 모양으로 대로로 전진할 때에 과연 산 뒤로서 일성 방포를 따라 복병이 일어나 조총과 긴 일본 칼로 엄습하니. 군사들은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이 적병의 탄환과 칼에 맞아 순식간에 수천 명 군사가 도륙을 당하고 병사 신 할도적병의 칼에 맞아 죽었다.
겨우 죽기를 면한 군사들은 임진강을 향하고 달아났다. 이편 군사들도 칼을 가졌으나 일본 칼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또 활을 가지고 조총을 당해 내지 못할 것도 부산. 동래. 상주. 충주의 여러 번 싸움에 잘 경험한 것이었다.
게군이 다 달아날 때에 별장 유극량(유극량)만은 말에서 내려서 따에 주저 앉으며.
『오 여기가 내가 죽을 곳이다!』
하고 활을 당기어 적병 오륙인을 쏘고 마침내 적의 칼에 죽었다.
임진강을 향하고 쫓겨 오던 군사들이 임진강에 다다랐을 때에는 적병은 벌써 발뒤꿈치에 달렸었다. 왜 그런고 하면. 적병은 잘 쉬고 배가 부르고. 이편은 먼 길에 피곤하고 또 배가 곯아서 걸음이 적병만큼 빠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전장에서부터 임진강에 오는 동안에 길가에 넙너른한 것이 이편 군사의 시체였다. 뒤에 검은 옷 입은 사람의 손에 칼이 한번 번쩍하면 흰 옷 입은 이편 군사의 목이 동강이 나서 길가에 굴렀다. 이렇게 죽고죽고 임진강까지 뛰어 온 군사가 전군 만여 명 중에 단 천명이 못되었다.
석양이 임진강 서편 산에 걸렸을 때에 강가에는 군사들의 아우성 소리가 슬프게도 일어났다. 그러나 도원수 김명원은 우리 군사가 패하여 쫓겨 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우리 군사를 실어 건너기 위하여 배를 강남으로 건너 보내었으나. 우리 군사의 발 뒤에 그름같이 적병이 따르는 것을 보고 다시 배를 강북으로 거두었다.
강가에 이르러서도 배를 얻지 못한 도망하는 군사들은 부질없이 도원수와 한 응인을 부르다가 등 뒤에 임한 적병의 칼을 피하여 강물에 뛰어 들었다.
군사들이 강물에 뛰어 드는 모양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어지러운 나뭇잎 같았다.」고 서애(西愛) 류 성룡(柳成龍)이 기록하였다. 강물레 잠겼건마는 미처 물에 뛰어 들지도 못한 군사들은 모조리 등 뒤로 적병의 긴 칼을 맞아 엎디어 죽었다. 한 사람도 능히 적병과 겨눈 사람이 없었다. 진실로 못난 백성이었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한응인(韓應寅)이 강북에 있어 이 모양을 보고 넋을 잃고 있을 때에. 상산군(商山君) 박충간(朴忠侃)이 맨 먼저 말을 타고 달아났다. 이것을 보고 군사들은 황혼이라 달아나기 잘하는 도원수 김명원인 줄만 알고.
『도원수가 달아난다!』
하고 여울을 지키던 군사들도 모두 달아났다. 한응인. 김명원도 뒤를 이러 달아났다 경기 감사 . 권징(권징)은 죄 받을 것이 무서워서 평양으로 가지 못하고 경기 가평(加平)으로 달아나서 피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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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사 신 할(신할)은 전망하고. 도원수 김명원(金命元)과 한 응인(韓應寅). 권징(權徵)능은 달아나고 임진강에 남았던 군사들은 장수를 잃고 모두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적병은 아무 저항 없이 임진강을 건너서 질풍같이 개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때에는 왕과 그 일행은 벌써 평양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소서행장(小西行長)과 가등청정(加藤淸正)은 같이 개성을 지나서 평양으로 향하다가 황해도 안성역(안성역)에 이르러서 제비를 뽑아 청정은 함경도를 맡게 되고. 행장은 평안도를 가지게 하고. 천야 장정(淺野長政)은 황해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전라도를 제하고는 적장이 분할하여 차지하고 웅거하게 되었으니.
평수가(平秀家_=字 ( )田秀家)는 경성과 경기도를 차지하고. 모리길성(毛利吉成)은 강원도를 차지하고. 복도 정측(福島正側)증아부원친(曾我部元親)등은 충청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임진강의 패전의 보가 오매 평양에 있던 왕과 대관들은 또 평양을 버리고 다른 피난처를 구하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크게 믿었던 한 응인(한응인)의 평안도 강변 정병이 대번 무너진 것을 본 대관들은 혼이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평양에는 군량은 넉넉하였으나 믿을 만한 장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사(兩司)홍문관(弘文館)에서는 연일 복합(伏閤)하여 평양을 버리고 도망할 것을 왕께 청하고. 이성. 부원군(寅城府院君) 정철(鄭徹)이 극력하여 평양을 버리기를 주장하였다.
원래 정철은 강계(강계)에 정배 중이었던 것을 왕이 개성에 피난하였을 때에 남문에 올라서 일반 인민에게 소원을 말하라 할 때에 어떤 사람이 정철을 불러 올리소서 하고 청하는 말을 듣고 강계로부터 불러 올린 것이었다.
정철과 그 무리는 평양을 보리기를 주장하고 왕과 동궁과 종친들도 적병이 따를 것이 무서워 정 철의 말에 기울어질 때에 류 성룡(柳成龍)은.
『평양을 버리는 것은 옳지 아니하오. 평양은 지키는 것이 옳소. 인성( = )은 서울도 버렸거든 평양은 못 버리랴 하거니와. 그때와 이때와는 시세가 같지 아니하오. 서울로 말하면 군사와 백성이 적병을 무서워 붕괴하여 버렸으니 지키려 하여도 지킬 수가 없었지마는. 평양으로 말하면. 백성의 마음이 대단히 굳고 또 앞에 대강이 있어서 지킬 가망이 있을 뿐더러. 여기서 며칠만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명 나라 구원병이 올 것이니. 그리하면 반드시 적병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잉ㅅ. 그렇지 아니하고 평양을 버리고 떠난다 하면 의주(義州)에 이르기까지는 다시 저접할 지세가 없으니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요.』
하고. 굳세게 평양을 버리는 것이 옳지 아니함을 주장하였다. 좌의정 윤 두수(尹斗壽)는 류 성룡의 말에 찬성을 하였으나.
정철은
『아무리 평양의 민심이 굳고 앞에 대강이 있기로 장수가 없어 어떻게 지킨단 말요?』
하고 피출설을 고집하였다. 류성룡은 분개한 낯으로 정철을 향하여.
『나는 평소에 대감이 강개한 뜻이 있어서 어려운 것을 겁을 내는 사람이 아닌 줄 믿었더니. 오늘 이런 말은 참으로 의외요.』
하고 꾸짖었다.
윤 두수도 정 철의 무기력한데 분개하여. 내 칼을 빌어 이 간신을 비였과저( )이라는 문산(文山)의 시를 읊었다. 정철은 대노하여 소매를 뿌리치고 일어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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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정에서 평양을 지킬까 버릴까 하는 의론이 정치 못하여 대관들은 은밀히 뒷구멍으로 피난할 꾀를하며. 혹은 처자를 먼저 피난시키고 혹은 재물을 먼저 실어 내니. 평양 백성들은 이 무리가 믿을 수도 없는 무리인 줄 알고나도 나도 하고 다들 도망해 버리고 말았다.
백성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고는 큰일 났다고 대관들은 쩔쩔 매었다. 이에 급히 회으를 열고 평양 성중의 백성들을 떠나 가게 말고 이미 떠나간 백성들을 다시 불러 들일 계교를 토의한 결과로 대동관(대동관)앞에다가 성중부로를 모으고 왕세자가 왕을 대신하여.
『평양을 굳게 지킬 터이니 다들 떠나지 말라!』
하고 효유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세자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생각에 좌우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간신들이지마는. 왕은 그렇지 아니한 사람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둥궁을 내세운 것은 이 간신놈들의 속이는 꾀다.
과연 왕의 뜻인지 알 수 없다 - 이렇게들 수근거렸다. 그래서 부하들 중에서 어떤 부하 하나가 나서며.
『아뢰기 황송하오나 동궁 말씀은 백성들이 믿지 아니하오. 상감께옵서 친히 효유하시면 어떨지 몰라도.』
이렇게 아뢰었다.
다른 부로들은 이 사람의 말이 옳은 것을 표시하려는 듯이.
『그렇소.』
하고. 일제히 외쳤다. 동궁이 들어 가 왕께 이 뜻을 아뢰었다. 대관 중에 어떤 사람은.
『이 버러지 같은 상놈들이 동궁 영지를 아니 믿는다니 군사를 풀어 그놈들을 무찌르시오!』
하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이 어느 때요. 백성의 뜻을 거스릴 때가 아니요.』
하는 류 성룡의 말이 서서 마침내 백성들의 청구대로 왕이 친히 평양을 버리지 아니할 뜻을 성중 백성에게 효유하기로 정하고 승지로 하여금.
『내일 성상께옵서 친히 너희들게 전교가 계실 터이니 다들 이곳으로 모이라.』
하는 명을 전케 하였다. 이튿날 대동관 앞에는 왕의 말씀을 듣겠다고 평양 성중 백성들이 모여 들었다. 백성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보고 어떤 대관은 겁을 내어 왕이 친히 나서는 것을 위태하다고 반대하였다.
『그 무지한 놈들이 무슨 일을 할는지 아오?』
하는 걱정에 대하여 류성룡은.
『이나라 이 백성을 힘입어 서는 것이어늘. 대감이 백성을 그렇게 낮추 보아 쓰겠소? 또 임금의 말씀은 땅과 같다 하였으니 한번 하신 말씀을 거둘 수는 없는 것이요.』
하고. 왕에게 어제 약속대로 친히 백성들을 향하여 맹세할 것을 청하였다.
왕은 류 성룡의 뜻을 쫓아 곤룡포에 익선관을 갖추고 대동관 문턱까지 나갔다.
백성들을 무서워하는 대곤들도 부득이 떨리는 무릎으로 왕의 뒤를 따랐다.
왕은 승지로 하여금.
『평양성을 굳게 지킬 터이니 너희들은 백성들에게 떠나지 말고 나라를 도와 적병을 물리치도록 효유하여라.』
하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승지의 말을 들은 백성들 중에 수십 명이나 많은 사람들은 땅에 엎드려 통곡하고.
『평양 자제가 하나도 없이 다 죽을 때까지 성상을 위하여 싸우리이다.』
이 모양을 보고 왕은 눈물을 흘리고 무릎이 떨리는 대관들도 마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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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이렇게 백성에게 약속하였으니 싫더라도 평양을 지키는 모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로 수성 대장(守城大將)을 삼아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순찰사 이원익(李元翼)을 거느려 평양을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장수가 부족한 판에 포망에 패랭이 쓰고 짚신 감발에 거지 모양을 차린 순변사 이 일(李鎰)이 부하 오륙인을 거느리고 평양에 들어 왔다. 그는 상주(尙州)에서 적병에게 패하여 벌거벗고 머리를 풀고 도망하여 충주(忠州) 신입(申砬)에게로 갔다가 신 입이 충주 탄금대에서 죽고 군이 흩어지매.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산속으로 숨어 천신만고로 평양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충주 패보를 서울에 보낸 원훈이었고. 충주 패보는 오월 그믐날 왕으로 하여금 서울을 떠나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었다.
패군장인 순변사 이 일(李鎰)이 거지 꼴을 하고 평양에 오매. 원체 장수가 귀하던 터이라 그의 패군의 죄를 논하는 이가 없고 도리어 환영하였다. 적병이 황해도를 지났다는 말을 듣고 인심이 더욱 불안하던 이때에 비록 패군지장이라 하더라도 이 일같이 이름 있는 장수를 얻은 것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일의 그처럼 초라한 꼴과 초췌한 얼굴을 보고 류 성룡.
『이곳 사람들이 자네를 크게 믿는데 이처럼 모양이 초췌해서야 뭇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가 있나.』
하고. 자기의 행리를 뒤져서 남철의 한 벌을 내어 입히니 다른 대관들도 혹은 총립을 주고 혹은 체영을 주어 일습을 갈아 입고 나니 면목이 일신하였다.
그러나 신을 벗어주는 이가 없어서 짚신을 신은 것을 보고 류 성룡이.
『비단옷에 짚세기가 잘 아니 어울리는 걸.』
하고 웃으니. 좌우가 다 대소하였다. 이렇게 쫓기는 생활에 의외의 웃음판이 벌어졌을 때에 황해도로 타보 갔던 벽동 토병(碧憧土兵)임 욱경(任旭景)이 달려 와 적병이 벌써 황해도 봉산(鳳山)에 돌아 왔단 말을 보하였다.
『봉산이란 아직 멀었지?』
하고 일좌가 눈이 둥그레 해였다.
류성룡은 수성 대장인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를 보고.
『적병이 봉산에 왔으면. 척후는 벌써 강건너 와 있을 것이요. 특별히 영귀루(영귀루) 아래서 강이 두 갈래로 갈려서 얕은 여울이 되어서 길만 알면 걸어 건널 수가 있을 것이니까 만일 되어서 길만 알면 걸어 건널 수가 있을 것이니까 만일 적이 우리 사람 향도를 얻어서 몰래 건너 와서 갑자기 엄습하면 성이 위태할 것이요 마침 이 . 순변사가 왔으니 곧 보내어 여울을 지키게 하여서 불측지변을 막는 것이 어떠하오?』하였다.
윤두수는.
『대감 말이 옳소.』
하고. 곧 이 일더러.
『그러면 자네가 곧 가서 여울목을 지키도록 하게.』
하였다.
『무어 어느새에 그놈이 올라구요.』
하고. 이 일은 여전히 적병을 우습게 보는 어조였다. 류 성룡은 대단히 못마땅한 듯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이 일을 한번 흘겨 보았다. 그는 이 일이 상주에서 패한 것이나. 신 입이 충주에서 패한 것이나. 「척후(斥候)」라는 것을 모르는 때문인 줄을 안 까닭이었다.
이 일은 류 성룡이 못마땅해하는 눈치를 보고.
『가라시면 곧 영귀루 아가한테로 가겠읍니다마는. 소인 혼자서야 지킬 수가 있소. 소인이 데리고 온 군사라고 열이 다 못 되니 군사를 주시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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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새 옷을 갈아 입고 위의를 갖추어 가지고 말높이 앉아 합구문(合毬門)으로 나갔다. 그는 자기가 강원도에서부터 데리고 온 군사 몇 사람과 평양에 있던 군사 수백인을 합구문 앞에 벌여 놓고 의기 양양하게 문루 위에서 군대 검열을 합네 하고 날이 늦도록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오래 굶주렸던 판이라 이 일은 술과 고기를 많이 장만하고 계집까지 불러서 질탕하게 놀고 있었다. 류 성룡은 이 일이 이렇게 하였더니. 과연 이 일은 군복도 다 벗어 젖히고 취안이 몽룡하여 계집을 희롱하고 있고 군사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류성룡은 곧 대장 윤두수를 보고.
『이거 큰일 났소. 이 일이가 상주서 하던 버릇을 또 하고 있는 모양이요.
시각이 급한 이때에 하가 다 가도록 합구문에서 술을 먹고 있다오.』
하고. 성화같이 재촉하기를 청하였다.
윤 두수는 종사관을 합구문으로 보내어 이 일에 즉각으로 출발하여 영귀루 앞 여울을 지킬 것을 명하였다.
『 적병이 봉산 왔다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겁들이 나.』
하고. 이 일은 미진한 홍을 아끼며 합구문을 내려 군사를 몰고 떠났다.
군사 중에는 영귀루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남쪽으로만 가자!』
하.이 일은 몽롱한 취한 눈으로 평양의성의 넓은 경치를 바라보고 되는 대로 군사를 몰았다. 마침 석양에 보통문이 공중에 솟은 것을 보고 그리로 가자고 하였다. 보통문이 공중에 솟은 것을 보고 그리로 가자고 하였다.
보통문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 모양으로 강서(江西)로 가는 길로 거의 십여 리나 가서 평양 좌수(平壤座首) 김 내윤(金乃胤)이 성밖에 나갔다가 몰아 오는 것을 만났다.
『영귀루를 이 길로 가느냐?』
하고 이 일이 물을 때에 김좌수는 딱 기가 막혔다.
『이 길로 가면 보통강이요. 영귀루는 지금 오신 길로 돌아 가야 하오.』
할 때에 이 일은 크게 노하여.
『이놈. 네가 진작 길을 인도하지 아니하고 인제야 와서 그 말을 한단 말이냐!』
하고. 즉석에서 김좌수를 길바닥에 엎어 놓고 볼기를 십여도 나 때린 뒤에.
『죄당만사로되 특히 목숨만은 살려 주는 터이니 앞을 서서 길 인도를 하여라.』
하고. 이 일 장군의 호령이 추상과 같았다. 평양 좌수 김 내윤이 아픈 다리를 끌고 이 일을 인도하여 만경대(萬景臺) 밑에 다다르니 벌써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평양서에서 내려 오니 겨우 십리였다. 대동강 저쪽 언덕을 바라보니 벌써 적병 수백 명이요. 강중에 있는 작은 섬에 살던 백성들은 겁을 집어 먹고 달아나느라고 갈팡질팡하였다.
이 일은 대안에 있는 적병을 보고는 술이 번쩍 깨어서 곧 무사 십여인을 불러 섬에 들어 가 활을 쏘기를 명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은 무서워서 발을 내놓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서로 바라보고 머뭇거리었다.
이 일은 칼을 빼어 머뭇거리는 군사를 베려 하니 그때에야 군사들이 절벅절벅 물소리를 내며 물에 들어섰다. 이때에 적병들은 어떤 조선 사람 하나를 길잡이로 앞에우고 섬 저쪽 강 갈래를 건너서 거의 이쪽 언덕에 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때에 이쪽 군사가 굳센 활로 쏘아 순식간에 아펐던 적병 육칠 명을 넘어뜨리니 그제야 물에 들어 섰던 적병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저쪽 언덕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 일은 군사를 거두어 여울목을 지키리고 하였다. 군사들오 적병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기운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