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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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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구월 십 오일에 순신은 진인(진인)과 함께 또 함대를 거느리고 고금도를 떠났다. 이는 순천(順川)에 와있는 명장 유정(劉艇)과 합하여 왜교(倭橋)에 응거하고 있는 소서행장(小西行長)군을 수륙으로 합공하려 함이었다.
순신의 생각에는 먼저 왜교의 소서 행 장군을 격멸하고 다음에 사천(泗川)과 부산과 울산을 순차로 격멸할 계획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일찍 계사년에 경상 감사 김수(金수)와 상약하고 부산의 적을 협공하려 하였으나 김 수가 겁을 내어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기 때문에 실패하였지마는 지금은 울산에도 명균이 와 있고 사천 근방에도 명군이 와 있으므로 만일 진실로 수륙 협공을 한다고 하면 적을 격멸하기는 반드시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직 염려도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명 나라 장수의 심사이지마는 진인은 이미 순신에게 심복하여 순신의 의사대로 좇는 터이므로 수군에 있어서는 염려가 없다고 자신한 것이었다.
십 구일에 수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감개무량한 좌수영에 이르러 참담한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이십일 미명에 좌수영을 떠나 괴섬(괴섬) 에 이르니 때는 신시였다.
이때에 벌써 명장 유정(劉綎)의 군사는 육지로부터 적진을 공격하여 포성이 은은히 들렸다.
순신은 적은 배를 적질으로 보내어 싸움을 돋구었다. 이때에 왜교에 오백척 전선과 삼만 명의 적의 장졸이 있어. 현재 조선에 있는 적진 중에는 가장 큰 근거지였다. 더구나 왜교의 근거지는 사천. 울산 등지에 있는 적에게 군량을 공급하는 근원이므로 만일 왜교의 적진이 함락한다고 하면. 사천. 부산. 울산 등지의 적은 불공 자파가 될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풍신수길(豊臣秀吉) 이 이미 죽었으므로 적의 사기는 많이 저사되었던 것이었다.
이십 이일 싸움에 명 유격장이 팔에 총을 맞고 당인(명나라 사람이라는 말)십 일명이 전사하고 지세 만호(知世萬戶). 옥포 만호(玉浦萬戶)도 총을 맞았다.
때는 마침 조금이라 물이 얕아서 큰 배가 노루섬( ) 안까지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큰 싸움을 하려면 아직 적군을 항구 안에 봉쇄해 놓고 그믐 사리가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진인은 순신의 말대로 주사를 노루섬으로 옮겨서 왜교에서 나오는 바다 입을 봉쇄하고 물이 살아나기를 기다렸다.
왜교라는 데는 여수 반도(麗水半島)가 순천에 붙은 밑동으로서 그 입에 노루섬이 문 모양으로 가로 막아서 노루섬 앞을 지나지 아니하고는 바다에 나올 수가 없는 곳이었다.
이러한 곳에 소서행장은 영구적인 성을 쌓고 토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하고 인근 읍에 부하를 보내어 전곡을 가져 오게 하였던 것이었다.
그믐날 일일이 일에. 다순신은 진인(陳璘)에게 총 공격하기를 청하였으나 진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이러는 동안에 또 조수는 점점 줄기를 시작하였다.
순신은 심히 초조하였다. 지금같이 물이 깊은 때면 적이 아무리 응전하지 아니하더라도 거북선(새로 고금도에서 지은 것 두 척)과 기타 전선으로 적선의 정박지를 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기회를 놓친다 하면 다시 반달이나 기다리지 아니하면 기회가 없을 것이요. 그리하는 중에는 적이 사천. 부산 등지에 청병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진 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7

원래 싸우기 좋은 기회는 그믐날과 초일. 최양일이었다 이날에는 물도 많이 밀거니와 또 물때가 바로 밤이기 때문에 적이 모르게 진군하기가 편하였다.
순신은 연하여 진 인에게 싸우기를 말하였으나 진인은 육상에 싸우기를 즐기지 아니하였다. 진인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순신이 혼자 총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순신은 진인의 절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순신은 정찰한다는 핑계로 수십척씩 배를 놓아 적을 습격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 일의 싸움에 순신의 처종형인사도 첨사 황세득(黃世得)이 총을 맞아 죽었다.
순신은 조상하는 제장에 대하여. 「세득이가 나라 일로 죽었으니 죽어도 영화롭다」하였다. 순신은 삼일에 진 인에게 싸우기를 재촉하였다.
『오늘도 지나면 물이 얕아지오. 그러면 다시 반달을 기다리지 아니하면 싸울 기회가 없소. 또 반달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적이 사천. 부산. 울산 등지에 있는 적을 청해 올 것이니 그리 되면 우리는 복배로 수적하는 곤경에 빠질 것이요.
오늘은 아직도 물이 과히 줄지 아니하였으니 오늘 기회는 놓칠 수 없소.』
하였다. 그래도 진인은.
『유 총병과 약속이 아니 되었으니 주사로만 싸울 수가 있소?』
하고 응치 아니하였다.
『만일 오늘을 놓쳐 버리면 명나라 주사나 조선 주사나 한 척도 남아 돌아 가지 못하리라.』
하고 순신은 극력으로 진인을 재촉하였다. 진인은 마지못하여 순신의 말을 좇았다.
이리해서 초사흘의 왜교 총 공격이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물때가 낮을 뿐더러 진인을 움직이는 동안에 때가 늦었다.
그러나 이날 싸움에 적선 오십여 척을 깨뜨렸다. 진인의 함대는 싸울 뜻이 없어 뒤로만 돌다가 조선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야 앞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이때에는 벌써 조수가 물러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순신은 진 인에게 배를 보내어.
『조수가 나갈 때가 되었으니 군사를 거두라.』
고 청하였다. 그러나 진 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그는 이왕 싸우는 이상이면 조금이라도 공을 세울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과연 순신의 말을 듣지 아니한 명 나라 전선 중에 호선 이십척과 전선 십 구척이 풀에 올라 앉아 버렸다. 이것을 적군은 작은 배를 타고 모여 들어서 배 위에 있는 명군을 하나 아니 남기고 다 죽여 버리고 말았다. 순신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전선 칠척에 병기를 많이 실어가 구원케 하였으나 물이 얕아서 도저히 수백보를 격하고는 더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이것을 보고 진인은 마치 모든 것이 순신의 책임이나 되는 듯이 분해하고 화를 내었다.
초나흘에도 순신은 공격을 계속하여 다시 수십척의 적선을 깨뜨렸으나 진인을 싸울 뜻이 없었다.
초오일에는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안정할 수가 없었고. 초육일에도원수 권율(權慄)이순신에게 비밀히 사람을 보내어. 『유 제독(劉堤督)이 달아나려 한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순신은 이 소식을 듣고 그날 일기에 『(통분통분)』이라고 적었다.
또 이날에는 일본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도망해 온 변 경남(변경남) 이라는 사람에게서 평수길(平秀吉)이 군관을 진 인에게 보내어.
『..(육군은 잠시 퇴군하였다가 다시 준비하여 싸우려 한다).』고 하였다.

8

순신은 명장 진인(陳璘)의 방해로 하여 왜교(倭僑)의 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한을 머금고 좌수영을 거치어 고금도 본영으로 돌아 갔다.
이 동안에 유정(유정)은 순천(順天)에 돌아 가 누웠다. 그는 소서행장(小西行長)에게 많은 뇌물을 받고 싸울 뜻이 없는 것이었다 그 뇌물 중에는 일본 여자 하나도 있었다. 이 항복(李恒福)이 유정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으나 유정에게는 모기 소리만큼도 아니 들렸던 것이다.
순신은 고금도에 있는 동안에 인에게 혹은 의리를 가지고 혹은 이해 관계를 가지고 달래어 그를 움직이기에 힘을 썼다. 애초에 순신이 인을 끌고 고금도에 돌아 온 까닭이. 인으로 하여금 적에게 유혹될 기회가 없게 하고자 함이었다.
순신의 이계획은 성공되었다. 인은 마침내 순신의 성의에 움직임이 되어 소서행장의 군사와 한번 싸울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십 일월 초구일에 순신은 인과 함께 다시 함대를 끌고 고금도 본영을 떠나 십 일일에 유도 (柚島)에 다다라 진을 쳤다. 이번 보름사리를 타서 총공격을 하려 함이었다. 십 삼일에 적선 십여 척이 노루섬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둘이 쫓고.
순신은 인과 함께 진을 노루섬으로 옮겼다.
십 사일에 적선 두 척이 강화를 청한다고 청하여고인의진에 왔다. 순신은 인이 유혹받지 아니하기만 빌었다. 밤이 들어 술시나 된 때에 순신이 바다를 바라보니 적선 하나에 장수인 듯한 이가 타고 노루섬에 들어와 인이 있는 도독부로 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아까 낮에 적의 사자가 왔을 적에 인이 밤에 만나기를 약속한 것이었다.
순신이 사람을 도독부에 보내이 알아 본즉 적장은 돼지두 마리와 술 두 항아리를 가지고 와서 한시각 동안이나 통사만 새에 세우고 무슨 이야기를 히고 돌아 갔다고 한다.
이튿날인 십 오일에 순신은 인을 도독부에 찾았다. 그러나 인은 순신에게 적의 강화 청하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이날도 적선이 세 번이나 인의 진중에 출입하였다.
이튿날인 십육일에도 소서행장의 사자가 인에게 오고 이날에는 인이 그 부하 진 문(진문)이란 자를 소서행장에게 답례사로 보내었다. 진 문이 적진을 들어 간 지 얼마 아니하여 오도주(五島主)라는 적장이 배 세척에 말과 창. 검 등 선물을 실어다가 인에게 바쳤다. 이로부터 적선이 더욱 빈번히 인에게 왕래하고.
왕래할 때마다 반드시 말. 무슨 상자 같은 선물이 왔다.
순신은 대사가 다 틀어지는 것을 한탄하였다. 십 육일에는 인은 순신을 자기 진중으로 청하였다. 인은 술과 안주를 내오고.
『노야. 이것은 소서행장이 보낸 술이요. 일본 술이 조선술보다 낫소. 한잔 자셔 보오.』
하고 은근히 권하였다.
『소인은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소.』
하고 물리쳤다.
인은 좀 머쓱하였으나 다시 웃는 낯을 지어.
나도 처음에는 아니 『믿었지마는 소서행장이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자기네는 돌아 갈 터이라고 화친을 청하니 제출물에 돌아 간다는 것을 구태여 싸울 것은 무엇이요. 나는 대감의 의향을 들어서야 대답한다고 했소마는 화친을 허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하였다. 이것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순신을 꺼려서 화친을 허락은 아니 하였던 것이었다.
순신은 지필을 당기어『..』이라고 써서 인의 앞에 돌려 놓았다. 대장은 화친을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 원수는 그저 놓아 보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을 보고인은 부끄러워 낯을 붉히고 다시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그날 밤에 소서행장의 사자가 인의 회답을 들으러 왔을 때에 인은.
『..』
이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통제사에게 말하다가 거절을 다하였으니 이제 다시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9

인의 이 회답을 받은 소서행장은 사자를 순신에게 보내어 총. 검. 방물 같은 것을 바치고 한 번 만나 의사를 통하기를 청하였다.
순신은.
『할 말이 있거든 서울로 가라고 하여라. 나는 적군의 사자를 만날 까닭이 없다.』하고 만나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왕 가져 온 것이니 물건만이라도 받으시라오.』
하고 우후가 순신에게 다시 아뢰니 순신은.
『임진년부터 적을 수없이 잡아서 얻은 총검이 산더미 같으니 너희 대장의 머리 밖에는 쓸 것이 없다고 일러라.』
하여 그 물건도 거절해 버렸다. 소서행장은 순신이 강경하여 어찌할 수 없음을 보고 제 이단의 책으로 순신과 인과를 떼어 보려 하였다. 그래서 인에세는 조선군과 같이 진을 치고 있는 것 이상국의 위엄에 관계되지 않느냐 하고. 또 순신에게는.
『 장군 같은 큰 재주를 가지고 어찌하여 일개 진인의 밑에서 그 절제를 받으시오? 나는 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장군을 흠모하는 충정으로 이 말을 하오.』
하여 사자를 보내어 각각 이 말을 전하게 하였다. 순신은 내 나라 땅에 내가 진을 『치거든 아무러기로 다 내 뜻이니 적이 아랑곳할 배가 아니다.』
하여 물리쳐 버렸다.
소서행장은 순신이 인의 곁에 있고는 인을 매수하기가 어려움을 깨달아 백방으로 계교를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날에 순신은 인을 찾아 보고.
『오늘이 가장 조수가 깊으니 총공격을 합시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적의 뇌물에 취한 인은 순신의 말대로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그리고 도리어.
『나는 아직 행장은 그냥 두고 남해(南海)에 있는 적을 먼저 칠까 하오.』
하고 딴전을 부렸다.
순신은 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남해를 칩네 하고 명나라 함대를 불러 적이 달아날 길을 열어 주러 함이었다.
순신이.
『남해에 있는 것은 다 적에게 포로 되었던 조선 사람들이지 어디 적이 있소?』
한즉. 인은 퉁명스럽게
『이미 적에게 붙었던 놈들이면 적이나 마찬가지지. 이제 가서 치면 힘 안들고 목을 많이 베일 터인데 아니쳐?』
하고 오만한 모양을 보였다. 순신은 정색하고.
『황상이 명을 내리어 적을 치라 하심은 조선 인명을 구하려 하심이어늘 이제 적은 치지 아니하고 도리어 조선 인명을 주륙한다 하면 아마 황상의 본의는 아닐 것이요.』
하였다. 이 말에 인은 대노하여.
『황상이 내게 장검을 주셨어!』
하고 칼을 만졌다. 순신도 소리를 가다듬어.
『한본 죽기는 아깝지 아니하지마는 나는 대장이 되어서 결코 적을 두고 우리 사람을 죽이지는 아니하겠소.』
하고 또 꾸짖었다. 그러나 순신은 인을 버리려 아니하고 아무리 하더라도 그의 마음을 돌려 이번 싸움을 하려 하였다. 그는 나라 일을 위하여서는 개인 감정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이었다.
오래 동안 다툰 끝에 인은 남해로 가기를 단념하였다. 그러나 소서행장의 배 두 척이 밖으로 나가기를 허락하였다. 이 말을 들은 순신은 곧 인을 찾아 보고 어찌해서 배 두 척을 내어 보내느냐고 질문하였다. 인의 대답은.
『저의 나라로 퇴군한다는 통지를 하러 보낸 것이라기에 내어 보냈다.』
함이었다. 순신은 발을 구르며.
『그배는 사천으로 간 것이 분명하니 우리는 이제 복배로 수적하게 되었소.
반드시 사천. 부산에 있던 적선이 노량진(노량진)으로 넘어 올 터이니 곧 가서 맞아 싸우지 아니하면 우리는 앞 뒤로 협공을 당할 것이요.』하였다.
인은 이 말에 깜짝 놀란 듯이 얼굴빛이 변하였다.
『그럴까? 그러면 곧 가지요.』
하고 십 칠일 밤에 전함대를 띄워 노량진으로 향하였다.

10

십 찰일 미명에 노량진 근해에 이르러 인의 지휘대로 명나라 함대는 바로 노량진 목을 막아 진을 치고 순신의 함대는 관음포(관음포) 어구의 섬 그늘에 숨어서 진을 쳤다.
애초에 순신은 자기가 몸소 노량진 목을 막고 지키다가 넘어 오는 적군을 일거에 무찌르려 하였으나 인은 공을 다투어 그것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만일 적의 함대가 노량진을 넘어 선다 하면 왜교에 있는 적과 합세할 위엄이 있기 때문에 수신은 이것을 깊이 근심하였다. 그러나 인은 순신을 선봉으로 세워 전공을 그에게 주고 싶지 아니하였으므로 순신의 의견을 좇지 아니하였다.
십 찰일 유시로부터 적선이 창선도(昌善道)로부터 출동하기 시작하여 더러는 암목포(巖木浦)에 와서고. 더러는 노량에 정박하여 그 수를 알 수 없었다. 이날 밤 이경에 수신은 제장에게 이밤에 반드시 큰 싸움이 있을 터이니 다 죽기로써 마음을 삼으라고 재삼 약속하였다.
순신은 심서를 정할 길이 없어하다가 삼경이 되어 게숫물을 들이라 하여 머리를 빗고 세수하고 통제사의 군복을 입고 배 위에 올라 가 꿇어 낮아 하늘에 빌었다.
『이 원수만 없이하면 죽어도 한이 없사오니 도와 주옵서서』
이때에 큰 별 하나가 햇불 같은 꼬리를 끌고 날아와 관음포 바닷속에 떨어졌다. 달은 밝고 얼음 기운을 머금은 바람은 금빛 나는 물결을 희롱하였다.
사경이나 되어서 조수를 타고 적선 오백척이 꼬리를 물록 노량진으로 넘어 왔다. 인은 통사를 시켜.
『 대명 수군 제독(대명수군제독) 진 인 陳璘)이 황상의 명을 받고 여기 있으니 저희는 뒤로 물러가라!』하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오백척의 일본 함대의 눈에는 대명 수군 제독도 없었다. 거기서는.
『우리는 조선 수군과 싸우려는 것이요. 대명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니 비켜 서라.』하는 대답이 왔다.
일본군의 이 대답은 진인을 격노하게 하였다. 그래서 진인은 포화를 열어 일본군에 대하여 싸움을 돋구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조류를 타고. 명군은 조류를 거슬러 싸우기 때문에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아니하였다.
싸운 지 한시각이 되지 못하여 명군은 물을 따라 뒤러 물러가 달아났다. 일본 적은 달아나는 명적을 따라 조총을 콩 볶듯 놓으며 시살하였다.
그러나 무인지령같이 달리던 일본군은 난데 없는 대적을 만났다. 그것은 관음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순신의 수군이었다.
순신의 수군은 일제히 돛을 달고 내달아 일본 함대의 앞을 막고 대포와 굳센 활과 조총으로 시살하였다. 순신이 고금도에서 새로 지은 거북선 두 척은 마치 바다 속에서 솟아 오른 괴물 모양으로 불과 연기를 뿜고 좌충우돌하여 다닥뜨리는 대로 적선을 부수었다. 아직도 거북선의 위력을 본 일이 없는 적선은 새로운 괴물에 놀라고 일찍 한산도 기타에서 거북선에게 혼이 난 사람들은 옛날 기억을 일으켜 떨었다.
순신의 군사들은 진 인 때문에 싸우지 못하던 분풀이를 마음껏 하려 들었다.
저마다 앞을 다투었다. 시간은 지난다.
조수가 돌아 서서 노량진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흐르던 조수는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가게 되었다. 조수를 따라 바람도 돌아 섰다. 지금까지 역풍과 역조로 싸우던 순신은 이제야 순풍과 순조를 만나고 적군이 역풍과 역조를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