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 원수에게 장형을 당한 원균은 칠천도(漆川島) 본진으로 돌아 오는 길로 방에 숨어 술을 먹고 대취하여 계집만 희롱하고 당초에 싸울 준비를 하지 아니하였다. 일본 전선이 보인다는 경보가 연해 들어오지마는 아무도 감히 원균에게 고할 사람이 없었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祺)는 통제사의 이꼴에 분개하여 문지키는 군사를 칼로 위협하고 밤에 원통제사의 방문 밖에 가서.
『소인 아뢰오.』
하고 보기를 청하는 뜻을 말하였다. 이때에 마침 원균은 한 계집의 무릎을 베고 또 한 계집을 가슴에 안고 드러누웠다가 억기의 소리를 듣고 취한 목소리로.
『그 누구냐? 누가 이 밤중에 내 방 앞에 온단 말이냐!』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요.』
하고 억기는 어성을 높였다.
『웬일야? 왜 자지들 않고 나를 찾아!』
하는 원균의 어성은 노기를 띠었다.
『적선이 포구 밖에 출몰한다 하니. 필시 밤을 타서 습격할 모양이요. 이곳이 물이 얕고 또 썰물이 되었으니. 곧 진지를 옮기지 아니하면 우리는 꼼짝 못할 것이요. 주사를 물 깊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소.』
하였다.
『그것은 대장이 알아서 할 일이요.』
하고. 원균은 계집을 시켜 문을 열게 하고. 몽롱한 취안으로이억기를 바라보며 위엄을 보이려 하나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여. 그 비둔한 몸이 이리로 쓰러지고 저리로 쓰러지려 하였다.
『사또는 국가의 중임을 지시고 이렇게 급한 때에 배에도 오르지 아니하시고 술만 잡수시니. 군심이 소란하여 수습할 수가 없소. 어서 배에 오르시오. 배에 오르시오!』
하고 억기는 엄숙한 어조로 재촉하였다. 원균은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한 계집의 목을 껴안고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하는 듯. 뺨을 비비는 듯하다가 무엇을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끄떡하고는.
『내 칼. 내 칼!』
하고 손을 내두른다. 한 계집이 벽에 걸린 칼을 벗겨
『사또 칼 여기 있소.』
하고 원균에게 준다. 원균은 칼을 받아 쭉 빼어 든다. 계집들은 칼을 보고 깩깩 소리를 지르며 구석으로 달아나 숨는다.
『하하하하.........』
하고 원균은 아니 떠지는 눈을 억지로 크게 뜨려고 애를 쓰며 웃는다.
『내 칼이 여기 있거든 천만 명이 덤비기로 무서울 것이 있느냐.』
하고 또 하하...... 웃고 일어나서 비틀비틀 칼춤을 시작한다. 원균의 손에 비껴 들린 칼이 번쩍번쩍 돌아 갈 때마다 계집들은 팔로 제 머리를 가리우며 칼날을 피해 돌아간다.
『여보. 우수사!』
하고 원균은 춤을 쉬고 칼을 늘이고 이억기를 부른다.
『사또! 일이 급하오. 어서 배로 나갑시다.』
하고 공손하게 재촉하였다.
『조년들은 어찌하나. 하하.......』
하고 구석에 섰는 계집을 따라 가서 목을 껴안는다. 억기는 다른 계집을 시켜 원균에게 군복을 입히게 하고 또 소리를 쳐 우후와 종사관을 부르라 하였으나.
그들도 어디로 술을 먹으러 가고 없었다.
이억기는 군사들과 함께 원균을 붙들어 배에 올렸다.
원균은 기어이 계집들을 데리고야 간다고 함으로 여기는 그 계집들까지 데리고 가게 하였다.
원균이가 배에 오른 뒤에 이억기는 경상 우수사 배설(裵楔)과 함께 진지를 옮기기를 청하였으나 원균은 듣지 아니하였다.
서늘한 해풍을 쏘인 원균은 얼마쯤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일전 절영도 앞에서 일본 함대에게 번롱을 받던 것을 기억하매. 넓은 바다에서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 겁이 났다 첫째 .. 난 바대에서 싸우다가는 붙여의한 때에 피신할 수도 없지 아니하냐. 원균은 육지가 보이는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였다.
이억기와 배설은 도저히 원균의 뜻을 움직이지 못할 줄을 알고 각각 제 배로 돌아갔다.
밤은 깊어 간다. 달빛이 어스름하게 소리 없는 바다를 비추인다.
2
칠월 십 육일 새벽. 달이 넘어 가고 바다가 일시 어두워진 때에 일본 함대는 그늘을 타서 칠천도의 원균의 함대를 습격하였다.
이때에 격상 우수사 배설(裵楔)은 원균에게 진지를 옮겨 깊은 곳으로 나가기를 강권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자기의 주사만 끌고 바다에 나와 섰다가 일본 함대가 습격하는 것을 보고 한산도(閑山島)를 향하여 도망하여 버렸다. 배설은 원균의 함대가 전멸할 것을 미리알기 때문에 한산도의 함락도 경각에 달린 것을 짐작하고 한산도에 돌아 오는 길로 군기고와 군량고(십만석이 있었다. 에 불을 지르고 거기 살던 백성을 육지로 옮겨 피난시켰다.
칠천도 포구 내에 있던 원균의 함대는 때마침 조수가 듣기를 시작하였으나 아직도 물 깊이가 큰 판옥선을 움직일 만하지 못하여 습격하여 오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함대는 작은 배에 적병을 실어 조선 판옥선을 습격케 하여 판옥선 위에는 배마다 단병전이 일어났다. 일본구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거북선도 마른 땅에서는 아무위력을 발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적병이 쉽사리 올아오기가 어려운 까닭에 칠십여 포혈로 총포를 놓아 적에게 많은 손헤를 주었다 그러나 거북선 이외의 다른 판옥선들은 모두 일본 군사의 습격을 받아 온통 피로 젖게 되었다.
일본 군사는 칼이 길고 날카롭고. 또 칼 쓰는 법이 익숙하여 단병전으로는 도조히 조선 군사의 적수가 아니었다. 더구나 조선 수군에게는 칼찬 사람이 많지 아니하여서 아무 저항도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다.
이순신은 일본 군사가 긴 칼을 가진 것을 보고 단병전할 기회가 있을 것을 예상하여 한산도에 칼 만드는 장색을 불러 긴 칼을 많이 만들게 하고 또 군사들에게 칼 쓰는 법을 조련하게 하였다. 이 순신이 항상 몸이 지니던「...) (칼을 들어 하늘에 맹세함이어 산과 물이 빛을 움직이는 도다).」 하는 것이나. 다 이때에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군관 이외에게 큰 칼을 차기를 금하여 순신이 만든 칼은 한산도 군기고에 자고 있었던 것이다. 원균은 이때에야 술이 깨고 정신이 들어서 뱃머리에 나서서 바라보았다. 포구 안이 군사들의 아우성 소리요. 총포와 화살 나는 소리였다. 조선 병선 몇 척에는 불이 일어 화광이 하늘을 찌르고 그 불빛에 두 나라 군사들이 어울려져 싸우는 양이 번뜻번뜻 보였다.
어떤 군사는 피를 뿜고 바다로 거꾸로 떨어지고. 어떤 군사는 피 흐르는 칼을 들고 뱃머리로 쫓기는 적군을 따라갔다.
『악. 악. 악. 악..........』
온 천지는 이 소리로 찼다.
원균은 선실에 뛰어 들어가 병부를 집어 들고 다시 뛰어 나와 적은 배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리에 응하는 이가 없었다.
원균이 바다로 뛰어 들려 할 때에 원균의 총회-어제 밤새도록 희롱하던 -두 계집은 매우 시를 풀어 헤친 채로 따라 나와 원균의 소매와 군복 자락을 붙들고 매어 달렸다.
『사또. 소녀는 어찌하고요?』
하고 울고 부르짖었다.
『놓아!』
하고 원균은 칼을 빼어 들이켰다. 두 계집은 원균의 칼에 죽었다.
원균은 칼고 군복을 벗어 버리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바닷물은 허리에 차지 아니하였다.
원균의 배에 있던 장졸들은 원균을 따라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에 남은 늙은 군사 하나가 원균이 탔던 배에 불을 지르고 뛰어내렸다.
원균은 푹푹 들어가는 개흙판을 엎더지며 자빠지며 기어 나왔다. 그의 몸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육지를 밟는 길로 원균은 달아났다. 비둔한 그는 몸이 무거고 숨이 차서 다른 군사들과 같이 뛸 수가 없었다.
원균이 서울서 데리고 온 군관들은 원균을 돌아 볼 새 없이 다 앞에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원균을 부축하고 곁을 떠나지 아니한 것은 배에 불을 지르던 늙은 군사 하나뿐이었다.
3
원균이 뒷등에 올라가고개 마루턱 늙은 소나무 밑에 앉아 가쁜 숨을 쉬고 옷소매로 이마와 목의 땀을 씻을 때에는 벌써 햇발이 올려 쏘았다. 그러나 포구 안에서는 아직도 아우성 소리가 울려 오고 총포의 화약 불빛이 번쩍거렸다 전라 우사사 이억기(李億祺)가 최후까지 남아 싸우는 것이었다.
이때에는 물도 많이 밀려 와 배들이 둥실둥실 떠돌았으나. 그러나 그때에는 배들은 혹은 싸워 죽고 혹은 달아나서 주인 없는 빈 배였었다.
이억기의 부하도 이억기를 따라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어져서 이억기의 배까지도 적선의 포위를 받아 장졸이 거의 다 싸워 죽고 말았다.
그래도 이억기만은 칼을 빼어 들고 뱃머리에서 혼자 싸웠으나 마침내 적의 조총에 맞아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에 적군의 일대는 벌써 원균이 탔던 배를 점령하여 수색한 결과 원균이 없는 것을 보고 곧 하류하여 원균을 따랐다.
고개 소나무 밑에서 십수명 부하를 데리고 쉬던 원균은 고개를 밑에 적군의 다다른 것을 보았다. 그의 곁에 있던 부하들(서울서 온 군관들)은.
『사또. 어서 달아납시다.』
하고 먼저 달아나 버렸다.
원균도 일어나 그 뒤를 따르려 하였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늙은 군사 하나만이 아까 배에서 나올 때 모양으로 원균을 부축하였을 뿐이었다.
『나를 좀 업어라!』
하고 원균은 늙은 군사에게 빌었다. 늙은 군사는 활과 전통을 원균에게 들리고 원균을 업었다. 그러나 그 비둔한 몸을 업고는 얼마를 달아날 수가 없었다. 적군은 점점 가까이 왔다.
늙은 군사는.
『소인이 늙어서 기운이 없소.』
하고 원균을 길가에 내려 놓으려 한나. 원균은 아니 내리겠다고 엇가자 졸랐다. 늙은 군사는 보채는 어린아이 뿌리치듯 원균을 떼어놓고.
『사또. 보시오. 적이 벌써 저기 보이오. 달아나더라도 죽기는 일반이니 여기서 한번 사내답게 싸우다가 죽읍시다.』
하고 마치 수하 사람을 타이르듯이 개유하였다. 그리고 늙은 군사는 원균에게 군복을 입히고(원균이 벗어 놓고 달아난 것을 늙은 군사가 주워서 허리에 차고 왔던 것이다) 원균의 손에서 활과 전통을 빼앗아 적군과 응전할 준비를 하였다.
『사또. 이왕 싸워 죽더라도 체면은 보셔야 하오.』
하고. 원균의 옷깃을 바로 잡고 전립패영을 단단히 매어 주었다.
원균은 마치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눈만 멀뚱멀뚱하고 늙은 군사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다.
『인제 칼을 빼어 드시오.』
하고 늙은 군사가 최후의 명령을 원균에게 하고는. 전통에서 살을 빼어 활에 메워 들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 적병이 활한 바탕 밖에 다다른 것을 볼 때에 늙은 군사는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은 푸르륵 소리를 내고 날았다. 앞선 군병 하나가 가슴에 손을 대이고 쓰러졌다.
늙은 군사는 또 살을 메워 쏘았다. 나무 뒤에 숨어서 내려다 보고 겨누고 쏘는 살은 한 방도 헛 맞히지 아니하였다. 연하여 사오인이 쓰러지매 적은 잠간 주저하더니. 군사를 헤치어 산병선을 펴 가지고 올라 왔다.
늙은 군사는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대이며 원균을 돌아 보고.
『사또. 인제는 화살도 다하였소. 이것도 전등 통제사 대감께 배운 재주요.
인제는 사또가 칼로 싸워 한 놈이라도 베이시오.』
하고 마지막 살을 날리고 활을 분질러 버렸다.
4
활을 부지른 늙은 군사는 돌멩이를 들어 팔매치기를 시작하였다.
따라 오던 적병들은 조선 군사의 그림자가 없고 늙은 군사 하나가 태연히 서서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고 더구나 분명이 화살은 날아 와서 사람을 칠팔인아나 죽였는데 혼자 선 늙은 군사가 활을 아니가진 것을 보고 멈칫 서서 따라 오지를 아니하였다. 혹시나 이곳에 대부대의 복병이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늙은 군사는 연해 돌팔매질을 하였다. 이 돌 팰매가 무서운 것은 아니겠지마는 적군은 웬일인지 오던 길로 물러가고 말았다.
늙은 군사는 고개턱까지 따라 가며 돌을 던졌으나 적군은 그것은 본 체도 아니 하고 다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알았다.
늙은 군사가 원균이 섰던 자리에 왔을 때에는 원균은 간 곳이 없었다. 거기 남은 것은 군복과 전립과 칼과 병부뿐이었다. 원균은 늙은 군사가 돌팔매질을 하여 적을 막는 동안에 군복을 벗어 버리고 달아난 것이었다.
아무도 원균이 간 곳을 아는 이가 없다. 혹은 물에 빠져 죽었으리라고 하고.
혹은 거지 모양으로 집에 돌아와 뒷방에 숨었다가 칠천도 싸움에 놀란 것이 병이 도어서 죽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늙은 군사는 원균의 옷과 병부를 싸가지고 고성(固城)에 와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에 와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에게 가서 이날 전황을 말하고 원균은 끝까지 싸우다가 죽었다고 고하였다.
이날에 맨 처음 배를 버리고 달아난 군사들은 일본군의 복병을 만나 거의 다 전멸하고 말았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예전 이순신을 꾀어 내려고 하던 것과 같은 솜씨로 경상 우병사 김응서(金應瑞)를 달래어 원균(元均)을 부산 앞바다에 끌어 내어 일변 군사를 피곤케 하고 조정과 군사들에게 대한 원균의 위신을 떨어뜨리게 하고. 일변 조선 주사의 실력(병선). 수효. 전술 등을 알아 본 뒤에 일거에 수륙 협공으로 원균의 주사를 무찌르려 하여 모두 그 계교대로 된 것이었다.
칠천도에서 승전한 일본 수군은 임진년 이순신의 주사에게 패한 원수를 갚는 것을 기뻐하여 만만세를 불렀다. 이때 칠천도에서 원균의 주사를 전멸시킨 일본 장수들은 다 한두 번씩 이 순신에게 패함을 당한 등당고호(謄當高琥). 협판안치(脇坂安治). 도진 충항(島進忠巷)등이었다.
칠천도에서 조선의 수군을 전멸한 일본군은 다시 꺼릴 것이 없었다. 그들은 수로로. 육로로 평생에 탐내이던 전라도로 물밀 듯 질풍같이 몰려 들었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서생포(西生浦)를 떠나 육지로 전라도 남원(南原)으로 향하고.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수로로 숱천(順天)에 하륙하여 역시 남원을 향하였다.
대개 남원에는 명나라 총병 양원(揚元)의 본진이 있던 까닭이었다.
이때에 고성(固城)에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은 늙은 군사로부터 칠천도 대패전의 전말을 듣고. 대사가 다 그릇되었다 하여 사천(泗川)을 지나 진주(晋州)도 버리고 초계(草溪)도 버리고 도내 산성(道內山城)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고. 체찰사 이원익(李元翼)도 칠천도 패보를 듣고는 산서에 들어 가 숨어 버렸다. 오직 의병장 곽재우(郭再祐)만이 창녕 화왕산성(昌寧火王山城)을 죽기로써 지켰으나 마침내 일본군은 그 앞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5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도 원수 권율(權慄)이 다산성으로 들어가 숨고 오직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창녕 화왕산성(昌寧火王山城)을 지켰으나 너무 궁벽하여 적병에게 함락은 아니 되었지마는. 적병을 막지는 못하고 그를 통과시켰다.
이때에 가등청정은 대구(大邱)를 지내어 질풍같이 전라도의 남원(南原)을 향하고 몰아 왔다. 그 길에 경상. 전라. 두 도의 접경언 요해지가 안음현(安陰縣)의 황석 산성(黃石山城)이었다.
안음 현감 곽준(郭焌)은 전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죽기로써 황석 산성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군사와 가족을 모두 황석 산성으로 옮기었다. 옮기는 날에 곽준과 조종도는 군사들과 따르는 백성들에게 향하여 죽기로써 지키기를 맹세하고 군사들과 백성들도 그리하였다.
조종도는.
나는 돵하는 놈들과 함께 『 더럽게 죽지 아니하련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 싸워 죽으련다.』
하고 피난하기를 권하는 친구들을 향하여 말하였고. 가족을 데리고 곽준을 따라 황석 산서에 들어오는 날. 「 」이라는 글을 지었다. 이때에 전 김해 부사 백 사림(白士林)이 우대로 도망을 하는 길에 황석 산성에 들린 것을 곽준과 조종도는 그의 벼슬이 높은 것과. 또 무관인 것을 생각하고 만류하여 주장을 삼았다.
군사들도 일개 현감인 곽준보다는 부사 백 사림을 더욱 존경하고 믿었다.
마침내 팔월 초생에 적운이 황석 산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대장인 백 사림은 어느 틈에 도망하였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백 사림은 어느 틈에 도망하였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백 사림이 달아났단 말을 듣고 군사들은 거의 다 흩어져서 하루가 다 못하여 황석 산성은 함락을 당하고 말았다. 곽준(郭준)은 적의 항복 권고를 물리치고 끝까지 싸워 그 아들 형제 이상(李祥). 이후(履厚)와 함께 적의 칼에 죽고. 곽준의 사위 유 문호(柳文虎)는 적에게 사로잡혀 가고. 문호의 아내인 준의 딸은. 「아버지가 죽어도 내가 죽지 아니한 것은 남편이 있기 때문 이어니와. 남편마저 잡히니 내 어찌 살랴」하고 붙드는 시비에게 말하고 목을 매어 죽고. 조종도(趙宗道)도 그가 산성에 들어 갈 때에 (.
.」이라고 한 것같이. 장순(張巡) . 허원(許遠)의 본을 받아 성중에서 싸워 죽었다.
이때에 남원에서 명장 양원(楊元)이 성을 높이 쌓고 성 둘레에 늪을 파고 성위에 대포와 소포를 걸고 요동군(療東軍) 삼천명과 조선군 이천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고. 전주(全州)에는 명장 진우충(陳愚衷)이 있었다.이 때문에 일본군은 남원의 명군을 깨뜨려 일거에 전라도를 손에 넣으려 한 것이었다.
일본군을 팔월 일일에 병을 발하여 세 길로 남원을 향하였으니. 일대는 평 수가(平秀家 =字 ( )가 대장이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선봉이 되어 군사 오만을 거느리고 경상도로부터 운봉(雲峰)을 지나 남원으로 향하였고. 일대는 모리 수원(毛利秀元)이 대장이 되고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선봉이 되어 군사 오만을 거느리고 경주(慶州)를 떠나 밀양(密陽). 대구(大邱)를 지나 전의관(全義館)을 거쳐 남원으로 향하였다.
또 일대는 소조천 수추(小早川秀秋)가 군사 팔천을 거느리고 밀양.
현풍(玄風)지나 충청도로 향하여 구원군이 올 길을 끊으려 하였다.
팔월 십 삼일에 일본군 선봉대가 남원성 밑에 도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