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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 08 (06~07)

6

옥포의 싸움에 적선 사십여 척을 깨뜨리고 적군이 죽은 자가 부지 기수로되 이편 군사에는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직 순천부 정병(順天府正兵) 이 선지(李先枝)가 왼편 팔에 살을 맞았을 뿐이었다. 거북선과 활과 화전의 위력에 적군의 조총은 아무 힘을 쓰지 못하였다. 그렇지마는 적병과의 전쟁에는 군사 한 사람 밖에 상한 이가 없었지마는. 전쟁이 끝난 뒤에 노획품을 나눌 때에 원균의 군사는 순신의(元均) 군사 두 사람을 활로 쏘아 맞혔다. 그래도 원균은 이것을 금하지 아니하였다. 원균으로 말하자면. 자기가 탄 전선은 순신의 준 바요. 부하에 오직 작은 배 두 척이 있어 전쟁 중에는 적병의 철환을 피하여 항상 뒤로 돌았다. 그러다가 전리품을 빼앗을 때에는 가장 용감하게 제 편 군사를 쏜 것이었다.
적선에서 빼앗은 물품 중에 쌀 삼백 석은 여러 배에 주린 군사들의 양미로 골고루 나누어 주고. 의복. 필육 등물도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군사들의 싸우고 싶은 뜻을 돋구게 하고. 붉은 철갑 검은 철갑이며. 각색 새투구며. 입을 가리우는 물건이며. 붙이는 수염이며. 철과대. 금관. 금우. 금삽. 우의. 새짓비.
소라 등 사치하고 흉물스러운 것과. 큰 쇠못이며 동아줄 등물은 모두 단단히 감봉하여 두고 그중에 무겁지 아니한 물건을 첩보(이겼다는 기별) 가지고 가는 편에 왕께 보내었다.
이번 싸움에 도로 찾은 포로 중에 순천 대장(順天大將) 유섬(兪殲)이가 사로잡은 계집애 하나는 나이 겨우 사오세이어서 성명돠 거주르 fanfdj도 대답할 줄 몰랐으나. 보성 군수 김 득광(金得光)이 사로잡은 계집아이라나는 나잇살이나 먹은 듯한데 머리를 끊어 일본 사람 모양으로 차렸다. 순신은 이 계집아이를 불러 문초하였다.
『네 어디 사는 아이니?』
『동래 동면 매바위(東萊東面寐바위) 사오.』
『성명은 무에냐?』
『윤백련(尹百蓮)이오.』
『나이는 몇 살이고?』
『열 네 살이요.』
『어느 달 어느 날 어디서 적병에게 붙들렸어?』
『소인의 아비는 다대포(多大浦) 수군이요. 곤절 싸움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오.』
『네 어미는?』
『소인의 어미는 양녀 모론(양녀모론)이요. 지금은 죽었소.』
『조부모도 없어?』
『몰라요.』
『그러면 뉘 집에 붙여 있었어?』
『기장(機張) 사는 신선(新選) 김진명(金晋明)의 집에 붙여 살았소.』
『그런데 어떻게 적병에게 붙들렸어?』
『지난 사월에요.』
『사월 어느 날?』
『날은 모르겠소. 지난 사월에 왜병이 부산포(부산포)에 왔다고. 호수 진명(戶首進明)이가 군령을 받아 싸우러 아갈 적에 소인을 군장(軍粧)을 지워서 데리고 부산진으로 가라고 합데다. 그래 가노라니까. 말날이 (말날이) 고개에 가니까 피난군이 몰려 오면서 부산은 벌써 함몰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피난군이 몰려 오면서 부산은 벌써 함몰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러이까 주인(진명)이 소인을 데리고 바로 기장 고을(機張고을) 로 갔다가 거기 진치고 있던 군졸이 달아날 때에 주인이 소인을 데리고 그 집으로 돌아 와서 하룻밤을 지냈소. 그러노라니까 소인의 늙은 아비와 친척들이 피난해 오는 것을 우연히 만났소. 그래서는 기장 고을 운봉산(雲蜂山)에 팔구일이나 숨어 있다가 적병이 얼마인지 모르게 밀려 와서 소인과 소인의 오라비 복룡(下기) 이가 붙들려서 해가 다 저문 때문에 부산으로 잡혀 갔소. 부산성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오라비 복룡 이는 부지 거처가 도고 소인만 배 밑에 갇혀 있었소.』

7

적병에게 사로잡혔다가 보성 군수에게 다시 사로잡힌 십사세 여아 윤 백련은 다시 말을 이어.
『그렇게 소인을 배 창널 밑에 가두아 임의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는. 어느 날인지 병선 삼십여 척이 부산을 떠나서 김해(金海)로 가서. 김해서 반 남아 들에 노략질하러 가고. 오륙일이나 있다가 이 말 초엿샛날 사시에 일시에 배를 띄어서 밤개(밤개) 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새벽에 거기를 떠나서 옥포 앞바다에 가서 섰다가 그날 싸움이 났어요. 배에 조선 철환과 장편전이 비는데.
그러니깐 왜인들이 무에라고 지전대고 떠들고 쿵쿵거리더니만 모두 물에 뛰어 들어서 헤엄쳐서 산으로 달아나버렸는데. 소인은 배 창널 밑에 있어서 그 밖에는 모르와요.』
하고 말을 끊었다. 순신은 백련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정경을 당하는 이가 백련 하나만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에. 순신의 가슴은 끓었다.
순신은 좌우를 돌아 보며.
『이 아이 말을 듣고 다들 어찌 생각하오?』
하고 물었다.
『죽기로써 싸우려 하오.』
하고. 나머지 장수들이 정운의 말을 따랐다.
『제공의 충성이 이만하니 걱정 없소. 맹세코 영남 해상의 적병을 소탕 합시다』
하고 순신은 제장에게. 다시 나아가 싸우자는 뜻을 암시 하였다. 그리고 윤 백련 이하 적에게 잡혔던 아이들은 춘천. 보성 등 각관에 맡겨 잘 거두어 기르하고 분부하였다. 순신이 옥포 승전을 왕에게 보고한 장계 중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죽기도 많이 하고 노략도 많이 당하여. 일반 창생이 살아 남음이 없도소이다. 이제 바닷가로 돌아 다녀 보매 지나는 바 산골짜기마다 피난하는 백성이 없는 곳이 없사옵고. 한번 신 둥의 배만 바라보오면 머리 땋은 아이들이나 백발된 늙은이들이나. 업고 안고 서로 끌고 울고 부르짖고 따라옴이 마치 살아날 길이나 찾은 듯하오며. 어떤 이는 적병의 종적을 가리키는 이도 있어 그 참측함이 차마 두고 오기 어렵고. 곧 배에 태워 데리고 가고도 싶사옵건마는 원래 그러한 백성이 수다하올 뿐더러. 또 싸우러 가는 배에 사람을 많이 실었다가는 배 걸음이 빠르지 못할 염려도 있사옵기로 돌아 오는 길이 데려 갈 터이니. 각각 깊이 숨어 적병의 눈에 띄어 사로잡히지 말도록 하라고 개유하고 적병을 따라 멀리 갔나이다. 그리 하옵다가 문득 서쪽으로 행행하신단 놀라운 기별을 듣사옵고 급히 돌아 왔사오니. 애련하는 정이 오히려 잊히지 아니하나이다.』
순신은 가덕(加德)에서 노량(露梁)에 이르는 동안에 있는 창원(昌原).
고성(固城). 진주(晋州) 등 여러 고을의 바다로 향한 산골짜기에 아직 다 익지 못한 보리 이삭을 훑어 먹으며 부러 휴유하고 난을 피하고 있는 가련한 백성들의 모양을 눈에서 떼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싸움을 이기고 돌아 오는 길에는 안전한 곳으로 실어다 주마고 하고. 그대로 못한 것이 맘에 걸렸다.
그러나 일개 수사로는 그러한 백성들을 구호할 아무 힘이 없으므로. 그는 전라 감사 이 광(李珖)에게 이첩하여 양식을 보내어 이 백성들이 굶어 죽지 말게 하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자기의 관할 하에 있는 돌산도(突山島). 걱금섬 등지에 백성을 옮겨 농업과 어업고 목축과 공업을 진흥할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