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순신이 노인의 술과 안주를 받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나도나도 하고 술과 안주와 삶은 닭과 산 닭과 마른 문어와 전복과 떡과 신. 버선. 간장. 이런 물건을 모두 순신에게 바치었다.
『까닭 없이 물건을 받을 수 없소.』
하고 순신이 사양하면 그들은 울며 강권하였다. 돈으로 치면 모두 몇 푼어치 안되는 것이지마는 그것은 백성들이 그들의 영웅을 대접하는 정성이었다.
부득이하여 순신은 그것을 다 받아 군사들에게 분배하고 난 뒤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우기를 원하는 이는 나서라!』고 하였다.
백성 주에는 백여 명이 나섰다. 그러나 그중에는 늙은이가 많아서 도저히 싸움에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순신은 그중에서 장정 삼십여 명을 뽀q아 내어 순천서 가지고 오던 군복을 입히고 활과 살통을 주었다. 군사로 뽑힌 장정들은 기뻐 뛰나. 못 뽑힌 늙은이들은 울며 자기네도 한몫 끼일 수 있음을 맹세하고 졸랐다.
『집에 있어서 백성들을 안도하게 하시오.』
하고 타일렀다.
순신의 낙안 읍내에 들어 갔을 때에는 읍내의 관사와 창고는 다 재가 도고 말았다. 순신이 오는 것을 보고 남아 있던 늙은 관속과 백성들은 모두 눈물을 뿌리며 나와 맞았다.
읍을 떠나 십리쯤 나가서 거기도 부로들이 길에 늘어 서서 순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순신의 일행이 오매 길을 막고 음식과 의복 등속을 드리었다. 아무리 사양해도 울며 강권하였다.
순신은 여러 날 노독과 또 정신 감동으로 신기가 불편함을 깨달았다. 순신의 나이는 지금 오십 삼세다. 게다가 옥중 고초를 당하고 사모하는 어머니가 돌아 가고. 심로하고 여러날 비를 맞으며 걸음을 걷고. 밤에는 빈대와 벼룩으로 잠을 못 자고. 또 상중이어서 고기를 아니 먹고 하기 때문에 건강이 매우 쇠약하여서 갑자기 사오세나 나이를 더 먹은 듯하였다. 더구나 노중에서 백성들이 통곡하고 맞는 양을 볼 때에 당장에서는 눈물이나 슬퍼하는 양을 보이지 아니하였으나.
밤에 혼자 있을 때에는 밤이 깊도록 혼자 울고 밖에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보고는.
『하늘이여! 이 백성을 건지소서. 내 목숨을 받으시고 이 불쌍한 백성을 살리소서.』하고 빌었다.
순신은 원래 귀신을 믿지 아니하였으나 이때부터 하늘에 비는 습관이 생겼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통제사라고 이름뿐이요. 배 한 척이 있나. 군사가 있나. 군기가 있나. 군량이 있나. 그거지가 있나. 나라일이니 힘 및 는 데까지.
목숨 있는 때까지 해야 된다 할 수밖에 없다는 결심과 의무감으로 나서기는 하였으나. 앞길이 창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순신의 앞길에는 오직 실패가 있을 뿐이요. 죽음이 있을 뿐이요. 그 뒤를 이러서는 조정의 모함과 욕설과 모욕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을 모르는 이 순신이 아니었다.
보성 안 도(安道)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에는 몸이 불편한 것도 아울러 순신은 밤새도록 고민하고 하늘에 빌었다.
낙안. 보성. 순천 등지에 수령에게 미리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통제사의 이름으로 명열하였건마는. 그들 수령들은 병선도 없고 군사도 군기도 없는 통제사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벼슬이라면 쓴 것 단 것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십 일일에도 몸은 회복되지 아니하였다. 안도의 집에 물 것이 많아서 양산완의 집으로 옮았다. 송희립(宋希立). 최 대성(崔大成) 등이 찾아왔다. 그들은 본래 순신의 신임받던 부하 맹장으로서 원균(元均)에게 쫓음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십 팔일에 회령포(會寧浦)에 당도하니 수사 배설(裵楔)이 수질이라 칭하고 나와 맞지 아니할 뿐더러. 이튿날 교서를 숙배할 때에도 참예하지 아니하므로 순신은 영리를 시켜 배설을 잡아다가 그 오만 무례함을 꾸짖고 정강이 사십도를 때렸다.
7
순신이 회령포(會寧浦)로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순신은 순천.낙안. 보성 등지로 다니며 배를 구하였으나 도저히 싸움에 쓸 만한 배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거제 발포(巨濟鉢浦) 첨사가 와서 배설이 병선 십 이척을 기회를 기다린다는 말을 저하였다. 이 때문에 수신은 아픈 몸을 끌고 회령포로 내려 온 것이었다.
배설은 칠월 십 육일에 칠천도 싸움에 원균과 뜻이 맞지 아니하여 제 병선을 끌고 한산도로 도망하여 한산도의 관사와 창고를 불사르고는 바다로 떠다니며 도망할 기회를 찾다가 그믐께 노향진에서 이 순신을 만나 죽기로써 노량진을 지키라는 권고를 받았다. 노량진은 경상도 바다에서 전라도 바다로 넘어 오는 목으로 군사상 가장 요긴한 곳이었다. 배설은 즉석에서는 그러하기를 허락하였으나. 「 」( ) ( 큰집이 무너지는데라고 자칭하고 순신이 다녀 간 다음날에 곧 노량진을 떠나 전라도 바다로 들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천만 의외에 회령포에서 이 순신을 마난T다. 순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설은 일변 두렵고 일변 두렵고 일변 귀찮았다. 첫째로 순신을 만나면 순신은 반드시 노량진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책망할 것 같고. 둘째로는 나아가 싸우기를 명할 것 같았다. 이것은 배설에게는 꼭 싫은 일이었다.
배설은 일본 수군이 몇 백척인지를 안다. 일본 수군이 어떻게 위세가 맹렬한 줄을 안다. 그 수군이 금명간에 전라도 바다로 밀어 넘어 올 줄을 안다. 이제 열두 척 밖에 없는 병선을 가지고 오백척인지 육백척인지 모를 적을 대항하자는 것을 곧 싸워 죽자는 말과 마찬가지인 것을 배설은 잘 안다.
이래서 배설은 순신을 보기를 꺼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설마 순신이 영리를 보내어 자기를 잡아다가 장형을 할 줄까지는 몰랐었다.
배설은 매를 맞고 순신에게 불려 청상에 올라 가 황송하여 엎디었다.
순신은 좌우를 시켜 배설에게 시사외 군복을 입히게 하고.
『장수는 싸우는 것 밖에 일이 없소. 지금 적선이 녹도(鹿島)에 왔다 하니 일각을 지체할 수 없소. 다행히 열두 병선이 남았으니. 곧 나가 적을 막아야 하겠소. 행선 준비를 하오!』
하고 배설에게 명령하였다. 배설은 한참이나 주저하였다.
『소인도 싸울 뜻이 없는 것도 아니오마는 지금 적선은 노량진을 넘어선 것만 해도 사오백척이 될 것이요. 한산도 저쪽에 있는 적선을 합하면 천여 척이라 하오. 이제 열 두 척 병선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군의 수군을 막으려 하는 것은 마치 주먹으로 무너지는 하늘을 버티는 것과 다름이 없는가 하오. 소인의 미련한 생각에는 아직 바다를 버리고 물에 올라 육군을 모아 뭍에 오르는 적을 막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 하오. 사또 뜻이 어떠하올지?』
『그것은 조정에서나 할 말이요. 우리는 수군으로 바다를 막으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니 힘 및 는 데까지. 목숨 있는 날까지 바다를 막는 것이 우리 직책이요. 성화 같이 행선준비 하오!』
하고 순신은 배설에게 엄명하였다.
배설은 매맞아 아픈 다리를 끌고 마지못하여 배에 올랐다.
순신도 부하를 거느리고 배에 오르고 성화같이 군량과 물을 배에 싣게 한 뒤에 열 두척 병선은 돛을 달고 회령포를 떠났다.
8
회령포를 떠난 것이 팔월 이십일. 함대를 배나루(배나루)에 옮겼다.
이십 일일 새벽에 순신은 갑자기 곽란을 일으켜 구토 설사를 시작하여 마침내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튿날도 낫지 아니하여 또 이튿날도 낫지 아니하여 병세는 더욱 위중하였다. 그래서 부득이이 배에서 내려서 민가에 들어가 쉬었다.
이십 사일에 순신은 병을 무릅쓰고 배에 올라 행선령을 내렸다.
칼거리(칼거리)에 이르러 아침 먹고 거끔섬(거금섬)을 지나 어란진(於蘭鎭)에 이르니. 벌써 관리와 백성은 다 달아나고 텅 비었었다. 그날 밤을 어란진 앞바다에서 지냈다.
이튿날 이십 오일에 어떤 포작(鮑作)이 소를 후쳐 가다가 붙들려서 공초하는 말이. 적선이 뒤에 온다고 하므로 순신은 거짓말을 하여서 군심을 소란시키는 허경자두 사람을 잡아서 베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인 이십 육일에는 임 준영(任俊英)이라는 군관이 말을 달려 와서 적병이 배나무까지 왔다는 말을 고하였다. 이날에 전라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가 왔다. 김 억추는 칠천도에서 전사한 이 억기 대신에 우수사가 된 사람이었다.
이튿날인 이십 칠일에 경상 수사 배설(裵楔) 이순신을 보고.
『걱선 삼백여 척이 배나루까지 왔다 하니 어찌하오?』
하고 무서워하는 빛을 보였다.
『싸우지. 어떻게 하오?』
하고 순신은 그 빛나는 눈으로 설을 바라보았다.
『열두 척으로 샘백척을 어떻게 싸우오?』
하고 설의 읍성은 떨렸다. 그는 적선과 순신을 다 같이 두려워 함이었다.
『그러면 수사는 어디로 피신한단 말이요?』
하고 순신은 웃었다.
『피한다는 것은 아니오마는.』
하고 설은 물러갔다. 그러나 설은 어찌하면 이 죽을 곳을 빠져 나아갈 수가 있을까 하여 고집 불통하는 순신을 원망하였다.
이십 팔일에 과연 적선 팔척이 불의에 어란진 앞바다에 나타났다. 열 두 척선에 탄 아직 싸움 경험 없는 병사들은 모두 겁을 내어서 더러는 배를 육지로 저어다가 붙이고 하륙하려 하고. 경상 수사 배설은 달아나려는 기색을 보였다.
순신은 칼을 뻬어 들고 베 설에게 적선 추격을 명하고 순신이 몸소 선봉이 되어 적진을 향하여 배를 달렸다. 설은 부득이 순신의 명을 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제선들도 어찌 되나 하면서 순신의 명을 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제선들도 어찌 되나 하면서 순신의 배의 뒤를 따랐다.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고 습격하는 바람에 적선은 기를 꺽이어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적선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야 부하 제선은 기운을 얻어 앞을 다투어 적선을 따랐다.
칡머리( )에 이르러 순신은 쇠를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군사들은 더 못따르는 것이 아까운 듯이 뱃머리를 돌려 의기 양양하게 어란진으로 돌아 왔다.
순신은. 적의 척후가 어란진에 순신의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갔으므로 반드시 대부대의 적선의 습격이 있을줄 알고 곧 전함대 열 두 척을 노루섬에 옮겼다가 이튿날 진도 벽파진(珍島碧波津)에 진을 옮겼다 벽파진은 진도의 동쪽 끝에 있어 해남을 바라보는 곳이다. 앞에 조그마한 섬이 막아 있어서 그 안에 능히 수십척의 배를 숨길 수가 있었다.
벽파진에서 여러 작은 섬 틈바구니로 북으로 이십리나 가면 진도와 해남 두 끝이 한강 넓이만이나 한 물목을 새에 두고 나주 닿은 울뚝목( 또는 )이라는 해협이 있고. 그 해협을 지나서 오른편 해남쪽에 오긋하게 들어 간 곳이 전라도 우수영이다.
9
순신이 외로운 열 두 척 함대를 끌고 서쪽으로 돌아온 뜻은 이 울뚝목의 지세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울뚝목은 난 바닷물이 목포(木浦) 앞바다로 돌고 나는 좁은 문이어서. 하루 네 차례 조수가 들고 날 때에는 악악 소리를 지르고 물결이 길이 넘게 턱이지고 거품이 일고 용솟음을 쳐서 배가 다닐 수가 없게 되는 곳이다.
그 이름을 울뚝목이라고 하는 것은 우는 - 골 -목이라는 것이니. 그러한 물목을 남방 말로 도라고 하는데. 도라는 것은 돌(돌)이라는 말이 변한 것으로.
한산도 싸움에 유명한 견내 도라는 도도 이 도다. 순신의 생각에는 이 울뚝목이 있었던 것이다.
순신이 임진년에 전라 수사로 있을 때에 좌수영 앞 경상도로 통한 바다에 쇠사슬을 건너 매어 방비한 것이 있거니오. 순신이 통제사가 된 뒤에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에게 명하여 울뚝목에도 쇠사슬 두 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게 하였다. 울뚝목의 급한 조류와 두 줄의 쇠사슬. 이것은 순신이 크게 믿는 것이었다.
순신의 함대가 벽파진에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각처 바다에 흩어져 있더s 민간의 상선과 어선이 모여 들기를 시작하였다. 수없는 적선이 질풍같이 몰아온다는 소식을 들을 뱃사람들은 순신의 위대한 날개 밑에서 살 길을 찾으려 한 것이었다.
구월 초이일 새벽에 경상 수사 배설(배설)이 도망하고 말았다. 구월 초 칠일에 탐방군 임 중형(林仲亨)의 보고매. 적선 오십 오척이 칡머리를 돌아 왔는 데.
그중 십이척은 벌써 어란진에 와서 우리 주사를 찾는다고 하였다.
순신은 곧 각선에 대기령을 내리고 피난한 민선에 대하여서는 경동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상 수사 배설이 도망한 것은 군사들에게 큰 불안을 주었다. 게다가 새로 서울서 내려 온 전라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라는 사람은 아직 삼십 내외의 아무것도 모르는 유차하고 철없는 인물로서.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이 사사로운 정분으로 대장의 중임을 맡긴 것이었다. 순신은 김 억추를 처음 만나 군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보고 그 무지함에 놀라서 억지로 시킨다면 만호(萬戶)감이 될까. 하였다 그래도 배설은 마음을 겁할지언정.
목숨은 아낄지언정. 병법에는 소양이 있고 실전의 경험도 있는 사람이었다.
순신은 그 재주를 아껴서 아무쪼록 진중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그는 새벽에 몰래 배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순신의 낙심도 여간이 아니었다.
적선 오십 오척! 이것이 군사들과 피난은 만선들의 무서움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이 통제가 이 적을 막아 낼까? 의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시나 되어서 과연 적선 십삼 척이 벽파빈을 향하고 방포하며 달려들었다.
순신은 전함대에 출동을 명하고 자기가 선봉으로 적선을 맞아 싸웠다.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고 방포를 하며 내닫는 양을 보고. 또 뒤에 많은 배가 있는 것을 보고 적선을 곧 뱃머리를 돌려서 달아났다.
순신은 부하를 격러하여 추격하려 하였으나 바람과 물에 다 거슬릴 때이므로 벽파진으로 돌아 왔다.
순신이 십 삼척 적선을 물리치고 돌아 오는 것을 보고 군사들과 피난민들은 환호하였다.
해가 지매 순신은 각선에 명하여 적이 야습할 염려가 있으니 다 출동 준비를 하기를 명하고. 민선에 대하여서는 포성을 듣거든 일제히 횃불을 들고 다 멀찍이 따라 나오기를 명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함대를 거느리고 섬 그늘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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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이나 되어서 과연 적의 포성이 들렸다. 배들은 모두 겁을 집어 먹었다.
순신은 만일 피하는 자 있으면 군법 시행한다고 엄명하고. 총포와 활을 준비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적선의 포성은 점점 가까이 왔다. 순신은 나는 듯이 섬 그늘에서 배를 몰아 나오며 일성 포성을 놓아 북을 울렸다.
순신이 탄 배가 앞서 나가는 것을 보고 부하 제선들도 포성을 내며 따라 나섰다. 벽파진에 머물러 있던 피난선들은 포성을 듣고 인제 횃불을 들고 오락가락하였다.
일경 동안이나 포성이 계속하다가 적선은 달아나고 말았다. 구월 구일. 바닷 바람은 찼다. 군사들은 아직도 여름옷을 입었다. 겹옷을 어디서 구하나?
피난선은 점점 늘었다. 순신이 여러 번 적선을 쳐물리쳤다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더욱더욱 순신을 신뢰하고 모여 들었다.
순신은 선인 중에 낫살 먹은 사람을 불러 지금 군사들이 겹옷이 없고 또 먹을 것이 없으니. 모아 내기를 청하였다. 이 선인은 다른 선인들과 의논하고 옷과 쌀과 생선을 모아 순신에게 바쳤다. 비록 조금씩 모은 것이지마는 수백척에서 모은 것이라 적지 아니하였다.
또 진도와 해남 백성들이 송아지와 돼지를 갖다가 바치는 이가 있으므로.
순신은 구월 구일을 잡아 군사들에게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열 두 척 병선이 한데 모야 가지런히 연결해 놓고. 장수나 군졸이 모두 한데 모여서 먹고 마시고 소리를 하고 춤을 추었다. 순신도 장졸들 틈에 섞이어 손수 술을 따라 주고 위로하였다. 이날은 마침 바람이 거울과 같이 고요하고. 진도와 해남의 모든 섬과 산들은 맑은 공기와 일광 속에 또렷또렷하였다. 장졸들의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 중에서 나이 오십이 넘은 사람에게는 순신이 손수 술을 따라주었다.
그사람들은 순신에게 술을 권하고 고기를 권하였으나 순신은 술을 받아 먹어도 고기는 먹지 아니하였다.
초아흐레 반달이 바로 벽파성 위에 걸릴 때까지 잔치는 계속하였다. 그러나 순신은 장졸이 취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장졸이나 백성이나 모두 난리를 잊어 버리고 오래 못 보던 래평 시절을 당한 듯이 즐겼다. 이때에 적의 촉후선 이척이 산 그늘에 숨어서 감보섬(甘甫島)까지 들어 왔다. 그는 순신의 함대의 허실을 정탐하기 위한 것이었다.
순신은 영등 만호(永登萬戶) 조계종(趙繼宗)에게 명하여 적선을 잡으라 명하고 여전히 잔치를 계속하였다. 군사들도 모두 기운을 내어 활을 쏘고 배를 저었으나 적선은 달아나 버렸다.
십 사일에 임영준(任英俊)이 해남 방면을 육지로 정탐하고 돌아 와 보고하기를. 적선 이백여 척이 칡머리를 돌았는데 그중에 오십 오척이 벌써 어란진에 왔다 하고 또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도망해 온 중걸(仲乞)이라는 사람의 말에. 적이 말하기를. 조선 주사 십여 척이 자기네 배를 엄습하여 사람을 만히 죽였으니 보복을 해야 한다고 하고. 또 자기네 병선을 많이 불러다가 이 순신의 주사를 다 멸한 뒤에 곧 경강으로 올라 간다고 하더라고 하였다. 이 보고를 듣고 순신은 그 말을 다 믿지는 아니하였으나. 적의 대부대가 엄습해 온 것이 확실함을 알고 곧 전령선을 우수영에 보내어. 큰 싸움이 생길 터이니 백성들은 피난하라고 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