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모양으로 일본군은 벽파진 한 싸움에 전진할 생각을 끊고 정유년 겨울을 날 준비를 하였다.
전라도 쪽으로부터 말하면. 순천 왜교(順天倭橋)에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진을 치고. 사천에는 도진의홍(島津義弘). 도진 충항(島津忠恒)이 있고.
남해(南海)에는 입화 종무(立花宗茂). 유마 청신(有馬晴信). 대촌 회전(大村會前).
송포진신(松浦鎭信) 등이 있고. 남해. 당도(唐島). 저 제도(巨濟島)간에는 수군이 지키고. 죽도(竹島).에는 와도 직무(와도 직무)가 있고. 양산(梁山)에는 흑전장정(黑田長政)이 있고. 부산(釜山)에는 총대장격인 평수가(平秀家)라고 일컫는 우회 다수가(宇會多秀家). 모리수원(毛利秀元). 소조천수추(小早川秀秋)등이 있고. 서생포(西生浦)에는 주전론자의 선봉인가등청정(加藤淸正)이 있고. 울산성은 가등청정이 쌓고 수비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의 총수는 십만이요. 진영은 칠백십리에 뻗치었다.
그런데 명병측은 어떠하였던고 하면. 남원(남원) 패전의 보고를 듣고 강화론자인 병부상서(兵部尙庶) 석성(石星)을 벌하고. 남원을 지키다가 달아난 양원(陽元)과 전주(全州)에 있어서 남원을 돕지 아니한 진우충(陳愚衷)을 군법에 처하여 베이고. 절강도어사(浙江都御使) 진효(陳效)로 조선 감군(朝鮮監軍)을 삼고. 산동 우정사(山東右政使) 만세덕(萬世德)으로 도찰원 우첨 도어사 해방 순무(都察院 右僉都御使海防巡撫)를 삼고. 도독(都督)동 윌원(동일원). 유정(유정)등으로 하여금 병 오만일천을 거느리고 조선에 향하게 하고. 또 수군 도독(水軍都督) 진인(陳璘)으로 하여금 수군일만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향하게 한 것이었다.
명균은 남원의 패전이나 벽제관의 패전이나 다 조선군이. 혹은 겁이 나서 먼저 달아나고 혹은 적과 통하여 군기를 누설한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전패한 명 나라 장수들이 자기네의 책임을 가볍게 하려는 핑계였었다. 그러나 조선은 또 이 불명예로운 책망에 대하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순신. 권 율(행주 싸움에 서만)등 몇 사람을 제하고는 다 적의 빛만 보면 달아나는 무리가 아니었던가. 조금만 적의 발걸음이 멀어지면 입만 살아서 주전론을 뽐내던 자들도 적의 오백리 밖에만 왔다고하면. 벌써 짐을 싸고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리고 애걸 복걸로 명 나라에 구원을 청하기로 능사를 삼지 아니하였던가. 둘째 번 명균이 조선으로 올 때에 명나라 장수가 조선 임금에게 보낸 질문서는 실로 조선 사람된 사람으로는 부끄러워서 죽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 글을 여기 적어 독자와 함께 등이 젖도록 부끄러운 땀을 흘려 보자.
『 』
그 뜻은 이러하다.
중국은 속국이 망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어 두 번째 군사를 보내니. 그 은혜는 바랄 수 없는 일이라. 이만하면 임금 된 자는 마땅히 장을 베고 쓸개를 핥는 뜻이 있고. 신하 된 자는 임금의 근심을 덜기 위하여 몸을 바치는 절이 있고. 백성된 자는 위를 사랑하여 앞서서 죽을 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 그러할진댄. 우리 대병이 나아가 성세를 도우면 왜 비록 강하다 한들 조선을 어찌하랴.
그러다하거늘 임금은 달아날 생각만 하고. 대신은 도망할 생각만 하고. 대장은 나라를 팔고군기를 누설하고. 백성들은 나도나도 하고 적에게 항복함은 어찜이뇨. 접때 남원이 빠지고 전주를 잃을 때에도. 조선의 관병은 있던 말을 듣지 못하고 혹은 창을 거꾸고 들어 반란을 일으키고. 혹은 기회를 타서 내란을 일으키니. 이는 분명히 왜를 달게 여김이라.
이제 그 나라(조선)에 묻노니. 아프게 스스로 깨어 만일 위와 아래 서로 힘을 써 죽기로 지키고 삼군을 거느려 나아감이 있고 물러감이 없을진댄. 중국은 마땅히 크게 군사를 내어 너를 도와 적을 치려니와. 만일 스스로 사직을 가벼이 여기고 걸핏하면 도망하여 고식적으로 무사하기를 구할진댄. 중국이 어찌 너를 위하여 지켜 주랴. 곧 군사를 거두어 나 맡은 지경인이나 지켜 주랴. 곧 군사를 거두어 나 맡은 지경이나 지킬 터인니. 너는 동으로 가든지 서로 가든지 남으로 가든지 북으로 가든지 네 멋대로 할 것이요. 네 나라 스스로 돌아 갈 곳을 찾을 지어다. 거짓말 말고. 아무렇게나 말고 진정으로 성의 있게 대답하라. 양단을 다 잡아 우리 군기를 그름하게 말지어다.」
2
이러한 모욕적 자문을 받고도 조선의 조정에서는 왕이 나 대신이나 매양 고담 주론으로 일을 삼던 대간이라는 위인들이나 감히 분개하지도 못하고 오직 황송할 뿐이었다. 「예. 황송하오. 살려 줍시오.」할 뿐이었다. 그리고 왕은 한문 잘하는 사람을 시켜 변명하는 회답을 하였다. 그리고 곧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함경도 군사만여 명을 모집하여 명 나라 경리 양호(楊鎬). 제독(提督) 마귀(馬貴)의 분부를 듣기 하고 명병과 합력하여 한강의 여러 여울을 지키세하였다. 그러나 음식이나 의복이나 조선병과 명병과는 큰 차별이 있었다. 명병은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술과 고기를 막 먹어도 조선 군사는 명병이 내어 버리는 것을 얻어 먹고. 조선 병정 중에 아무리 지위가 높은 이라도 명병중에 가장 지위가 낮은 이보다 낮았다. 그래서 걸핏하면 욕을 얻어 먹고 매를 얻어 맞고.
심지어는 까닭 없이 못매를 맞아 죽은 이도 있었다. 이러한 고초를 겪어도 조정에서나 대관들이나 드른 명나라 장졸에게 아첨하고 시중 들기에 그들은 돌아 봄을 받지도 못하였다.
오직 경기도 도체찰사 류 성룡(柳成龍)이 몸소 강변으로 순회하면서 조선 장졸을 위로함이 있을 뿐이었다. 왕도 몸소 서울을 나와 강변 각군을 순시하였다.
경리 양 호 이하 명 나라 장졸의 폭행은 조선 편의 무기력을 볼수록 더욱 중장하여 장졸의 폭행은 조선 편의 무기력을 볼수록 더욱 중장하여 그칠 바를 몰랐다. 그들은 군자금이라 하여 날마다 왕에게 재물을 조르고. 만일 다라는 대로 한번이라도 응하지 못하면. 「너희 재물을 숨기고 군비를 아니 대이니.
황상께 아뢰어 죄를 내리게 하겠다」는 등.「너희가 그러면 우리느 나갈 테니.
그리 알라」는 등 위협을 일삼았고. 또 밑에 있는 졸병들은 민가에 무상 출입 하여 부녀를 겁간하고 재물을 늑탈하며. 만일 항거하면 때리고 차고 죽였다.
그들의 눈에는 조선의 대관이니 양반이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양반의 집에 보물이 많고 어여쁜 부녀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양반의 집같이 보이는 집을 골라서 폭행을 하였다. 그들은 일본군과 싸운다 칭하고 남방으로 내려 가는 길에 더욱 폭행이 심하였다.
류 성룡은 참다 못하여 왕에게 이러한 상소를 하였다.
『 』
그 뜻은.
「명나라 군사의 작폐를 이루 견디어 내일 수가 없소. 나라에 있는 힘을 다 털어 대이더라도 도저히 버티어 갈 수가 없소. 요새에 남 쪽으로 내려 오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연도 작폐가 무쌍하오. 관리를 때리고 하인을 결박하고 술을 내라 밥을 내라 하여 갈수록 더 심하니. 수령들은 그 행패에 못 이겨서 달아나 산 속에 숨어 버리고 하인들만 남아서 접대를 하고 있소. 참참이 있던 말은 다 타고 가서는 백에 하나도 올려 보내지를 아니하니. 민가에 마소가 자취를 끊었소. 그래도 내고 내라니 백성의 정경은 차마 볼 수 없소 달리 도리가 없으니. 접대사를 시켜서 틈을 타서 제독에게나 이런 말을 해보게 하시면. 혹시 좀 나을는지 그도 어떨지 모르니. 이런 딱한 일이 있소.」함이었다.
3
이 모양으로 명균은 갖은 행악을 다하면서 남도로 내려 갔다. 그러나 그들은 일찍 한번도 승전해 본 일은 없었다.
이 동안에 순신은 고금도(古今島)에 근거지를 잡았다. 고금도는 벽파진에서 해남 반도의 끝을 돌아 완도(莞島)를 지나 흥양(興陽) 반도를 돌아서 좌수영으로 통하는 요해에 척한 섬이다. 조약섬(助약섬라고 쓴다)과 고금도(본래는 꺾음섬) 사이에는 한강 넓이만한 곳이 있는데. 물이 깊어 아무리 큰 배라도 무시로 통행할 수 있을 뿐더러 곬이 두 섬 틈바구니로 휘임하게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밖에서 엿볼수가 없이 되었다. 신지오(新智島) 밖난바다를 통하면 몰라도. 내해를 통하려면 여기만큼 물 깊은 곳이 없었다. 그뿐더러 뒤에는 좌수영 뒤 쇠북산과 같은 높은 봉이 있어 그 봉에 오르면 사방 바다의 형편을 바라볼 편의가 있었다.
순신이 벽파진 싸움에 이긴 후에 각처로 모여든 군사가 팔천명이 넘었다.
순신은 이 군사들을 이끌고 고금도로 온 것이었다 첫째로 걱정되는 것이 군량이었다. 이에 순신은 한 계교를 내어서 충청. 전라. 경상 삼도를 통행하는 배에게 통행첩(通行帖)을 주게 하고 통행첩이 없이 다니는 배는 간세( =)로 논하여 일체 통행을 금지하였다. 배에 대소를 나누어. 대선을 쌀 삼석. 중선은 이석. 소선은 일석을 받고 통행권을 주었다. 백성들은 순신의 해군을 믿고 재물을 가지고 섬으로 피난하는 것이 성풍이 되었기 때문에 이만한 쌀을 바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만한 쌀을 바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저마다 쌀을 갖다 바치고 통행첩을 얻었다. 이렇게 하여 받은 쌀이 십일 내에 만석이 넘었다.
군량을 판비하게에 성공한 순신은 각지에 영을 내려 동과 철을 모아 들이게 하였다. 백성들은 밥주발과 숟가락을 바치는 이조차 있었다. 순신은 고금도에 조병창을 세우고 대포와 조총을 제조하게 하였다.
또 각 섬과 연해 각지에서 재목을 실어 들여 배 짓기를 시작하고 일변으로는 대를 실어 들여 화살을 제조케 하였다.
이렇게 많은 군사와 공장이 모여 들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 피난하는 사람들도 모여 들어서 고금도는 한 달이 넘지 못하여 큰 도시를 이루었다.
순신은 명나라 군사가 거처하기 위한 병영을 짓고 대장이 거처할 영문을 짓고 또 함대가 정박할 방파제를 쌓았다.
이렇게 고금도 준비가 다 되어 이 순신 혼자만이 넉넉히 적을 소탕할 능력이 생길 만한 때에 명나라 수군 제독 진 인(陳璘)이 만 명 가까운 수군을 끌고 강화도(江華島)로부터 내려 왔다. 이름은 청병이나 기실은 순신의 행동을 방해하여 적을 놓아 보내고 마침내는 순신의 행동을 방해하여 적을 놓아 보내고 마침내는 순신을 죽게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십 이월. 진인(陳璘)이 고금도를 향하여 서울을 떠날 때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청파역(靑坡繹)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이날 진 인의 부하는 전송 나온 양주 목사를 차고 때리고. 찰방(찰방) 이 상규(李尙規)를 오라로 목을매어 땅바닥에 끌어 유혈이 만연하게 하였다.
류성룡은 진인을 보고 이 찰방을 놓아 주기를 청하였으나 진인은.
『너희 조선 관원들은 이렇게자 해야 버릇을 가르친다. 너희 놈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적이 오면 너희 놈들은 도망하고 우리 대명 나라 사람들더러 죽을 땅에 나가게 하고!』
하고 도리어 호령하였다.
자리에 있던 왕은 얼굴이 주홍 같이 되었다. 그러나 감히 한 마디도 말을 못하였다. 류성룡은 같이 앉았던 재상들을 돌아 보고.
『가석 하오. 이 순신이 또 패하겠소. 무엇하러 명 나라에 청병을 한단 말요!』
『순신이 인과 한 군중에 있게 되면 반드시 수신이 하는 일은 못하게 할 것이요. 도리어 순신이 원치 아니하는 일은 시킬 것이요. 순신의 장수 권리를 침탈할 것이요. 순신의 군사를 학대할 것이요. 수신이 이것을 거스르면 노할 것이요. 쫓으면 더할 것이니 이러고야 아니 패하고 어찌하오?』
하였다. 일좌가 다 류성룡의 말에.
『참 그렀소!』
하고 옳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요놈. 네가 순신을 두호하노라고.』
하고 악물었다.
나중에는 류성룡이 이 말이 명나라를 모욕한 말이라 하여 재상들 간에(명나라 말고 조선의) 류 성룡을 모든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4
진인의 수군이 가까이(陳璘) 왔다는 소문을 듣고 순신은 이백 척 전선에 기를 꽂고 위의를 갖추어 바다에 나아가 맞았다.
진인은 열 두 척 밖에 없었다는 이순신이노 수백척 병선을 가진 것을 보고 놀라고 또 그 수백척 병선이 장수의 한 명에 법도 있게. 민활하게 진퇴하는 것을 보고 놀래었다. 도저히 자기 tm하에 있는 수군은 그러할 수가 없었다.
진인의 군사가 고금도에 하륙하매 순신이 몸소 진 인. 등자룡(登子龍)등 상관을 새로 건축한 영문으로 인도하고 또 부하를 시켜 모든 군사를 병영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진인은 모든 것이 다 신비요. 그러하건만도 하나도 미비한 것이 없음을 보고 놀래었다.
명 나라 장졸이 다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수신은 미리 준비하게 하였던 주식으로 명 나라 군사에게 크게 잔치를 베풀어 장졸이 다 취하지 아니한 이가 없었다.
『경사에 있는 것 같았다.』
고 진인을 더할 수 없이 만족하였다. 그 말 뜻은 북경을 떠난 뒤로 이때껏 한번도 이렇게 유쾌하고 풍성한 대접을 받아 본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진인은 서울서 오는 길에. 고금도에 도달하거든 무엇이든지 한 가지 책을 내어 시 순신을 혼을 내어 그기를 꺾으리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모든 절차와 설비와 대접에 하나도 책을 잡을 것이 없었다.
술을 취하돌 마신 명 나라 사졸들도 이 순신을 가리켜 과연 좋은 장수라고 칭찬하였다. 만일 조금이라도 책을 잠히었던들 이순신도 청파 이 찰방 모양으로 목에 올가미를 씌워 갖은 모욕을 당하였을 것이다. 명 나라 장졸의 눈에 왕과 대신도 없거든 하물며 일개 변방 무장이랴.
그러나 일은 그렇게 순탄하게 가지만 아니하였다. 원래 명 나라에 있을 때부터도 탐람하고 포학하기로 유명하던 진 인이다. 한 번 무슨 핑계만 잡으면 벼락이 내릴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불행이 한 일이 생겼다.
진 인이 온지 얼마 오래지 아니하여 적의 수군의 일대가 고금도에서 얼마 멀지 아니한 녹도(녹도)를 습격한다는 경보를 받았다. 순신은 왕으로부터 모든 군사는 진도독의 절제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곧 이 경보를 진 인에게 보였다. 진인은 이때야말로 명 날 수군의 위엄을 보일 첫 기회라 하여 순신에게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명 나라 전선 오십척을 명하여 이 적군을 소멸하라 하였다. 순신은.
『상국 주사가 물길을 잘 알지 못하니 소인의 전선으로 하여금 돕게 함이 어떠하오?』
하고 진인에게 청하였다.
진인은 잠깐 생각하였으니 . 조선 주사가 선봉이 되지 아니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하였다. 이는 공을 이 순신에게 빼앗길 명대로 명선 오십척은 기고 당당하게 녹도를 향하고 달리고 조선 병선은 멀리 뒤를 따랐다. 순신은 조선 병사에게 명병이 위험한 지경에 빠지기까지는 싸우지 말라고 재삼 당부하였다.
녹도를 못 미쳐서 앞선 명선은 적의 선봉을 발견하였다. 적선은 삼십척 내외였으나 배들이 모두 크고 배 위에 깃발을 달아 심히 찬란하였다.
명선에서는 먼저 방포하여 기세를 보였다. 적의 함대는 잠시 관망하는 모양 이이었으나 또 방포하고 응전하였다. 아마 그것이 이 순신의 함대가 아니요. 명 나라 함대인 것을 볼 때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격전이 한시나 계속하자 두 함대는 점점 피곤하여 거의 단병전이 연출되었다.
멀리서 바라보기에 명나라 전선 사오척에 적군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5
명선 세 척이 완전히 일본군에게 점령을 당하자 나머지 명선들은 항오를 어지럽게 하여 퇴각하였다. 일본군은 그 뒤를 따라 질풍같이 몰아 왔다.
이때에 섬 그늘에 숨어서 가만히 전황을 보고 있던 주장 안위(安衛)는 함대에 대하여 공격령을 내렸다.
안위는 벽파진에서 이 순신이 하던 병법을 본받아 자기가 몸소 선봉이 되어 대포와 화살을 빗발같이 적선을 향하여 발사하며 질렀다.
이렇게 격전한 끝에 적은 저당하지 못할 줄 알고 빼앗았던 명선 세 척을 버리고 또 배 두척을 안 위에게 빼앗기고 동을로 달아났다. 안위는 녹도 저쪽까지 이르다가 순신의 당부대로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다.
안위는 이순신에게 잡아 온 적 두 척과 그 속에 있던 즙물과적 병의 머리 사십급을 바쳤다.
진인은 명병이 패하고 조선군이 이긴 것을 보고 분이나 서명선의 주장을 앞에 꿇리고 손수 목을 베리려 하였다. 이때에 순신은 적의 머리 사십급을 진 인에게 주며.
『누가 이기었으나 다 마찬가지 아니요. 이것을 노야께 드리니 황상께 바치시오.』하였다.
진인은 순신이 제공을 자기에게 주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래서 노염을 거두고 죽이려던 주장을 살려주었다.
이날에 진인은 명균 장졸에게 대하여.
이로부터 이 통제를 『노야(노야)라고 부르고. 이 통제외 절제를 내 절제와 같이 받으라.』
하는 명을 내리고 또 순신에게 대하여서도.
『명 나라 장졸간에 만일 행패하는 자가 있거자 군령을 어기는 자가 있거든 내게 물어 볼 것 없이 먼저 형벌하고 나중 알리라.』하였다.
이때부터 진인은 무슨 일에나 반드시 이순신에게 물어 하고. 이 순신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이 노야라 하고. 승교를 타고 어디를 갈 때에도 반드시 이순신과 가지런히 가고 감히 앞서 가지 아니하였다.
이로부터 명균은 감히 조선 군사나 백성에게 대하여 행패를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명나라 장졸들은 길에서나 어디서나니 순신을 보면 반드시 진인에게 대한 것과 같은 예로 공경하였다.
진인은 이 순신에게 경복하여. 명 나라 황제에게 순신의 자재와 인물을 칭찬하여.
『( ) (통제사는 경천위지하는 재주가 있고 보천욕일한 공이 있나이다).』
하였다.
명나라 황제가 이순신에게 「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는 벼슬을 주고 인과 영기와 칼을 준 것이 다 진인의 천이었다.
명날 수군 도독이라면 어떤 의미로 보면 조선 왕보다도 낮지 아니한 지위였다.
그러므로 조선에서는 누구든지 이 순신을 죄를 줄 자가 없는 셈이었다. 그뿐 아니라 벽파진 대승전의 보고가 명 나라 조정에 가매 명 마라에서 불사첩(不死帖)이라는 단서 철권(丹書鐵券)을 순신에게 주었다.
이것을 가진 이는 당대뿐 아니라 그 자손까지도 사형을 받지 아니하는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신은 일체 명 나라 수군 도독으로 자처하거나 자칭하는 일이 없었다. 그가 조정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하나 명군에게 대하여서도 자기의 관명을 쓸 필요가 있을때에는 항상 조선 벼슬인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통제사라는 직함을 썼었다. 순신의 머리에. 유명수군 도독이란 것을 모든 조선 직함보다도 먼저 쓴 것은 제 나라보다도 명나라를 존중하는 훗 사람들(글 잘하고 지위있는 )이었고 조선의. 뭇 백성들은 순신과 함께 통제사라고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