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0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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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과연 장하오. 사또는 신인이시오.』
하고. 수조가 다 끝난 뒤에 순천 부사가 이 수신에게 인사말을 하였다.
『거북선 스무척을 지어 놓은 뒷면 왜 병이 오더라도 염려가 없겠소마는.』
하고. 수사는 배에서 복파정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고개를 돌려 거북선을 바라보며.
『그리할 동안이 있을는지 알 수 업소.』
하고. 쇠북 개목으로 멀리 동해를 바라보았다.
『웬걸 왜병이 올라구요. 김 성일(金誠一)의 말을 들으면 평수길은 큰일을 할 위인이 못되더라는 걸요.』
하고. 순천 부사 심유성이 선견지명을 자라하는 듯이 말하였다. 그것은 풍신수길(풍신수길)의 위인과 그의 뜻을 염탐하러 보냈던 사신 황 윤길(황윤길)과 김 성일(김성일)과의 복명한 말을 가리킨 것이다. 황 윤길은 말하기를.「풍신수길은 눈에 정기가 있고 비범한 인물이니 반드시 큰뜻을 품어 조선을 엄습할 근심이 있다」하고. 김 성일은 그와 반대로. 「풍신수길은 누이 쥐눈같고 외모로 보나 언행으로 보나 하잘 것 없는 위인이니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정사인 황 윤길의 말과 부사인 김 성일의 말이 이렇게 엄청나게 틀리니 조정에서는 그 어느 말을 믿을 바를 몰랐다. 그래서 동인들은 (유 성룡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김 성일의 말이 옳으니 군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서인들은 황 윤길의 말이 옳으니 그 말을 믿어 수륙의 군비를 일으키자고 하였다. 이렇게 어전 회의에서 끝날 줄 모르는 말다툼을 하였다. 대세르 보기에 어두운 왕은 처음에는 황 윤길의 말을 믿어 일본이 내습할 것을 가상하고 해군과 육군을 일으키기를 결심하였으나 다시 동인들의 말에 기울어져서 단연히 수륙 군비를 아니하기오 결정하였다. 이래서 김 성일은 심부름 잘 하였다. 하여 상을 받고. 황 윤길은 공연히 조정을 놀라게 하였다. 하여 왕에게 크게 꾸지람을 받았다. 순천 부사 심우성은 서인이었다. 그는 동인인 류 성룡의 추천을 받아서 수사가 된 이 순신의 하는 일을 고게 볼 리가 없었다.
순천 부사 심유성은 대수조를 마치고 순천으로 돌아온 길로 호군(護軍) 신입(申砬)에게 이 순신의 거북선과 및 순신이 거북선 이십척을 건조할 계획을 가졌다는 말을 보고하였다. 신 입은 이 보고를 받아 가지고 몇몇 서인의 선배들의 의향을 들은 후에 이 순신으로 하여금 큰 공을 이루게 함은 성룡 일파에 세력을 중징함이라 하여 단연히 순신의 수군 대확장. 특히 성공이미지수인 거북선 건조를 금지할 것을 왕에게 지언하였다. 이때에 서인 중에서도 윤두수(尹斗壽). 이 항복(李恒福) 같은 이들은 이 순신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억제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구태여 규각을 내어서 반대하기도 원치 아니하였다. 왕은 신입의 「청컨댄 주사를 파하고 육군에만 힘을 쓰게 하소서(請罷舟師專意陸戰)」이라는 계사를 받고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그때에 마침 왕은 이 순신의 장계를 받아 거북선의 그림과 아울러 그 시험 성적을 보고 혼자 기뻐하던 때인 까닭이다. 이렇게 좋은 거북선을 왜 없이 하라는가. 적이 바다로 오거든 어찌하여 주사를 폐하라고 하는가. 이에 대하여 왕은 의심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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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및 그 당파들이 수군을 폐하자는 논리는 이러하였다.
『지금 묘의가 군비를 파라기로 하였거늘 쓸데없이 수군을 확장해서 일본뿐 아니라 명나라에게 까지 라도 의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하나요. 또 설사 일본이 침입한다 하더라도 일본은 사방을 바다로 두른 섬나라여서 백성이 모두 물에 일이므로 도저히 수전을 일병을 막기가 어려우니 차라리 육지에 끌어 올려서 대번에 씨도 없이 부서 버리는 것에 상책이라는 것이 둘이니. 이 두 가지 이유로 수군을 확장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있던 것도 파해 버리고 오직 육전에만 전력을 하자.』
는 것이었다 여기는 동인들을 . 빈정대는 뜻이 많이 품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왕은 어느 말을 좇을 바를 몰랐다. 그는 심히 결단성이 없고 이 말에는 이리로 저리로 솔깃하는 성격을 가진 이었었다. 신입의 이 계사는 조정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서인가 동인과는 국가라는 견지도 다 버리고 오직 자기네 당파라는 견지에서 서로 물고 뜯었다. 이 모양을 본 류 성룡은 거북선의 성공으로 해서 조정에 일어난 풍파를 자세하게 이 순신에게 편지하였다. 그리고 그 끝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나라를 생각함보다 제 몸을 생각함이 많고 공번된 마음보다 남의 잘함을 시기함이 많으니 그대도 눈에 띄게 수군을 늘이어 너무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말라.」하는 구절을 썼었다.
이 순신은 류 성룡의 편지를 받아 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때에는 둘째 거북선을 짓기 시작한 때였다 순신은 곧 분향하고 엎드려 장계를 지었다. 그는 근래에 동해 일본 쪽으로부터 나뭇조각이 많이 떠온다는 것과 일본에 표류하였던 어민의 말을 들으면. 일본에서는 미구에 조선과 명 나라를 차기 위하여 삼십만 대병을 발한다는 소문이 있고 또 포구마다 병선을 짓는다는 말을 자세히. 정성된 말을 쓴 후에.
『바다로 오는 도둑을 막는 데는 수군 밖에 없사오니 수군이나 육군을 어느 것이나 하나를 폐할 수 없나이다( . . . .)』라 하여. 수군을 페함은 운명을 위태케 함이라고 하였다. 왕은 마침 신입의 계청대로 육군의 전력하고 수군은 파한다. ( )는 교서를 이 수신에게 내리려고 승지에게 붓을 들렸던 차에 이 장계를 받았다. 왕은 몸소 그 장계를 읽고 무릎을 쳐서 순신의 글 잘함을 칭찬한 뒤에 순군 혁파를 주장하는 제신들에게 그 장계를 돌려 보이고 더 다른 의견을 묻지 아니하고 순신의 장계에 「옳다(光).」신입의 장계에 「옳지 아니하다(不光).」는 비지를 내렸다.
이 모양으로 신입의 수군 혁파안은 이순신의 수륙 병존안에게 지게 되었다.
「순신의 글씨 때문에 왕의 뜻이 기울어졌다.」하는 말을 서인들이 돌렸다.
순신의 의견이 옳기 때문이라고 하기 싫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글을 잘해서」라는 말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 「글씨를 써서」하는 것으로 순신의 말이 선 이유를 삼은 것이다.
이것이 무론 이 순신의 명예는 아니었다. 도리어 전보다도 더 심각하게 순신은 서울에서 세도 잡은 무리들의 미움을 받을 장본이 되었다 더욱이 당당한 신 입이 일개 무명한 이 순신에게 졌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욕이었다. 그는 한번 보자고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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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 순신의 장계가 효과를 내어서 수군 혁파만은 면하게 되엇으나.
한편으로 류 성룡 등 동인들의 비전론에 화를 받고 다른 편은 서인들의 육군주의의 화를 받아서 거북선 이십척 건조. 기타 수군 대확장안은 뜻대를 되지를 아니하였다.
이렇게 조선 졍정부에서는 군비를 할까 말까. 수군을 둘까말까 하고 갈팡질팡하며 당파 싸움만 일삼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대륙 침입의 계획을 착착 실행하게 되었다. 대마도주 종 의지는 원래 전쟁이 있기를 원치 아니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조신(調信)과 중 현소(玄蘇)를 서울에 보내어 수길(秀吉)이 조선에 길을 빌려 명 나라에 쳐들어 가려 한다는 계획과. 불원에 반드시 일본의 대군이 조선 지경을 범할 터이니 미리 명나라에 이뜻을 통하여 외교적으로 일을 무사히 해격 하도록 하라고 진언하였다. 현소가 김 성일을 보고 귓속으로 한 말이 이러하다.
『명나라가 으래 일본과 끊어져서 조공을 통치 못하므로 수길이 이로써 마음에 분하고 부끄러움을 품어 싸움을 일으키려고 하니 조선이 만일 앞서서 이 뜻을 명 나라에 주문하여 일본으로 하여금 조공의 길을 통하게 하면 반드시 무사할 것이요. 일본 백성도 또한 싸움의 괴로움을 면할 것이요.』
그러나 김 성일은 이 말을 조정에 주문하지 아니하였다. 그것이 자기가 전에 장담한 말 수길은 싸울 뜻이 없다는 것과 어그러지기 때문이었다. 현소는 다시 오 억령(吳億齡)에게. 명년에는 일본이 대군을 끌고 조선에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칠 것을 말하매 오옥령은 크게 놀래어 조정에 주달하였다. 그러나 왕은 비전혼자들의 말을 들어 오 억령이 부질없는 소리를 한다 하여 선위사(宣慰使)를 파직하였다. 그리고 대마도주의 사린 조신에게는 가선 대부를 주고 잘 대접하여 돌려 보낼 뿐이요. 일본의 침입에 대한 아무러한 준비도 할 생각을 아니하였다.
이러한 중에 있어서 오직 전라 좌수사 이순신 한 삼이 모든 핍박을 다 물리치고 일변 병선을 중수하고 거북선을 지으며 일변 관하 각진의 군사를 조선을 중수하고 거북선을 지으며 일변 관하 각진의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모으며 각처에서 이름 있는 대장장이들을 모집하여 화포.창. 칼. 갈퀴. 낫.
소금가마 등속을 만들었다. 이리하여서 전라도 경상도에 목수 대장장이며 활 쏘고 칼 쓰는 호협한 무리들이 좌수영으로 많이 모여 들었다. 굴강을 깊이 파고 방파제를 넓게 높이 쌓고 앞바다 새좁은 물목에는 쇠사슬을 물속에 늘였다.
이것은 적선이 침입하려 할 때에는 육지에서 쇠사슬을 감아 올려서 통행을 막고 또 들물이나 썰물에 물결이 세일 때를 이용하여서는 대어드는 적선을 넘어 뜨리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후와 순천 부사도 갈리고 좌수사의 절제를 받는 수령. 첨사. 만호.
군관중에는 이 순신의 충성되고 조금도 사곡함이 없는 인격에 감화를 받는 자도 적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군졸들은 새 수가 도임한 지 일년이다. 못하여 새 수사를 아버지같이 사모하게 되었다. 새 수사는 엄하기 짝이 없으나. 공평하기도 그러하고. 사졸이 힘드는 일을 할 때에는 자기. 먼저 힘드는 일을 하였다.
새 수가 이 순신은 술을 좋아하나 밤이 아니면 먹지 아니하고. 풍류를 좋아하나 국가에 경절이 아니면 기악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였다.
이 순신이 수사로 온지 일년에 전라 좌도의 수군은 병선이나 장교나 군졸이나 전혀 새 것이 되고 백성들의 풍기까지도 일신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