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17 (11~15)

11

이튿날인 구월 십 오일에 순신은 함대을 우수영 앞으로 옮겼다. 그것은 적은 병력을 가지고 울뚝목을 둥지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는 까닭으로였다.
우수영 앞으로 함대와 민선을 옮긴 날밤. 가을달이 낮과 같이 밝은데 순신은 제장을 장선에 불러 약속하였다.
『병법에 말하기를. (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라 하였고. 또 ( ..) (한 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가 있다. )하 하였으니. 이것이 지금 우리를 이름이라. 너희제장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영을 어기지 말라.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새생을 같이하기를 맹세하였으니 나라일이 이같거늘 어찌 한번 죽기를 아끼랴. 나라와 의리를 위하여 죽으면 죽어도 영광이 나이냐.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는 자면 군률로 시행하리라.』
하였다. 순신의 약속을 들은 제장은 일제히 군복 왼편 어깨를 벗고 칼을 들어 영대로 할 것을 맹세하였다. 순신은 다시.
『살 뜻을 두지 말고 오직 죽을 뜻을 두라. 나라와 의리를 위하여 죽기로써 싸우라. 만일 조금이라도 군령에 어기는 자면 군법 시행하리라.』
하고 약속하매. 제장은 또 칼을 들어 맹세하였다. 이러하기를 세 번 한 뒤에 순신은.
『적선은 반드시 오늘 밤 달이 진 때에 그늘에 숨어 습격할 것이요. 지금까지 여러 번 온 것은 정탐하러 온 것이어니와. 이번에는 대함대가 올 것이요. 또 적장 마다시(馬多時)는 수전을 잘하기로 이름이 있다. 하니 큰 싸움이 있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이번에 적군을 물리치지 못하는 날이면 적군은 곧 경강으로 올라 가서 한강 이북이 모두 적의 손에 들것이니. 이번 한 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모두 적의 손에 들 것이니. 이번 한 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달린 것이요. 우리는 이러할 때를 당하여 죽기로써 나라를 안보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무거운 짐을 진 것이요. 비록 적선이 천척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죽기로써 막으면 막을 도리가 있으니. 제장을 일심하여 명령을 복종하시오.』
이날 밤에 순신은 전함대의 장졸에게 밥과 고기를 많이 먹이고 영이 내릴 때까지 잘 자라고 한 뒤에 순신은 피난민선들에게 영을 내려. 더러는 활 서너 바탕 밖에 더러는 너더댓 바탕 밖에 안익진(기러기 날개)형으로 벌려 있기를 명하여 의병(의병)을 삼고 방포를 군호로 하여 진퇴하기를 명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선상에 나와 꿇어 앉아 하늘에 빌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말고 보름달은 낮같이 밝은데. 기러기 떼가 소리를 지르며 떠오는 것이 보였다.
『 』
(물 나라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추의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떴구나 근심만하 잠 못 이루는 밤에 남은 달이 활과 칼에 비치었도다.
하는 연전 한산도(閑山島)에서 지은 시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오백척 적선과 십 이척 내 주사. 이것으로 싸울 순신은 칼을 어루만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라고 쓴 칼과 「.」라고 쓴 두 자루 칼을 번갈아 어루만지고 순신은 기러기 소리를 세고 있었다.

12

구월 십 육일. 동이 트려 할 때에 노적봉에서 망을 보던 별망군이 적선이 보인다는 군호를 하였다. 그 군호는 횃불이었다.
아직도 새벽 어두운 빛이 남아 있는 때에 세 자루 횃불이 번쩍하는 것은 심히 비장한 일이었다. 이윽고 별 망군의 배가 순신이 탄 기함에 왔다.
『사또. 적선이 감보섬 앞에 다다랐소!』
하는 별망군의 어성이 숨이 찬 듯하였다.
『몇 척이 되드냐?』
하는 순신의 음성은 침착하였다.
『몇 척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소. 바다를 덮은 것같소.』할 뿐이었다.
순신은 기를 달아 전함대의 출동을 명하였다. 십 삼척(한 척은 우수사의 배다)의 함대가 울뚝목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적선은 아직도 미는 물에 순풍까지 맞아서 쏜살 같이 울뚝목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적선은 삼백 삼십여 척이었다.
적선은 이편 함대를 보곡 진을 벌려 에워싸려는 모양을 보였다. 이것을 보고 순신의 뒤에 달려 오던 배들은 마치 물과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나씩 둘씩 뒤로 물러나갔다. 그들은 적선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바라 몇 시간 전에 맹세한 것도 잊어버리고 회피하려는 샌을 가진 것이었다.
그중에도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의 배는 마치 물러가는 배를 막기나 하려는 듯이 맨 뒤에 까맣게 떨어져서 뱃머리만 기함을 향하고 슬슬 돌았다. 아직 차마 달아나 버리지는 못한 것이었다.
순신의 배에 있는 장졸들도 배젓기를 쉬일까 말까 하는 태도였다. 순신은 칼을 들어 적진을 향하여 배를 젓기를 독려하였다.
순신은 울뚝목의 우수영 쪽 입의 한복판을 막고 구름같은 적선에 향하여 먼저 대포를 놓아 싸움을 돋구었다. 그리고 군관들로 하여금 활에 살을 먹여 들고 적선이 활한 바탕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적선은 점점 가까이 왔다. 이편의 포성에 응하여 적선에서는 수십 방의 포성을 내어 엄포하였다. 그 소리가 고요하던 산과 바다를 뒤집는 듯하였다.
이 엄포에 기함대에 있던 장졸들은 떨고 노를 젓던 팔이 굳어졌다. 순신은.
『적선이 비록 천척이 오더라도 내 백 하나를 당치 못하리라.』
하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적선을 향하여 배를 젓게 하였다.
순신은 손수 활을 들어 맨 앞에 선. 뱃머리에 선 갑옷 입고 투구 쓴 적장을 향하여 활을 당기었다. 푸르륵 소리가 나는 듯 마는 듯. 그 장수는 두 팔을 벌리고 물에 떨어졌다.
이것을 보고 군관들은 일제히 활을 쏘았다. 뱃머리에 섰던 적의 장졸이 퍼덕퍼덕 쓰러졌다.
순신은 일변 활을 쏘며 일변 지자(地字). 현자(玄字)각양 총통을 놓게 하니.
순신의 기함 하나에서 발하는 총통 소리는 우레와 같고 검은 연기는 적의 눈에서 순신의 배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이 연기는 나는 화약은 순신이 발명한 것이었다. 때마침 들물이 거의 끝나고 참이 되어 불어오던 동남풍도 잤다. 만번 바다를 가리운 검은 연기는 아침의 무거운 공포에 눌려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오직 수없는 화살과 화전만이 검은 구름 속으로서 수없이 적선을 향하여 날았다.
적의 함대는 놀랐다. 오직배 한 척이 당돌이 앞을 막고 총과 활을 빗발같이 쏟아 붓는 것에 의심이 들어 가 이편에 무슨 계교가 있는지 얼른 판단이 아니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에 적선은 다섯 겹인지 여섯 겹인지 모르게 반달 모양으로 순신의 배를 에워 싸고 오직 뒤만 텄을 뿐이었다.
순신은 황급해서 낯빛이 파랗게 질린 장졸을 돌아보며 또 한번.
적선이 천척이라도 『우리 배를 어찌하지 못한다! 조금도 동심 말고 힘껏 쏘아라!』
하고. 배에는 초요기(招搖旗)를. 높이 달아 뒤에 떨어진 배들을 부르기를 명하였다.

13

이 보다 먼저 순신은 중군령(中軍令) 기를 달아서 중군을 불렀으나 중군 미조항 첨사(彌助項僉使) 김응함(金應함) 은 이 부름에 곧 응할 용기가 없어서 다만 오락가락하고만 있었다.
순신은 뱃머리를 돌려서 중군을 베어서 효시하여 군령을 세우려 하였으나.
만일 순신이 뱃머리를 뒤로 돌리는 것을 보면.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배들은 더구나 겁이나서 달아날 것을 근심하여 그도 못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초요기를 단 것이었다.
이때에 적선은 다섯 겹 여섯 겹으로 순신의 배 한 척을 에워 싸기 시작하여 빗발같이 쏟아지는 적의 탄환과 화살이 배의 주위에 떨어지고. 더러는 순신이 선 곳에서 한두걸으 밖에 와 박혔다. 적은 분명히 순신의 배를 꼭 에워싸고 순신의 배에 기어 올라 단병전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때에 오직 적을 두렵게 하는 것은 순신의 활이었다. 순신의 활이 한번 울 때마다 적병 하나가 쓰러졌다. 수백척 적선을 지척에 두고 순신 혼자서 배 한척을 버티고선 것만도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거든. 하물며 백발백중하는 그의 활의 힘은 적에게 신비한 두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적은 이 혼자 버티고 섰는 이가 이순신인 줄을 안다. 그는 당포.
당황포. 한산도 등 싸움의 원수다. 「아무리 해서라도 이 순신에게 원수를 갚아라.」하는 것은 이번 다시 출병할 때에 풍신수길이 제장에게 엄명한 바다.
「일본 군사는 반드시 원수를 갚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하는 것이 그 말 뒤를 이은 말이었다. 더구나 이 함대의 총사령관인 마다시(馬多時)는 안골포 싸움에 순신에게 대패를 당한 사람이다. 목숨을 열 조각에 내더라도 이 순신을 잡아 나라의 원수와 자기 개인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마다시는 뱃머리에 선 것이 이 순신인 것을 알아 보았다 그는 부하에게 명하여. 결사적으로 이 순신의 배를 점령하기를 명한 것이었다. 실로 순신의 배의 운명은 풍전 등화와 같았다.
순신은 연방 연기 나는 대포를 놓아 자기 배를 적의 눈에서 감추고는 그동안에 화살을 준비하고 배 위치를 좀 옮기고 그러다가 연기가 걷히면 쏘았다.
순신은 이번 싸움에 살아 날 것을 기약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적군이 울뚝목을 지나는 날에는 전라. 충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의 운명이 경각에 달리고. 따라서 전 조선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줄을 알므로 그는 이곳에서 적을 막다가 살이 다하고 힘이 다하면 몸으로라도 막다가 막다가 몸도 다한 뒤에야 할 말 결심이었다. 조정에서 배설(배설)의 장계를 보고 순신에게 바다를 버리고 육전을 명하는 교지를 내렸을 때에 순신은.
『 』
이것을 역하면. 「임진으로부터 오륙년 간 적이 감히 바로 전라. 충청을 찌르지 못함은 주사 그 길을 막음이니이다. 이제 신의 전선이 오히려 열 둘이 있사오매 죽을 힘을 내어 싸워 막을 진댄 아직도 가망이 있아옵거니와. 이제 만일 주가를 전페하오면 이는 적이 다행으로 여길 배요. 충청도를 돌아 한강에 갈 것이오니. 이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배로소이다. 전선이 비록 적사오나 소신만 죽지아니할진대. 적이 감히 우리를 넘기지 못하리로소이다.」 이렇게 장계하였다. 이 장계를 올린 것이 바로 수일 전이니 배설이 달아난 것이 이 장계초를 본 까닭이었다. 이 모양으로 순신은 죽기로써 스스로 결심한 것이었다. 초요기를 보고 중군장 김응함(金應함)은 점점 순신의 배로 가까이 왔다. 그러나 그는 혼이 몸에 붙지 아니하여 마음을 진정치 못하였다.
이때에 거제 현령(巨濟縣令) 안 위(安위)의 배가 먼저 순신의 배에 와 달렸다.
순신은 일변활을 쏘면서.
『안 위야! 안 위너는 군법에 죽으려느냐. 너는 군법에 죽으려느냐. 네가 도망하면 어디 가서 산단 말이냐?』
하고 안위를 노려보았다.
안위는 황망히 적선 속으로 달려들었다. 이때에 또 중군장 김응함의 배가 순신의 배 곁에 와서 영을 기다렸다. 순신은 여전히 활 시위에 살을 메기며.
『응함아. 너는 중군장이 되었거든 멀리 피하여서 대장을 돕지 아니하니. 네 죄를 면할까.』
하고 칼을 빼어 응함을 베이려다가.
『지금 적세가 급하니.네 공을 세워서 죄를 속하여라.』
김응함은 황송하여 배를 몰아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14

안 위의 배와 김응함의(安衛) 배는 활과 총을 어지러이 쏘며 철통같이 에워싼 적진 속으로 달려들었다. 죽을 결심을 한 그들은 결코 겁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신이 혼자서 싸우는 양을 볼 때에 미안한 감정과 나아가 같이 죽을 기운을 낸 것이었다.
인제는 세 배에서 어지러이 쏘는 화살에 적의 사상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적의 살기는 더욱 등등하였다.
이편의 맹렬한 공격에 약간 뒤로 물러가는 듯한 적의 함대로서는 그중에 크고 삼층루 있고 오색기 단배 하난가 앞을 서고 다른 두 배가 뒤를 따라 안 위의 배로 달려들어 안 위의 배를 꼭 둘러싸고 적병들이 안 위의 배에 다투어 올랐다.
안위는 활을 던지고 칼로 싸우기를 명하였다. 안위와 그 부하 장졸은 뱃전을 잡고 기어 오르는 적병을 칼과 도끼와 몽둥이로 함부로 패었다. 적은 손을 찍히는 이. 팔을 찍히는 이. 머리가 깨어지는 이. 어깨가 찍히는 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 위의 부하도 하나 둘 죽어 거의 다하게 되려 하였다.
순신은 배를 달려 안 위의 배를 구하러 갔다. 순신은 몸소맷버리에 서서 쉴 새 없이 활을 당기었다. 이 광경을 보고 김응함의 배도 다른 적선을 버리고 안위의 배를 에워싼 세적선으로 달려들었다.
칼 빛은 번개와 같고 화살은 소나기 같았다. 양군이 어울려져 싸우는 양을 전에 보지 못하던 참담한 장면이었다.
순신은 적의 세 배 중에 가장 큰 배가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적의 기함인 것을 짐작하고. 그 배에 나와 선 장수로 보이는 이만을 골라서 쏘았다. 순신의 살은 다른 군관들의 살보다 갑절이나 멀리 가고 갑절이나 빠르고 또 한 대도 헛맞힘이 없었다. 순신의 살 한 대가 전통에서 없어지면 적병하나가 쓰러졌다.
마침내 적의 기함인 듯한 배에 탄 군관들이 거의 다 죽고. 배가 뒤로 물러갈 모양을 보일 때에 어떤 갑옷입고 투구 쓴 장수가 칼을 빼어 들고 뱃머리에 나서서 부하를 지휘하였다. 뒤로 물러나려 하던 배는 다시 노를 저어 앞으로 달렸다.
순신은 전통에 마지막 남은 화살 한 대를 시위에 메겨 그 장수를 향하여 쏘았다. 그 살은 바로 그 장수의 가슴을 뚫었다. 그 장수는 무에라고 큰 소리 한 마디를 지르고 거꾸로 바다에 떨어졌다. 바다에는 시체가 수없이 떠들고 세체 주위로는 붉은 피가 여러 가지 모양을 그렸다. 물이 찰 때가 되었으나. 아직도 돌아서기를 시작하지 아니하매 시체들은 모두 순신의 배 있는 곳을 향하고 가만가만히 흘렀다.
적장이순신의 살에 맞아 떨어지매. 안위와 김응함의 군사들은 적선에 뛰어 올라 적선 세척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순신의 곁에 섰던 포로 준사(俊沙)라는 이가 배 밑에 흘러 온 비단옷 입은 세체를 가리키며.
『사또. 사또. 이것이 분명히 안골포(安骨浦)에서 싸우던 적장마다 시(馬多時)요.』하였다.
순신은 김석손(金石孫)을 시켜 갈고리로 그 시체를 끌어 올렸다. 준사는 펄펄 뛰며.
『분명 마다시오. 소인이 그 배에 있었는데 모르겠소? 분명마다시오.』 하였다.
순신은 명하여 마다시의 머리를 베어 깃대에 높이 달았다. 그리고 총공격령을 내었다. 이때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수가 썰물로 돌아 선 것이었다.
이편이 이기는 것을 보고야. 녹도 만호 송 여종(宋汝悰). 평산포 대장(平山浦代將) 정 응두(鄭應斗)의 배가 따라 오고 멀리 뒤떨어져 있던 배들도 왔다.

15

대장 마다시와 그 장선을 잃은 적군은 기운이 꺽이어진이 어지러워졌다.
순신의 총공격령을 받은 함대는 모두 기운이 백배하여 적진으로 돌입하였따.
지자(地字). 현자(玄字)총통과 활을 소나기같이 쏘며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내달으니 마치 강산이 흔들리는 듯하였다.
마침 물은 썰물이 되어 이편은 물을 따라 싸우고 저편은 물을 거슬러 싸우게 되어. 이편 배들은 살같이 적선을 향하고 달려 가지마는 저편 배는 아무리 힘껏 저어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원체 이편 배는 저편 배보다 튼튼하기 때문에 뱃머리로 저편 배의 허리를 냅다 받으면 저편 배는 허리가 부서졌다.
이 모양으로 한 시각 못하여 적선 삼십척을 깨뜨리고 수없는 사상자를 내었다.
적선은 갈팡질팡하다가 물결을 따라서 달아나고 말았다. 순신은 추격긍ㄹ 명하여 벽파정 저쪽까지 따라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쇠를 울려 추격 중지를 명하였다.
순신의 함대의 뒤를 따라 삼백여 척의 피난선들도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따라 나와서 벽파정 앞바다에는 구름 같은 큰 함대를 이루었다. 이 순신의 함대는 열 두 척 밖에 없는 줄로 알았던 적병은 이렇게 큰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래었다. 순신은 삼백여 척의 배를 명하여 모두 돛을 달게 하고 일렬 횡대로 진을 이루어 가지고 멀리 쫓기는 적선을 따르는 모양을 보이며 물이 돌아 서기를 기다렸다.
들물이 되어 순신의 함대가 다시 울뚝목을 지나 우수영을 돌아 올 때에는 벌써 석양이 서산에 걸린 때였다. 바다 좌우쪽에는 종일 싸움을 보며 가슴을 조리던 백성들이 순신의 배를 보고 팔을 내어 두르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이는 너무도 감격하여 발을 구르고 통곡하고. 어떤 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하루 싸움에 피곤한 군사들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북을 치며 춤을 추었다.
함대가 우수영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달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수영에 남아 있던 백성들과 각지로서 싸움 이긴 소문을 듣고 모여 온 백성들은 순신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날뛰었다. 더러는 쌀자루를 메고 오고.
더러는 마른 고기와 장과 나무를 지로 오고. 더러는 돼지와 송아지와 술을 지고 왔다.
마치 사람과 강산이 다시 살아 난 듯하였다. 달조차도 어제보다 더 밝은 빛으로 하늘을 달리는 듯하였다.
순신은 소와 돼지를 잡아 군사들을 먹이고 술을 한 사람에게 석 잔을 더 주지 말기를 명하였다.
순신은 저녁밥이 끝난 뒤에 제장을 장선에 모으고 오늘 싸움에 힘쓴 공로를 칭찬하고. 처음에 피신한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제장은 찼던 칼을 떼어 앞에 놓고 순신의 앞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더구나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金應함)은.
『살아서 사또께 뵈올 면목이 없소.』
하고 슬피 울었다. 순신은.
『이 앞에 또 여러 번 싸움이 있을 것이니. 이번 싸움을 거울 삼아 다 죽기로써 마음을 삼으라.』하고 한번 더.
『..』
를 말하였다. 순신은.
『이렇게 하면 이기리라. 이렇게 하면 지리라.』
하고. 어젯밤 꿈에 고하던 어떤 이상한 사람을 생각하고 밤이 깊오록 뱃머리에 서 있었다. 달은 순신의 빛나는 눈과 옆에 찬 칼을 비추었다. 군사들은 곤하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