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09 (01~05)

1

순신이 제일차 출전이 끝난 뒤에 좌수영에 돌아와 일변 군사를 쉬이고 일변 전선과 병기를 수리하는 동안에 경상도 우수사 원균으로부터는 연해 적선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사는 정보가 오고. 그때마다 주사를 거느리고 도 달라는 청병장이 왔다 그러나 순신은. 원균의 말을 다는 신용하지 아니하였다. 그가 요전번에 같이 싸우러 다니는 동안에 원균의 하는 말에 거지살이 많고 또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해 놓고도 그 약속을 지킨 일이 없음을 본 까닭이다.
만일 원균의 헛된 정보를 다 믿고 군사들을 동하였다가 말한 곳에 적선이 없을 양이면. 장졸에게 대하여 대장의 위신이 떨어짐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또. 적선은 곤양에 왔다 하오. 어서 행선하시오.』
하고. 정운이나 어영담 같은 충용한 부하들이 순신을 재촉할 때에는 순신은.
『군사를 가볍게 동하면 장졸에게 신을 잃는 것이요.』
하고 탐보선을 보내어 알아 보라만 하였다. 그러나 옥포의 패전을 분하게 여겨 부산에 있는 적의 수군 본영에서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이 원수를 갚고. 또 경상.
전라 양도의 제해권(바다를 제절 밑에 넣는 힘)을 얻으려 하였다. 원래 풍신수기릐 계획은 소서행장(小西行長). 가동 청정(加謄淸正) 등으로 하여금 육로로 경성. 평양. 함경도를 공략하게 하고등당고호(藤當高虎). 구귀 가륭(九鬼嘉隆).
협판안치(脇坂安治) 등으로 하여금 수군 일만여 명과 전선 이백여 척을 거느리고 수로로 경상. 전라. 충청 . 황해. 평안 제도를 공략하여 수륙 병진으로 조선을 석권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풍신수길의 제일차 수륙군 계획이었고 또 끝까지 계속된 계획이었다.
그래서 육군은 수군의 예상 이상으로 무인지경같이 경성. 평양을 점령하였으나. 수군은 선봉이 옥포에서 부서지니 수군의 계획이 이에 틀어진 것이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부산에 총본영을 둔 일본의 수군은 아무리 해서라도 조선 수군을 이겨 옥포의 패전의 수치를 씻고 조선의 제해권을 가지려고 애를 쓴 것은 자연한 일이었다.
순신도 여러 번 수륙으로 적군의 정세를 염탐한 결과로 대강 이러한 서정을 알았다. 그러나 순신은 이번에 오는 싸움은 결코 요전번 싸움과 같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짐작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요전번에 깨뜨린 적의 함대는 선봉대일 것이요. 이번에 오는 것이 필시 주력 함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옥포 싸움에 쉽게 이긴 장졸들은 벌써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적선을 만나기만 하면 곧 때려 부수고 그 속에 있는 물건을 나누어 가질 것을 상상하여 어서 싸우기만 재촉하나 순신이 자중하여 좀체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병선과 병기와 군사의 준비를 마치 태평 시대같이 늘어지게 하려는 것이 이 때문이었다. 준비의 힘! 이것을 아는 것은 오직 이 순신 한 사람뿐인 것같았다. 적선의 작은 부대가 경상도 연해로 돌아 다니면서 여염에 불을 놓고 노략질을 하였다. 이것은 노략 그 물건이 목적인 것보다도. 조선의 수군에게 싸움을 돋구는 것인가 싶었다.
유월 『삼일 낮물을 기약하여 본영 앞바다로 모이라!』
하고. 순신이 관내 각 읍. 각 진에 발령한 것이 오월 이십 오일. 오월 이십 칠일에 경상 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적선 십여 척이 사천(泗川). 곤양(昆陽) 등지에 출몰하여 여염을 불사르고 민가를 노략하여 작폐 무쌍이나 원 균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곧 출병하여 달라는 관문이 왔다.

2

『이봐라. 우도 주사가 아직 안 보이느냐?』
하고. 전선에 앉은 순신은 탐보군에게 물었다.
『아직 오는 배가 안 보이오.』
하는 것은 타보군의 대답이었다. 순신이 전라 우사사 이억기(李億祺)에게 속히 좌수영에서 만나자고 기별한 지가 벌써 닷새가 되는 까닭이었다. 오월 이십 구일! 적선이 사천. 곤양 등지에 횡항하므로 경상 우수사 원균이 적을 피하여 배를 남해 노량(南海露粱)에 옮겼다는 경보가 원균에게서 왔다. 남해 노량진이면 경상 우도와 전라 좌도의 바로 접경이다. 이제는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행선하라!』
하고. 순신은 전함대에 영을 내렸다. 일시에 돛이 달리고 노가 움직였다. 전라 우도 주사가 오기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순신이 직접 거느린 전선 이십삼척만을 거느리고 노량진을 향하여 떠났다.
순신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원균은 하동(河東)편 노량진 산 그늘 속에 숨었다가 배 세 척을 끌고 나와 순신을 맞았다.
『적선이 어디 있소?』
하는 순신의 물음에 원균은 꼭 어디 있다고는 대답을 못하고 다만 손가락으로 노량 동쪽을 가리켰다. 함대가 노량진 목을 통과하매. 곤양(昆陽) 쪽으로부터 사천(泗川)을 향하고 가는 듯한 적선 중선 한 척을 발견하였다. 그 중선은 바다 가운데를 나서는 것을 무서워하는 듯이 바닷가로 붙어서 살살 피하였다.
『적선이야!』
하는 소리가 장졸들의 입에서 나왔다.
『따라 잡아라!』
하는 순신의 명령이 내렸다. 전부장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 남해 현령 기 효근(奇孝謹) 등이 북을 울리고 기를 두르며 노를 저어 따라 가고 다른 배들은 중류에 떠서 사천을 향하였다. 적선은 마침내 붙잡히게 되어 물에 배를 닿이고 군사들은 내려서 달아나고 배만 내어 버렸다. 이 배를 깨뜨려 불살랐다.
『이번에도 일수가 좋다.』
하고. 장졸들이 기뻐 뛰었다. 순신은 적병이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음을 말하고 교만 하지 말기를 경계하였다.
창선도(昌善島). 사량도(蛇粱島) 등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을 띄워 놓은 남해.
고성 간의 바다 사량 바다는 호수와 같이 아름답고 고요하다. 잘 맑은 여름날의 고요한 바다로 소리 없이 미끌어져 가는 배들 그것이 싸움외 살기를 머금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적병이야!』
하고. 척후선에서 누런 기를 둘렀다. 과연 바라보니. 사천 선창에 굼틀굼틀 철판이나 달아난 험한 산 밑으로 사백여 명이나 될 듯한 적병이 기다랗게 장사진(긴 뱀과 같은 진형)을 벌이고 진에는 붉은 기와 흰 기를 많이 꽂이 현란하기 그지없고. 진 안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따로 장막을 치고 그리고 군사들이 분주히 왕래하는 것을 보니 장수의 지휘를 듣는 듯하며. 선창에는 누각처럼 생긴 배 십 이척이 바닷가에 매여 있고 진 친 데 있는 장수 같은 자가 칼을 내둘려 교만한 양을 보인다.
이편 장졸이 분개하여 활을 쏘나 살이 저편까지 및 지를 못하고 또 달려 들어가 불지르려 하나 주수가 벌써 썰물이 되어 판옥선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뱃머리를 돌려라.』
하고. 순신이 영을 내렸다. 순신의 함대는 바다를 향하고 일제히 달아났다.

3

『적병을 살려 두고 어디로 가오?』
하고. 군관 송한련(宋漢蓮)이순신에게 물었다. 녹도 만호 정운. 과양 현감 어영담. 군관 송희립 같은 이들도 싸우지도 아니하고 퇴군하는 것을 자못 불평하게 생각하였다. 경상 우수자원균 같은 이는 이것은 순신이 겁이 난 때문이라도 비웃었다.
그러나 순신은 무슨 결심이 있는 듯이 제장의 불평도들은 체 아니하고 배를 끐으로 몰았다. 대개 육지 가까운 데서 싸우면. 적병이 물으로 올라서 도망할 근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순신의 주사가 사천 육지의 진중에 있던 적병이백여 명이 진으로부터 내려와 반은 배에 오르고 반은 육지에 모여서서 방포하고 날뛰며 싸우기를 청할뿐더러 마치 조선 병선이 물러 가는 것을 조롱하는 듯한 빛을 보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순신의 부하 제장은 모두 팔을 뽐내어 적병과 한번 싸우기를 청하였다 제장이 스스로 . 싸울 마음이 나게 하는 것도 순신의 희망하는 바였다.
순신이 보니. 장졸이 싸울 뜻이 강하고 또 적병이 심히 교만한 것이 모두 순신이 바라고 기다리던 바와 합하였다. 적이 교만하고 내가 싸울 뜻이 있는 것은 반드시 이기는 비결이다. 게다가 저녁 밀물이 들기 시작하니. 징히 때를 만난 셈이었다.
『배를 돌렸라!』
하고. 순신의 명령이 또 한번 내렸다. 이십 삼척의 병선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돛을 돌리고 키를 돌려 다시 사천 포구를 향하였다. 순신은 우선 거북선을 놓아 적선 중으로 돌진케 하여 천. 지. 현. 황. 각양 총통을 놓게 하였다.
적병들은 괴물과 같은 거북선이 입으로 불과 연기를 토하며. 전후 좌우로 갹양 총포를 놓으며. 횡행하는 것을 보고 산상에 있는 군사. 해안에 있는 군사가. 모두 경동하여 거북선을 향하고 철환을 빗발같이 내렸다.
적병들이 거북선 하나에 공격을 집하고 있는 틈에 다른 병선들은 점점 가까이 들어 왔다.
『사또. 저 배에는 조선 사람이 있소.』
하고. 어떤 군관이순신을 보고 적선 하나를 가리켰다. 과연 그 배에는 조선 옷을 입고 조선 상투를 짠 사람이 간단이 섞이러서 조선 편을 향하여 총을 놓고 있었다. 그것을 볼 때에 순신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끓음을 깨달았다.
『이놈들! 조선의 우로를 먹은 놈들이! 네 저놈들부터 먼저 잡아라!』
하고. 순신은 소리쳤다. 그 소리가 우레와 같고 보통 사람의 음성 같지 아니하였다. 순신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몸소 조선 사람 있는 적선을 향하였다.
『빨리 저어라!』
순신은 몸소 앞장을 서서 싸움을 보고 제장들도 그 뒤를 따라. 순신이 향하는 배를 습격하여 순신을 도왔다.
철환. 장편전(長片箭). 피령전(皮翎箭). 화전(火箭). 천지자총통(天地字銃筒) 등이 터지고 나는 소리가 풍우와 같았다. 적병은 화살을 가슴에 안고 자빠지는 자.
등에 지고 엎어지는 자. 팔이나 다리에 맞고 미처 빼어 낼 사이도 없이 비칠거리고 달아나는 자. 피를 뿜고 물에 떨어지는자. 그 부르짖는 소리가 실로 참담하였다. 마침내 적병들은 견디지 못하여 배를 버리고 물에 올라 달아나나 살아 난 자가 십에 일이 되지 못하였다. 적병 속에 끼어 적을 위하여 싸우던 조선 사람의 시체를 찾으려 하였으나. 배 속에서도 찾지 못하고 바닷물에 나 뜬 시체 중에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 싸움에도 적병에게 사로잡혔던 조선 계집아이 하나를 찾았다. 사천에 있던 적선 십 이척은 모조리 깨뜨려 불사르니. 적병들이 멀리서 바라 보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였다. 이것이 사천 싸움이란 것이다.

4

사천 싸우이 끝이 나니 날이 저물었다. 순신은 모자랑개(毛自郞漑)로 가자고 명하였다. 뱃머리를 돌려서 장졸이 의기 양양하였다. 다만 군관 나대용(羅大用)과 전봉사(前奉事) 이 설(李渫)이 적의 철환을 맞아서 장졸들에게 위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 상처도 대단치는 아니 하였다. 순신은 총 맞은 나 대용과 이 설을 자기가 탄장선으로 옮겨 손수 그 상처를 살폈다.
우후 이 몽귀(李夢龜) 이하로 춘천 부사 권준. 광양 현감 어영담. 녹도 만호 정운. 군관 송희립 등이 전승 축하차로 순신의 배로 모였다. 원균도 찾아왔다. 모시는 자가 순신의 갑옷을 벗기니. 적삼 등에 피가 흐는 것이 보였다.
『사또!』
하고. 곁에 모였던 장졸들이 놀랐다.
『왼편 어깨에 철환을 맞은 모양이야. 이쪽 어깨쭉지가 조금 아프다.』
하고. 순신은 피 묻은 적삼을 벗었다. 적삼 밑에는 피가 더욱 많이 흘러서 고의까지 붉게 젖고 버선목까지 흘러들어 가 끈적끈적하게 선지피가 되었다.
『어깨를 맞으셨소.』
하고. 정운이 대단히 근심하는 어조다.
『그 보선 사람 탔던 큰 배를 칠 때에 뒤에서 뜨끔하였거든. 그놈의 철환이 나를 맞혔기로 뼈까지 뚫겠느냐. 자 칼끝으로 살 속에 박힌 철환을 파내어라.』
하고. 사람들 앞에 등을 돌렸다. 녹도 만호 정운이 꿇어 앉아 칼끝으로 순신의 왼편 어깨에 밖힌 철환을 그리 힘들이지 아니하고 파내었다.
『그 철환이 여기 있소.』
하고. 정운은 파내인 철환을 순신에게 주었다. 순신은 손에 받아 들고 두어 번 굴려 보더니 바다에 내어던지고 말았다.
『들어가 누우시오.』
하고 부하가 권하였으나 순신은 태연히 옷을 갈아 입고 장선에 모인 부하들로 더블어 술을 나누었다.
이튿날 유월 일일 새벽에 원균이 배를 끌고 순신에게는 말도 없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함대에 있으면서 말도 없이 먼저 행진한다는 것은 심히 옳지 못한 일이었다.
순신은 군사를 시켜 원균의 배를 향하여.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라고 명령하였다. 원균은 낭패하여 뱃머리에 나서며 순신의 배 곁으로 자기의 배를 저어대게 하고.
『영감. 어깨의 상처가 밤새에 과히 아프지나 아니하시오?』
하고. 아침 문안을 하였다. 순신이 역시 뱃삼에 나서며.
『상처는 대단치 아니 하오마는. 영감은 이렇게 이른 새벽에 어디를 가시오?』
하고. 원균에게 물었다.
『어저께 적선 두 척 남겨 놓으신 것이 있지 아니하오? 혹시 적병이 계교에 빠져서 들어 왔는지도 알 수 없으니. 소인이 가 보려오. 어찌 영감이 몸도 불편하신데 몸서 가실 수가 있소. 소인이 가더라도 얻은 수급은 영감께 바치오리다. 소인이 패군지장으로 영감의 후의가 아니면 거접할 곳이 없을 것이 아니요?』
하고. 원균은 정성이 넘치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하시거든 가 보시오.』
하고. 순신은 좋은 낯으로.
『우리네가 국가의 중하신 부탁을 받아 가지고 저군과 싸우는 처지에 어디 네요. 내요가 있소? 하나라도 적병을 없이하는 것이 상책이니까. 수급이 뉘 것이요. 공이 뉘 것인 것은 말할 것이 있소? 혼자 가시기 단약하시거든 적선 몇 척을 드릴 테니 데리고 가시오.』
하였다. 얼마 전 옥포 싸움에 원균이가 노획물을 빼앗기 위하여 순신의 군사 두 사람을 살로 쏜 것을 순신도 기억하지 못함이 아니나. 인물이 없는 이때에 원균 같은 재주라도 아무쪼록 버리지를 말려는 정성이었다.

5

원균은 순신의 허락을 받고 급히 배를 몰아 어제 저녁 싸우던 싸움터인 사천에 갔다. 거기는 순신이 적선 두척을 성하게 남겨 둔 곳이다. 그것은 육지로 올라서 도망하였던 적병이 필시 배를 찾아 들어오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원균이 갔을 때에는 적병은 아마 육지로 멀리 달아났는지배에는 하나도 없었다. 원균은 분하여 비인 배에 불을 사르고 적군이 진 첬던 곳을 두루 찾아 적군이 도망할 때에 내어 버리고 간 시체 세 개의 목을 베어 가지고 면목 없이 본진으로 돌아 왔다.
원균이가 순신에게 물어 봄도 없이 자의로 행선하려한 것을 분개히 여겨 순신이 원균으로 하여금 사천에 남겨 둔 배를 차지하게 한 것을 원망하였다.
그때에 순신은.
나라를 생각하는 충성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고 공을세원 상급을 받자는 사욕으로 싸우는 사람도 있소. 공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공을 주어야 잘 싸우는 것이요. 지금 나라 일이 급하고 싸울 사람이 적으니. 싸울 재주 있는 사람을 아끼는 것이 좋소.』
하며. 자기가 원균을 우대하는 이유를 암시하였다. 원균이 죽은 적병의 머리 셋을 베어 달고 돌아 오는 것을 기다려서. 순신은 모자랑개에서 행선하여 사량섬(蛇梁섬) 앞바다에 이르러 닻을 주고 밤을 지내며 사방으로 탐보선을 놓아 적선이 있는 곳을 엄타하였다. 자고 나니. 유월 이일 새벽에 적선 이십여 척이 당포(唐浦)에 정박하고 있다는 탐보를 듣고 제장에게 곧 당포를 향하여 행선할 것을 명하였다. 전함대가 사량 바다를 떠난 것이 진시. 당포에 닿은 것이 사시였다. 당포는 미륵도(彌勒島) 서남단에 있는 포구로 만호(萬戶)를 두었던 데다.
당포에 다다르니 과연 선창에는 적의 대선 구척과 중선과 소선과 소선 십 이 척과 도합 이십 일척의 배가 정박하고 있는데. 대선은 크기가 조선의 판옥선 만하였다. 그중에 큰 배하나가 있는데. 배 위에 삼사십 척이나 될 듯한 높은 누가 있고 밖에는 붉은 김으로 장막을 두르고 장막의 사면에는 대자로 누를황(黃)자를 쓰고 그 속에 수장 한 사람이 있는데 앞에는 분홍 일산을 받았다. 적병의 수효는 모두 삼백 명이나 될까? 반은 성안에 들어 가 노략하고 불을 놓고. 또 더러는 성 밖 요해처에 웅거하여 이편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조총을 놓아 철환을 내려 부었다.
순신은 그 높은 누 있는 배가 적의 대장의 배인 것을 짐작하고 즉시 거북선을 명하여 그 층루선을 찌르게 하였다. 거북선은 살같이 달려 가 용구(거북선의 입)를 번쩍 들어 굉연한 소리와 함께 현자 철환(玄字鐵丸)을 충루선을 향하여 올려 쏘고 또 천지 대자군전(天地大蔣軍箭 화살의 이름)을 쏘아 그 배를 깨뜨리니 뒤에 따르는 모든 배가 일제히 총과 활을 쏠 제.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權俊)이철환의 비를 무릅쓰고 배를 몰아 바로 그 충루선의 밑으로 달려 들어 활 한 방을 우러러 쏘니 그살이 바로 적장의 이마를 맞혀서 빨갛게 피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으나 적장은 왼편 손을 들어 이마에 박힌 살을 빼어 던지고 태연 자약하게 여전히 칼을 두르며 싸움을 감독하였다.
그러나 군 준의 둘째 살이 그의 가슴에 박히매 그는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충루 위에 떨어졌다. 적장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도 첨사 김완(金浣). 군관 진 무성 등이 그 배에 (陣武誠) 뛰어 올라 넘어진 적장의 머리를 베고. 우후 이 몽귀 등은 배에 올라 남은 군사를 사로잡고 배를 점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