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14 (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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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회에 통제사 원균(元均)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자.
원균은 소원 성취하여 이 순신을 모함하여 떼고. 그 자리에 통제사가 되어 곧 처첩을 거느리고 한산도에 도임하였다.
그는 도임하는 길로 순신이 신임하던 부하를 혹은 벼슬을 떼어 내어쫓고 혹은 먼 섬의 만호. 권관 같은 것으로 좌천시킨 후에. 서울서 떠날 때에 대관들에게 청을 받은 자제(대개 서자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과거에도 참예 못할 무식한 이. 못난 이. 부랑 밤낮으로 술 먹기와 계집 희롱하기로 일을 삼고. 군사 조련. 병기 수리 같은 것은 일체 잊어 버리고 말았다. 혹시 관내를 순찰한다하여 배를 타고 연해 각 읍. 각 면을 순회할 때면 가련한 민가 처자나 과부를 조사하여 강제로 빼앗아다가 제승당에 두고 첩을 삼읍으로 도임한 지 석달 되던 때에는 일 통제사의 첩이 열 물이라고 소문이 나게 되었다.
순신은 제승당에 날마다 혹은 밤중에라도 제장을 모으고군사 일을 의논하였으나 원균은 제승당 가으로 높이 담을 쌓고 그 속에 밤낮 파묻혀 있어서 자기만 밖에 나오지 아니할 뿐더러. 부하가 무슨 일을 물으러 들어오는 것도 허하지 아니하였다.
밤이 깊도록 어떤 때에는 밤이 새도록 제승당에서 질탕한 풍악 소리와 젊은 여자의 깔깔대고 웃는 소리와 취한 통제사다 무슨 뜻에 맞지 아니하는 일이 있어서 호령하는 소리와 뒤를 이어서 들리는 젊은 여자의 울음 소리가 들리 때에 군사들은 담 밖에 모여 서서 구경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병선에서는 노름하는 군사들이 투전 불림하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높고.
군사들 중에는 이런 통제사 밑에 있다가는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 하여 달아나는 이도 있었다.
통제사는 순신이 천신 만고로 모아 쌓아 놓은 군량을 백성들에게 팔고 또 적이 넉넉한 백성들에게는 존문을 놓아 군비라 하고 전곡을 받아 들여서는 갈수록 더욱 음탕한 생활을 하였다. 다만 고량진미에 술만 취하고 계집만 희롱하기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서울서 데리고온 부랑자 군관들로 하여금 새로운 노는 방법을 연구하기를 명하였다.
그렇게 연구해 내인 것 중에 한 가지는 대청에 돈과 볶은 콩 같은 것을 뿌려 놓고는 여자들을 벌거벗겨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그것을 줍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원통제사의 대갈채를 받아 이것을 발명한 군관은 벼슬한 자리를 올려 주었다.
고성(固城)에서 새로 십 오륙세 되는 처녀를 데려온 어느 날 밤. 제승당에서는 여자의 애걸하는 소리. 우는 소리가 들리고. 뒤를 이어 여자가 발악하는 소리가 들리고. 뒤를 이어 여자의 아구구 하는 고통하는 소리가 들리고. 통제사의 삼군을 호령하는 듯한 호령하는 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협문이 삐걱 열리고 그 여자는 벌거 벗은 피 흐르는 시체가 되어 내어 던짐이 되었다. 원 통제사는 대장명을 거역하는 이 괘씸한 처녀에게 군법을 시행한 것이었다.
『이놈아! 네가 편안히 죽을 줄 아느냐?』
하고 처녀의 시체를 거적으로 싸던 군사는 제승당을 향하여 주먹질을 하였다.
한산도 수풀 속에서는 여전히 부엉이가 울고 푸른 바닷물은 여전히 물결쳤다.
이때에 조정에서는 도원수 권율(權慄)을 통하여 원균에게 출동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부산으로 날마다 적의 함대가 들어오니 나아가 막으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은 가장 당연한 거이었다. 원래 이 순신이 죄를 입은 것이 부산의 적을 치치 아니한다는 것이요. 원균이 통제사로 되기를 자청한 것이. 또 조정이 원균을 통제사로 한 것이 순신의 자중책. 방수 제일 책을 뒤집어 엎고 원균의 적극적.
진공 제일 책을 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원균은 도임한 지 사오 개월이 되도록 도무지 싸우러 나가는 기색이 없으니 조정에서나도원수나 그를 재촉하고 책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원균에게 싸울 뜻은 없었다. 그가 통제사가 되어 온 것은 싸우려 함이 아니다 부산에 나아가. 치기는커녕 적선이 견 내 도만 넘어 오는 거싱 보이더라도 모이기는커녕 그렇다는 말만 듣더라도 한산도 본영을 버리고 계집애나 몇 데리고 달아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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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원균은 싸우러 나가지 아니하고 핑계를 만들었다. 그것은 안골포(安骨浦)의 적을 먼저 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는 것이요. 또 안골포의 적을 치려면 수군만으로는 할 수 없으니 육군으로 합력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골포의 적으로 말하면 언제 온 것이냐 하면. 이 순신이 갈려 가고 원균이가 통제사로 온 뒤였다. 순신이 한산도에 응거한동안에 적선은 가덕(加德) 이서에 그림자를 번쩍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순신이 가고 균이 한산도에 와서 주색에 침윤하는 것을 보고 적은 안심하고 진해 앞바다로 출몰하게 된 것이다.
유월 십구인. 도원수 권율은 이순신을 대하여.
『웬 이 사람의 일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구료. 적병 십만이 금명간 부산으로 건너 온다는데 통제사는 안골포. 가덕도에 있는 적을 다 소멸하고야 주사를 내 온다고 하니 어디 세월이 있소? 웬 심사인지를 알 수가 없구료. 필경 이 핑계로 천연 세월만 보내자는 모양이니 내가 몸소 사천(泗川)으로 가서 감독할 수밖에 없소.』 하였다.
『적병 십만이 대마도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시오.』
하고 순신이율에게 물었다. 순신은 또 속지나 않는가 하는 근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행장(平行長)이요시라(要時羅)를 보내어서 우병시(右兵使) 김응서(金應瑞)에게 건너오는 날짜까지고 하였다는구료.』
하는 것이 권 원수의 대답이었다.
『적병 십만이 대마도에 와있을 법도 하고 적의 수군이 많이 올 법도 하오마는 행장이가 그 날짜를 우리에게 바로 이를 것이니 필시 무슨 괴계가 있는 가 하오. 소인 같은 죄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는 미안 하오 마는 통제사가 자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하오. 또 안골포와 가덕도에 적의 대부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면 그것을 그냥 두고 주사를 부산으로 끌고 가는 것은 심히 위험한 일인 줄 아오.』
하고 순신은 말하였다.
이 말에 권율은 많이 낯빛을 변하면서.
『웬 또 그런 소리를 하는구료!』
하고 순신을 노려 보았다.
순신은 더 말하는 것이 마치 자기의 지나간 과실을 변명이나 하는 것 같을까 하여 입을 다물었다. 권율은 잠깐 뒤에 낯빛을 화평히 하여.
『대감은 그래도 원통제사를 두호하시오?』하고 웃었다.
권율은 막료를 데리고 곧 사천으로 갔다. 그는 순신의 말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였다. 순신은 자기의 과거의 죄명을 변명하자는 것도 아니요. 또 원균을 두호하자는 것도 아니요. 오직 나라일의 이해를 말한 것으로 공정한 사실을 말한 것이언마는. 권율은 처음에는 변명으로 듣고 화를 내었고. 나중에는 두호로 듣고 순신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권원수가 사천에 와서 내린 진격명령을 받은 원균은 할 수 없이 부산을 향하여 전함대를 출동하지 아니치 못하게 되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며. 경상 우수사 배설(裵楔) 등은 안골. 가덕 등 연해 각지에 있는 적병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도록 밤을 타서 행선하기를 주장하였으나 원균은 듣지 아니하고 아침에 한산도를 떠나서 가고 당당하게 부산으로 향하였다. 이것이 우리의 당당한 위엄으로 적의 예기를 지르는 것이라고 칭하였다.
이날 동풍이 세게 불어 절영도(絶影島)까지를 돛 한번달아 보지 못하고 줄고 저어 갔다. 군사들은 심히 피곤하였으나 원균은 명령을 엄히 한다 하여 조금이라도 팔을 쉬이는 자는 목을 베이라 하여 수십인을 베었다. 게다가 평상시에 배에는 양식과 나무와 물을 준비하지 아니 하여서 군사들이 배가 고파도 밥을 지어 먹을 수가 없었다.
연해 가가지에 있는 척후들은 원균의 함대가 대거하여 부산을 향하는 것을 보고 육지로 서로 통신하여 함대보다도 먼저 부산에 그 소식을 전하였다.
행장(行長)은 원균의 함대가 부산으로 향하였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기뻐하고 요시라(要時羅)를 불러 손수 술을 부어 그 공을 칭찬하였다. 부산에 있던 일본 전선 오백여 척은 일제히 절영도 앞으로 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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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의 함대가 절영도를 지나 동해에 나섰을 때는 벌써 다 저녁이었다.
앞에는 몇 십 척의 일본 전선이 오색기를 달고 떠놀면서 마치 원균의 함대를 습격하려는 듯이 방포를 하고 북을 울렸다. 원균은 전군에 총공격령을 내렸다.
바람은 더욱 일고 물결은 더욱 날뛰었다. 온종일 노를 젓기에 피곤한 원균의 군사들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죽고 싶었다.
원균은 칼을 빼어 들고 군사를 독촉하여 노를 저어 일본 적선을 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활 두어 바탕. 거리에 둔 함대가 가까워졌을 때에 일본 함대는 뱃머리를 돌려 대마도 쪽을 향하고 달아났다. 원균은 달아나는 적을 따라서 피곤한 군사를 재촉하였다.
얼마 후에 해가 거의 다 넘어가려 할 때에 문득 원균의 함대의 뒤로서 고각과 포성이 들린다. 돌아 본즉 부산 쪽으로부터 난데 없는 일본 병선 백여 척이 내달아 원균의 함대에 싸움을 돋구었다.
원균은 따라 가던 적의 함대를 버리고 새로 나타난 대함대를 맞아 싸우기를 명하였다. 두 함대 사이에는 활과 총포가 왔다 갔다 하였으나 도무지 물결이 세어서 자유로 배를 운전할 수가 없었다.
일본 함대는 또다시 가덕을 향하는 듯이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려서 살같이 달아났다.
원균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얼마 아니 하여 또 부산 쪽으로서 이 백척은 될 듯한 대함대가 내달아서 원균의 함대의 측면을 위협하였다. 원균은 갈팡질팡하는 동안에 해는 아주 저물고 군사들은 더 내일 기운이 없어지고 말았다.
원균은 가덕 쪽으로 향한 적의 뒤를 따르기도 하였으나 벌써 함대는 통제력을 잃어 버렸다. 노를 잡은 군사들은 태반이나 나가 넘어졌다. 몇 군사의 목을 베었으나 그래도 무가내였다. 팔의 근육이 굳어지고 기운이 진한 것이었다. 마침 바람이 동풍이기 때문에 배들은 저절로 흘러 초승달이 다 넘어간 뒤에야 가덕도에 하나씩 하나씩 와 닿았다. 군사들은 물을 얻어 먹으려고 미친 사람들 모양으로 섬에 뛰어 내렸으나 거기에는 일본 군사들이 복병을 하고 있다가 하륙하는 족족 잡아 죽여서 경각간에 사백여 명 장졸이 소리도 없이 죽음을 당하였다.
원균의 함대가 동해에 나떠서 갈팡질팡하는 동안에 일본햄대는 조선 함대가 빈틈을 타서 가덕과 연해 각지를 점령한 것이었다. 원균의 함대를 동해로 유인해 내어서 피곤케 하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조선 함대를 꺼려서 못 들어 가던 지점의 근거를 잡으려 하는 것이 이번 소서행장의 꾀다.
원균은 가덕도에 일본 군사의 복병이 있는 것을 보고 겁을 내어 자기 먼저 캄캄한 바다를 저어 거제도의 칠천도(漆川島)를 향하고 달아났다. 다른 배들도 장수의 뒤를 따라 달아났다. 권율은 원균이가 절영도 앞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수십 척의 병선과 천여 명 군사를 싸움도 못하고 잃어 버렸다는 보고를 듣고 곧 종사관과 군관을 보내어 원균을 사천의 원수진으로 불렀다. 그래서 통제사이임 이래의 태만한 죄와. 또 이번 원정의 실패를 책하고 장 오십을 때려 다시 부산을 진격하기를 엄명하였다.
원수에게 매를 맞은 원균은 이것이 다 이 순신이 자기를 모함한 것이라 하여 이순신이 원수의 진에 (있음을 알므로. 그러나 이 순신은 사천에는 따라 가지 아니하고 초계에 머물러서 무밭을 갈고 무우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분하여 칠천도의 본진에 돌아 가서 술을 만히 먹고 대취하여 도무지 제장을 만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