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09 (11~15)

11

진시나 되어서 전선을 불사를 때쯤 해서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과 남해 현령 기 효근(奇孝謹) 등이 배를 달려 와서 바당 빠져 죽은 적병의 세체를 건져 분주히 목을 잘랐다. 모두 오십 개나 잘라 가지고 의기양양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방답 첨사 이순신은 몸소 적선에 올라 수험하였다. 뱃머리에 정결하게 꾸민 방 하나가 있는데. 방에는 화려한 장막을 둘렀고 방안에 조그마한 궤 하나가 놓였는데 열어 보니 무슨 문서가 들었다. 펴 본즉 사람의 성명을 적은 발기인데.
성명 밑에는 모두 피를 발랐다. 사람 수효가 모두 삼천 사십여 명이요. 군기를 갈라서 성명을 적었다. 아마 피를 내어 죽기로써 서로 맹세한 것인 듯하였다. 이 발기가 여섯 축이요. 그 밖에 갑주. 창검. 활총. 표피. 말한장 등물도 있었다.
방답 첨사 창검 활총 ... 표피. 말안장 등물도 있었다. 방답 첨사 이순신은이 물건들을 다 봉하여 순신에게 바치었다. 순신은 피로 수결된 삼천 사십여 명의 발기 여섯 축을 차례로 내려 본 두에.
『과시 독한 무리로고나!』
하고. 감탄하고 방답 첨사 이순신이 베어 온 적장의 머리 아홉 개 중에서 화살 십여 개를 맞도록 까딱 없이 칼을 짚고 싸웠다는 젊은 장수의 머리를 보고는 정색하고 찬탄하는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 적장의 머리들을 왼편 귀를 베어 소금에 저려서. 왕께 보낼 때에도 이 젊은 장수의 머리는 특별히 정하게 싸고 표를 하여서 보내었다. 왼편 귀는 베어서 이편에 보관해 두어서 중간의 협잡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이날 검은 구름이 바다를 누르도록 하늘을 덮고 비가 퍼부어 도무지 배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목개 앞바다에서 군사를 쉬다가. 석양에 비가 개는 틈을 타서 고성지경 머루장( ) 앞바다에 진을 옮겨서 밤을 지내었다.
이튿날은 유월 칠일이다. 아침에 일찍이 배를 띄워 웅천(熊川)땅 시루섬( ) 바다에 진을 치고 탐망선을 보내어 천성(天城). 가덕(加德)의 적의 종적을 엄탐케 하였다.
이윽고 탐방선장 진무( ) 이 전(李전)과 토병(土兵) 오수(吳水) 등이 적병의 머리 둘을 베어 가지고 돌아 왔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건댄. 그들이 탐망선을 타고 가덕이편을 보고 북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따라 가서 셋을 다 목을 베었으나. 그중에 하나는 경상 우수사 원균의 군관에게 강제로 빼앗기고 둘만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며. 원망스럽게.
『경상 우수영 놀들은 산대적은 하나도 못 잡으면서 죽은 대적의 머리 주워 모우기만 할 줄 아나. 경을 칠......』
하며 떠들었다.
순신은 말을 삼가라고 책망하고 이 전과 오수 등에게 술과 안주를 주어 먹게 하고. 다시 척선을 돌아 적병의 종적을 알아 오라고 명하였다.
순신은 함대를 끌고 적선의 유무를 살피면서 거제도 기슭을 돌아 오기에 영등포 앞바다에 다다랐다.
『왜선이야!』
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과연 검은 돛 단 대선 오척과 중선 이척이 밤개(밤개)에서 나와서 부산(釜山)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편에서는 바람을 거슬러 노를 재촉하여 오리쯤 가서 밤개 밖에서 적선들을 따라 잡았다. 그 배들은 실었던 짐을 물에 풀러 버리었다. 아무리 하여도 면치 못할 줄을 알아 차린 모양이었다.
우후 이 몽귀가 대선(李夢龜) 일척을 바다에서 온 이로 잡고. 머리 아홉을 베고.
한 척을 하륙하는 것을 불사르고. 사도 첨사 김완(金浣)이 대선 한 척을 온이로 바다에서 잡고. 머리 이십 급을 베고.녹도 만호 정운(鄭運)이 대선 한 척을 바다에서 온이로 잡고. 머리 아홉을 베고. 광양 현감 어영. 가리포 처사 구 사직담(魚泳潭)이 동력하여 대선 한 척이 하륙하는 것을 불사르고. 구 사직이 머리 둘을 베고. 여도 권삼 김인영(金仁英)이 머리 하나를 베고. 소비포 권관 이 영남(李英男)이 소선을 타고 돌입하여 머리 둘을 베고. 공선 하나를 바다에서 살라 버렸다. 이리하여 혹은 베이고 혹은 물에 빠지어 적병이 하나도 없이 다 죽어 버리고 말았다.
『어쾌하다!』
하고 제장들은 심담이 쾌연하였다.

12

순신은 함대를 둘로 갈라 가덕(가덕). 천성(천성). 좌도 몰운대 (左道沒雲臺) 등지를 좌우 양편으로 수사하였으나 적선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 지방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곳저곳에 집을 잡고 웅거하던 적선들이 그동안 자기네 주사가 연전 연패하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부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놈들 다 달아났소.』
하고. 녹도 만호 정운은 들먹거리는 팔을 둘 곳이 없는 듯이 멀어 가는 목운대를 바라보고 뽐내었다.
초저녁에 거제 온천도 송진개(溫川島 松津개)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유월 팔일에 창원(昌原) 땅인 마산포(馬山浦). 안골포(安骨浦).제포(薺浦).
웅천(熊川) 등지에 탐망선을 보내어 적군의 종적을 엄탐케 하고. 본진은 창원 시루섬 남포( )바다에 옮겨서 탐방선들의 회보를 기다렸다.
저녁때에 탐망선들이 다 돌아 왔으나 적군의 종적을 보지 못하였다는 보고뿐이었다.
도로 송진개에 돌아 와 그날 밤을 지내고 이튿날인 유월 초구일 조조에 배를 띄워 고므내( ) 앞바다에 진을 치고 한번 더 소선들을 가덕(加德).
천성(天城). 안꼬래(安꼬래) 등지에 보내어 적의 종적을 엄탐케 하였으나 그림자도 없다는 보고뿐이었다.
『이제는 어찌할꼬? 적의 수군의 소굴인 부산을 칠까 또는 고만하고 파진할까?』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정운(鄭運). 어 영담(魚泳潭)같이 기운찬 장수들은 이 길로 가서 부산의 적의 소굴을 무찌르자고 주장하였으나. 순신의 이유는 이러하였다. 첫째로 지난 오륙일간 거의 하루도 쉬일 사이 없이 큰 싸움을 하여서양식도 진하였거니와. 사졸이 피곤하고 그뿐더러 사졸 중에는 죽은 자도 있고 상한 자도 적지 아니하니. 이렇게 피곤한 군사를 가지고 오래 준비하여 가만히 쉬고 있는 적과 싸우는 것은 병가의 이른바 이아지로 적피지일( ) 이라 백 번 패함이 있고 한번 이김이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양산(梁山)을 가려면 낙동강이 좁아서 배 하나를 용납할둥 말 둥한데. 적선은 미리부터 험한 자리를 잡고 웅거하였으니. 내가 싸우려 하면 저가 나오지 아니할 것이요.
싸우지 못하고 물러 오면 도리어 나의 약함만 보일 것이니. 육지로부터 함께 치는 군사가 없이는 수군으로는 도저히 양산의 적군을 칠 도리가 없고. 또 만일 양산의 적을 그냥 두고 부산으로 향하면 부산의 적군과 양산의 적군이 서로 응하여 타도의 객병이 앞뒤로 적의 엄습을 받게 될 것이니. 이것은 만전지계가 아니요. 셋째로 또 전라 좌병사이 과에 의하건대 서울을 점령한 적병의 조선(漕船 세납쌀 싣고 다니는 나랏배)을 빼앗아 타고 서강으로부터 호남을 향하여 내려 온다 하였으니. 경기도. 충청도에도 수군이 있거던 어느새에 조선을 빼앗길 리는 만무하지마는 의외지변도 없으란 법은 없으니. 그것도 생각하지 아니할 수는 없은즉 아직 가덕(加德)이서에 있는 적을 소멸하고는 이번의 싸움을 거두자는 것이었다. 또 순신은 말하기를. 이번 싸움을 거두자는 것이 삼천명은 넘을 것이요. 또 살아 나서 육지로 도망한 적병들이 우리 주사의 위엄이 어떠한 것을 말하였을 듯하니. 필시 적병이 겁을 내어 가벼이 가덕이편을 엇보지 못할 것인즉. 아직 돌아 가 죽은 군사를 치료하고 군사와 군량을 더욱 준비하여 다시 적의 소굴을 소탕할 준비를 하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유월 초열흘날에 메주목 앞바다에서 파진하고 전라도 우수사 이억기와 경상도 우수사 원균이 각각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원균은 물에 빠져 죽은 적병의 머리 이백여 급을 순신에게서 허락받아 얻어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거제도 우수영으로 돌아 갔다.

13

당포 싸움 이래로 총과 활에 맞아 죽은 사람과 상한 사람은 이러하다.
장선 정병(將船正兵) 김말산(金末山) 우후선방 포진무(虞候船防砲鎭撫) 장 언기(張彦己) 순천 일선 사 부사노(順天一船射夫私奴) 배 귀실(裵貴實) 순천이 선 격군사노(順天二船 格軍私奴) 막대포작 내은석(莫大砲作內隱石) 보성일선사부 관노(寶城一船射夫官奴) 기이(기이)흥양일선 전 장관노(興陽一船箭匠官奴) 난성(難成) 사도 일선 사부진무(蛇渡一船射夫鎭撫) 장희달(張希達) 여도 사공토병(呂島沙工土兵) 박고산(朴古山) 동상 격군(格軍) 박 궁산(朴宮山) 이상은 철환을 맞아 죽었고. 흥양일선 사부(興陽一船射夫)목 자손(牧子孫)은 장수(長水)에서 하륙한 적병을 따라가 베이다가 칼을 맞아서 죽고. 순천 일선 사부 보인(順天一船射夫保人) 박훈(朴訓) 사도 일선 사부진무(蛇渡一船射夫鎭撫) 김종해(金從海)의 두 사람은 화살에 맞아 죽고.
순천 일선 사부(順天一船射夫) 유 귀희(柳貴希) 동상 포작(砲作) 남산수(南山수)흥양선 선장수군(興陽船船獎水軍) 박 백세(朴百世) 동상 격군 포작(格軍砲作) 문세(文世) 동상사부 정병(射夫正兵) 김복수(金福壽) 동상 내노(內奴) 고 붕세(高朋世) 낙안 통선사부(樂安統船射夫) 조 천군(趙千軍) 동상수군(水軍) 선진근(宣進近) 동상 무상 사노(無上私奴) 세 손(世遜) 발포 일선 사부 수군(鉢浦一船射夫 水軍) 박 장춘(朴長春) 동상 토병(土兵)장 업(張業) 동상 방포 수군(放砲水軍) 우성복(禹成福) 등은 철환을 맞았으나 중상에는 이르지 아니하였고.
방답 첨사 솔노(防踏僉使 率奴) 언룡(彦龍) 광양선방포장(光陽船放砲匠) 서 천룡(徐千龍) 동상 사부(射夫) 백내온손(白內縕孫)흥양 일선 사부 정병(興陽一船射夫) 배대검(裵大檢) 동상 격군 포작(格軍匏作) 말 손(末 孫) 낙안 통선 장흥 조방(樂安統船長興助防) 고희성(高希星) 동상능성 조방(綾城助防) 최난세(崔蘭世)보성 일선 군관(寶姓一船軍官) 김익수(金益水) 동상 사부(射夫) 오 언룡(吳彦龍) 동상 무상 포작(無上匏作) 흔손(欣孫) 사도 일선 군관(蛇渡一船軍官) 진무성(陳武晟) 동상 군관 임홍남(林弘楠) 동상 사부 수군(射夫 水軍) 김 억수(金億壽) 동상 사부 수군 진언량(陳彦良) 동상 사부 신선(射夫新選) 어 복남(許福男) 동상 조방(助防) 전광례(田光禮) 동상 방포장(防砲匠) 허원종(許元宗) 동상 토병(土兵) 정 어금(鄭於金) 여도선사부(呂島船射夫) 석천 개(石千介) 동상 사부(射夫) 유수(柳修) 동상 사부(射夫) 선 유석(宣有石) 등은 활을 맞았으나 증상은 아니었다. 이상에 낙안 통선(樂安統船)이라 함은 장수 낙안 군수가 탄 배를 이르리요. 일선 이 선하는 것은 어느 진에 매운배의 번호다.
이렇게 이번 큰 싸움 삼사차에 죽은 군사가 모두 열세 명인데 총에 죽은 이가 열이요. 활에 죽은 이가 셋이며. 총 맞아 상한 사람이 열 셋이요. 활 맞아 상한 사람이 스믈 하나이니. 모두 합하면 죽은 군사가 십 삼 명이요. 상한 군사가 삼십 사명이다.
죽은 군사의 시신은 소선에 실어 각기 고향으로 운구해 매장하도록 순신이 각 부장에게 명령하였다. 영광스러운 전사자의 사여는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매우 장엄하게 고향의 촌락으로 들어 왔다. 고향에 남은 부모와 부녀 아동들은 마치 친부모나 형제의 장례와 같이 찬양하고 슬퍼하였다.

14

싸워 죽은 이의 처자들은 각기관에서 구휼하기를 명하고. 상하기만 한 사람들은 순신이 친히 의문하여 상한데를 만지고 약을 주어 치료하게 하였다.
그리고 파진할 때를 당하여 순신은 각 배의 장수들을 불러 술을주고 그동안 나라를 위하여 시석을 무릅쓰고 싸울 때에 죽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피곤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진실로 용사답게 잘 싸운 것을 칭찬하고.
『이번에 파진하는 것은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요. 우리는 적의 배와 병기를 보아서 알거니와 적은 우리와 같이 준비가 없지 아이하오. 적이 이제 두 번 우리에게 졌거니와 필시 전보다 더 많은 세력을 가지고 복수하러 올 것이요.
들은즉 적병이 벌써 평양을 점령하였다 하니 부산에서 황평양서로 가는 수로를 얻지 못하고는 적병이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인즉 적병은 필시 이를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할 것이요. 그런데 이것을 막을 자는 오직 우리 수군이요. 우리가 만일 적의 배를 영남과 양호의 바다에 놓아 보내는 날에는 나라의 목숨이라 할 양호가 적의 손에 들어 갈 뿐더러 평양에 있는 적의 육군이 수군의 응원을 받아서 의주까지 들이칠 것이요. 그리 되면 우리나라는 영영 없어지고 마는 것이요. 이때를 당하여 우리네가 한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갚지 아니하면 언제 갚소?』
할 때에 순신의 어조는 심히 비장하였다. 듣고 섰던 장졸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그러므로.』
하고. 순신은 일단 소리를 높이어.
『그러므로 이번 파진하고 돌아 간 뒤에도 제장은 더욱 배와 군사를 힘써 준비해서 문변 즉부 종시 여일(聞變卽赴如一일이 있다면 곧 나오고 처음이나 나중이나 한결같이 하라.)하시오.』
하고 엄칙하였다. 듣는 장수들은 다 「예!」하고 그리 하기를 맹세하였다.
『母 .....) (한번 이긴 것으로 마음 놓지 말고 군사를 위로하고 배를 더욱 준비하여 일이 있단 말을 듣거든 곧 나아가되 처음과 나중이 한결 같이 하라.)』
하는 스무 글자를 명주 폭에 크게 써서 돛대에 높이 달았다. 최후에 순신은 이번 싸움의 공을 논하여 일등으로부터 삼등까지 일일이 발표하되 적병의 목을 베인 수효를 따라서 하지 아니하고. 싸우기에 힘쓰던 성적을 보아서 하였다.
이렇게 조정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순신이 스스로 논공 행상을 한 데 대하여 순신은 왕에게 이렇게 상소하였다-
『 논공 표창하는 일을 만일 조정의 명령을 기다려서 마련하기고 하면 왕복하는 동안에 시일이 지연할 것이요. 또 행재소(왕이 또 나 있는 곳)가 멀리 떠나 있고 길이 막혀서 사람이 통행하지 못하고 또 사나운 적병이 아직 물러 가지 아니하였사온지라 상주는 때를 넘길 것이 못되오니 군사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앞에 닥칠 일에 힘을 쓸 것이옵기로 위선 공로를 참작하여 일. 이. 삼등에 나누어.......』
하고 하였다.
이리하여 메주목에서 경상 우수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등과 작별하고.
이 순신은 전라도 소속 병선 삼십여 척을 끌고 해안에 피난하여 굶주리는 피난민들에게 적선에서 얻은 양식과 필육을 나누어 주어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또 가족을 끌고 주사를 따라 오기를 원하는 무리 이백여 명은 농토 많고 일거리 많은 장생포(장생포) 근처에 분접시켰다.

15

싸움에 나아갈 때마다 이 순신은 제장에게 신칙하여 적병에게 붙들렸던 우리 나라 사람을 힘써 찾아 사로잡되 적선을 무찌를 때에도 각별히 수색하여 한 사람이라도 우리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적에게 잡혔던 우리 사람 하나를 찾아 오는 것은 적 하나를 베는 것과 공이 같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모든 장졸들은 혹시 우리 사람을 상하지나 아니할까 하여 적선을 점령한 때에는.
조선 사람 『 있거든 나서라. 사또께서 조선 사람은 살리라신다.』
하고. 크게 외치었다. 그러면 그 배에 조선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소인이 조선 사람이요. 살려 주시오.』
하고. 합장하고 나섰다.
이렇게 찾은 사람이 이번 싸움에 남녀 합하여 여섯 명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나이가 어려서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고. 그중에 하나. 녹도 만호 정운(鄭運)이가 당목개 밖 바다에서 사로잡은 동래(東萊) 사노 억만년(私奴億萬年)이라는 십세 된 아이 하나는 매우 영이라여 묻는 말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었다. 억만년은 머리를 꿇어 왜 모양으로 차렸다. 순신은 이러한 적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을 얻은 때에는 반드시 몸소 심문하였다.
『어디 살어?』
하고. 순신이 물으면.
『동래 동문 밖 연못골(東萊門外 연못골) 사오.』
하고. 억만년이가 대답한다.
『몇 살이니?』
『열 세살이요.』
『어찌하다가 적병에게 잡혔어?』
『부산에 난리가 났다고 하기로.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서 성내로 들어 왔소.』
『어느 날?』
『날은 모르겠소- 사월이라오. 성내에 들어 갔는데 왜병이 수없이 와서 성을 다섯 겹을 쌌더라오. 그리고도 남은 군사가 땅에 꽉 덮였더라오. 그중에 왜병 한 백여 명이 대강이가 커다란 방패를 들고서 백여 명이나 넘어 들어 왔더라오.
그리고 한편으로 대 사다리를 성내다 놓고는 성을 넘어 들어와서는 성안에 있던 우리 사람들을 막 죽였다오. 소인은 그 통에 친형을 잃고 갈 바를 몰라서 엉엉 우노라니깐. 어떤 왜병 한 사람이 소인의 손을 붙잡고 소인을 끌고 부산으로 갔소. 부산에서 오륙일을 지나서 그 배(자기가 정 운에게 잡히던 배)에 옮겨 실렸는데. 그 배에 있던 사람 칠팔인이 소인을 보고 무에라고 지껄이며.
검을 둘러서 소인을 치려고 하겠지요. 그러는 것을 소인을 데리고 가던 사람이 팔을 벌리고 가리워 주었소. 그리고는 소인을 배 창널 윗집 밑에 숨겼소.』
『그때에 부산에 배가 몇 척이나 있더냐?』
『왜선이 얼마나 되는지 그것은 모르겠소.』
『그래 어찌했어?』
『배를 타고 한 오륙일이나 있다가 대선 삼십여 척이 한때에 떠나서 우도(경상 우도를 가리키는 말)로 간다고 합데다. 그중에 여러 층으로 지은 배가 있는데 그것이 장수가 탄 배라오. 총각선 밑에 여러 배들이 모여서 무슨 영을 듣고는.
두 배씩도 가고 세 배씩도 가는데. 도네에 들어 가 소랑 말이랑 돼지랑 닭이랑 곡식이랑 아니가지고 오는 것이 없읍데다. 어떤 때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의 대가리도 둘씩 셋씩 상투를 풀어서 맞매어서 가져다가 장수에게 바치기도 하는데. 그런 때에는 배에 탔던 사람들이 모두 좋아라고 떠듭데다.』
억만년은 진저리 치는 모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