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17 (01~05)

1

전라도뿐 아니라 충청도로 직산(稷山)까지 적의 선봉대가 올라 가고 진천(鎭川). 천안(天安). 전의(全懿)까지 점령되어 임진년에도 점령 아니 되었던 지방까지 다 점령되고 말았다.
원래 임진년에 일본군이 충청도의 바다에 면한 부분과 전라 좌수도를 손에 젛지 못한 것은 이 순신의 수군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순신이 없고 또 조선의 수군이 전멸하였으니 일본군으로는 도무지 거칠 것도. 꺼릴 것도 없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 수군이 전라도의 바다로 들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 수군이 전라도의 바다로 들기만하면 경성 이서로 의주까지 한 달이 못하여 점령할 형세였다. 비록 명나라 군사가 있다고 하나 그 정예라고 할 만한 양원(陽元)의 요동군이 남원에서 참패를 하였으니.
그것은 일본군에게는 도무지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한산도와 전라도를 손에 넣은 일본군은 수군의 힘을 모아 전라도 바다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 전라도 바다는 아직 일본 수군이 들어 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로를 잘 모르고 또 전라도의 좌수영과 우수영에 얼마나한 병력이 있고 방어 준비가 있는 지도 잘 몰랐다. 이 순신은 반드시 용의 주도하게 무슨 준비를 하여 두었으리라고 일본군이 생각하지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정만 분명히 알면. 일본 수군은 파죽의 세로 전라도 바다를 지나 경강과 황.
평양서를 석권할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경륜을 가지고 있었다. 칠천도 대패전의 경보가 조정에 올라온 것은 싸움이 있는 지 닷새뒤인 칠월 이십 일일이었다.
때마침 왕은 종묘를 수리하고 평시보다 늦게 천신하는 예식을 행할 때이었다.
왕은 친히 이 놀라운 경보를 받고는 실색하여 손에 들었던 술잔을 떨어뜨렸다.
좌우 제신들도 모두 낯이 흙빛이 되었다.
이 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 수군이란 것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아니하였으나. 그 수군이 전멸하였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왕이나 모든 대관들의 생각에는 직각적으로 일본 병선이 경강으로 들이닫는 모양이 보였다. 그들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 무리들에게 (다라고는 못하겠지마는) 국가나 인민을 생각하고 하는 근심은 바라지 못하겠마지는. 가장 그 무리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자기네의 영화와 사랑하는 가족의 일이었다. 그들의 머리에 「또 피난을 가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약속한 듯이 일제히 돌았다.
왕은 환궁하는 길로 비변사(備邊司) 제신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그들은 다 이 순신을 탄핵하고 원균을 거천 하던 무리들일뿐더러. 무슨 대책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들의 능사는 오직 저는 꼼짝 아니하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주둥이를 놀러 탄핵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왕의 물음을 대관들은 잠자하였다. 오직 벌벌 떨뿐이었다. 왕이 성낼 것이 무서워서. 일본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할 것이 무서워서.
『또 대가가 평양으로 가시는 수밖에 없을까 하오.』
하고 어떤 원로가 피난하기를 청하였다.
『상국(上國)에 시급히 구원을 청하는 수밖에 없을까하오.』
하고 또한 대시 이 아뢰었다. 모두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이런 말을 먼저 내는 것도 그 무리중에서는 가장 용기 있는 자였다. 다른 무리들은 속으로 생각은 할지언정 저는 말할 용기가 없고 남이 말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럴 뿐더러. 남이 먼저 말을 하더라도 솔선해서 찬성할 용기들도 없었다.

2

아무리 오래 앉았더라도 「피난」과 「청병」이외에 다른 계책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싸우자던 사라들은 다 어찌 되었노?』
하고 황망한 중에도 왕은 한번 풍자하는 말을 하였다. 병조판서 이 항복(李恒福)은 직책상 가장 구체적인 직언을 아니할 수 없었다.
『방금 지계로 보옵건댄 이 수신으로 다시 통제사를 하는 수밖에 없는 가 하오.』
하고 이 항복은 구체적 대책을 아뢰었다.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이 뒤를 이어.
『병조 판서의 말이 옳은가 하오. 다시 이 순신으로 통제사를 삼는 길 밖에 없는가 하오.』
하고 이 항복의 말에 찬성하는 뜻을 표하였다.
아무도 감히 여기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속으로 다하는 말도 하기 싫었다. 그 무리들은 잠잠하였다. 이리해서 이 순신은 다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통제사(忠淸全羅 慶尙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다. 이보다 먼저 이 순신은 초계(草계)에서 김장할 무밭(죄인으로)직무를 갈고 배추씨를 뿌리고 채마에 새와 개를 보고 있을 때에 칠년도 대패전의 소식을 이틀 후인 십 팔일에 들었다.
새벽에 채마를 돌아 보러 나가려 할 때 이덕필(李德弼). 변 홍달(卞弘達) 두 사람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순신에게 칠년도 패전하던 이야기며. 원균(元均)이가 달아난 이야기며. 경상 우수사 배설(裵楔)만이 한산도로 돌아 와서 그곳에 있는 군량과 군기와 가옥을 다 불살라 버리고 서쪽으로 달아난 것이며.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최호(崔瑚)등. 순신이 평소에 신임하던 장수들이 통곡하였다.
이윽고 도원수 권율(權慄)이 고성으로부터 돌아 와서 순신을 불러 보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하오? 모두 내 불찰이요.』
하고 심히 슬퍼하였다. 그가 자기의 불찰이란 것이 자기가 김응서의 말을 믿고 순신을 죄가 되게 하였다는 뜻이다. 권율은 순신에게 대하여 면목 없는 표정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하고 순신의 의견을 물었다. 순신은.
『그러면 소인의 연해 지방을 한번 돌아 보고 계책을 하고 선선하게 대답하였다. 권 원수는.
그렇게 하시면 『 작히나 좋겠소. 도무지 내가 대감을 대할 낯이 없소.』
하였다. 원수는 처음으로 순신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순신은 송대립(宋大立).
유황(柳滉) . 윤 선각(尹先覺). 방 응원(方應元). 현 응진(玄應辰). 임 엽립(林葉立). 이 원룡(李元龍). 이 희남(李喜男) . 홍 우공(洪禹功)등 아홉 사람을 데리고 우선 삼가(三嘉)로 향하였다. 이 하홉 사람은 원수 밑에 있던 군관으로서 원수가 순신의 막하로 준 사람들이었다.
순신은 단성(丹城). 진주(晋州)를 지나 칠월 이십 일일에 곤양(昆陽)에 들러 오후에 노량(露梁)에 다다랐다. 거기는 한산도(閑山島)에서 순신의 부하로 있던 거제 현령(巨濟縣令) 안위(安偉). 영등포 첨사(永登浦簽使) 조계종(趙繼宗) 등 십여 인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머물러 있다가 순신을 보고 통곡하고. 거제(巨濟).
고성(固城) 방면으로부터 피난해 오던 백성들도 순신을 보고는 일변 반갑고 일변 감개무량하여 통곡하였다.
경상 수사 배설(裵楔)은 순신을 피하여 보지 안이하고 우후(우후) 이 의득(李의득)이 와 보고 칠천도(漆川島)싸움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이 의득은 칠천도 패전의 원인은 통제사 원균(元均)이 먼저 도망한 까닭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이날 밤에 수신은 거제 배 위에서 안위와 밤을 새워 이야기하였다. 그 이야기는 적군의 형세와 원균의 패전한 이유에 관한 것이다.
순신은 비분한 생각에 한잠을 못 이루고 그 때문에 안질이 났다.

3

이튿날 수사 배설(裵楔) 이순신을 찾아 왔다. 그 역시 원균(元均)이 패전한 까닭을 말하였다.
순신이 정성(鼎城)에 이르러 군사를 점검할 때. 도원수가 보낸 군사는 빈활을 메었을 뿐이요. 화살도 없고 말도 없었다. 순신은 이날 일기에『 ) (가탄가탄)』이라고 썼다.
팔월 초삼일 아침에 선전관(宣傳官) 양호(梁護)가 이 순신을 삼도 통제사를 하인다는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그 교서는 이러하였다.
『 』
이 글을 번역하면.
「왕이 가라사대. 슬프다! 국가 의지로 믿는 것이 수군 뿐이어늘. 하늘이 아직도 재화를 부족다 하시와. 적병이 다시 날뛰어 드디어 삼도 대군이 한 싸움에 다 하였으니. 이 앞으로 바닷가 성읍을 뉘 있어 보호하며 한산도를 이미 잃었으니 적이 무엇을 꺼리리오. 위급한 일이 조석에 달렸도다.
지금에 할 일은 흩어진 군사와 배를 모으고 급히 요해처를 정하여 큰 수군영을 지음에 있을 뿐이니. 그리하면 도망한 무리도 돌아 올 곳을 알 것이요.
날뛰는 적도 혹시 막을 수도 있으리로다.
이 책임을 맡을 만한 이는 위엄과 은혜와 재간이 전부터 내외에 신망을 받는 이가 아니고 어찌 감당하리오. 그런데 경은 전번 뛰어 대장을 삼을 때에 벌써 명성이 드러났고 또 임진년 대승전에 공업이 다시 떨치어 변방군사가 장성과 같이 굳게 믿던 배라. 접때 경의 벼슬을 갈아 죄명을 쓰게 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어 그러함이로다. 그리하여 오늘의 패전의 욕을 당하니. 또 무슨 말을 하며. 또 무슨 말을 하랴.
이제 특히 거상 중에 불러 내이고 백의에서 뽑아 내어 겸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도수군 통제사를 제수하노니. 경은 이 교서를 받는 즉시로 일변 있는 군사를 부르고 흩어진 이를 두루 찾아 해군을 조직하고 형승처를 점거하여 군성을 떨치게하라. 그러하면 흩어진 민심도 다시 안정될 것이요. 적도 우리에게 준비가 있음을 들으면.다시 제 마음대로 창궐하지 못할 것이니. 경아. 힘쓸지어다. 수사 이하로 다 절제하되. 만일 일에 임하여 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 있거든 다 군법으로 처단하라.
경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잊고 진하며 퇴함에 시기를 잃지 아니함은 이미 시험한 배라. 내 어찌 감히 여러 부탁을 하리오.
아아. 육항은 두 번째 하상을 지켜 잘 제치의 도를 다하였고. 왕손은 죄적에서 나와 능히 소탕의 공을 이루었으니. 더욱 충의의 마음을 굳건히 하여 나라를 건지려는 내 소망을 맞추게 할지어다. 이런 전차로 이에 교시하노라. 마땅히 알아 할지어다.』

4

순신은 교서를 받고 나라 일이 급하니. 일각을 지체할 수 없다 하여 즉일 발정하여 팥재 (팥재)를 향하였다. 초경에 행보역(行步繹)에 이르러 말을 먹이고 밤비를 맞으면서 다시 행보역을 떠나 팥재에 다다랐을 때에는 훤하게 동이 텄다.
쌍계동(쌍계동)에 다다르니. 개천에는 물이 창일하고 뾰죽뾰죽한 돌부리가 많아서 건너기가 대단히 위태하여 물이 지기를 기다리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순신은 건너기를 명하였다.
해가 저물어 구례현(求禮縣)에 이르니. 제전이 적연하여 무인지경과 같았다.
전에 들었던 북문 밖 주인집을 찾으니 주인은 산골로 피난하고 빈 집뿐이었다. 손인 필(손인필) 두 사람이 밤에 이른 감을 가지고 찾아 왔다.
초사일에 곡성(곡성)에 이르니. 역시 관군은 달아나고 백성들은 피난하여 관사와 여염이 텅 비었다.
이튿날 옥과 (옥과) 지경에 당도하니 피난하는 백성이 길에 찼다. 아이들을 업고 웃보퉁이를 지고 그 정경이 시로 참혹하였다. 피난민들ㅇㄴ 이 수닛ㄴ이 온단 말을 듣고 모두 길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순신이 오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어 통곡하였다.
순신은 말에서 내려 백성들을 gi하여. 피난을 가면 어디로 가느냐. 어디나 적병 없는 곳이 없으니 다 집에 있어서 일하고. 군사 되기를 원하는 자는 따르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서 장정 삽십여 명이 군사 되기를 자원하고 순신을 따랐다.
그리고 백성들이 이 통제사가 오셨으니 살았다 하고 다 집으로 돌아갔다.
순신이 옥과현에 들어 가는 길에 이 기남(李奇男) 부자를 만났다. 이 기남은 일찍 순신의 신임을 받던 군관으로서 원균(元均)에게 쫓겨 난 사람이었다.
기남의 아버지는 이 통제라는 말을 듣고 길바닥에 엎디어 순신에게 절하였다.
평소에 그 아들에게서 순신의 말을 많이 들은 것이었다.
이 순신이 읍에 들어 왔다는 말을 듣고도 원은 병이라 칭하고 나와 보지를 아니하였다. 순신은 군관을 보내어 현감을 잡아 오라 하였다. 그때에야 현감은 이 순신이통제사인 줄을 알고 황망히 순신의 여관에 와서 뜰에 엎디어 대죄하였다.
초팔일에 순천(順天) 지경에 드니. 병사 이복남(李福男)이 달아날 준비를 하므로 부하 사졸이 거의 다 흩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부유창(富有倉)에 다다르니. 병사 이복남이가 벌써 영을 내려 불을 질럿 그 많은 군량마조가 재가 되고 말았다. 순신은 이 광경을 보고 분개함을 마지아니하였다.
광양 현감(光陽縣監) 구덕령(具德齡). 나주 판관(羅州判官) 원종의(元宗義)가 창저(倉底)에 있다가 순신이 온다는 말을 듣고 비둘기재(기재)로 달아난 것을 순신이 전령하여 부르니 부득이하여 왔다. 순신은.
『너희가 국록을 먹는 관원이 되어서 나라에 일이 있으면 몸을 잊고 나서는 것이 도리어든.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달아나는 것은 무슨 버릇이냐!』
하고 엄책하였다.
구덕령. 원종의는 군법으로 처단될까 두려워 순신의 앞에 엎디어 사죄하고 목숨을 내어 놓고 순신을 따르기로 맹세하였다.
순천 부중에 들어 가니 인적이 적연하다. 중 혜희(惠熙)가 와서 순신에게 뵈오니. 순신은혜희에게 의장첩(義裝帖)을 주어 중을 모집하여 의병을 조직하라 하였다. 순천 성중에는 관사와 창고. 군기가 여전하였다. 병사가 이것을 처치하지 아니하고 달아난 것이었다. 순신은 군기를 내어 부하 각관에게 나눠 주었다.
이리해서 순신이 통제사 교지를 받고 진주 지경을 떠날 때에 겨우 부하라고 아홉 사람 밖에 없던 것이 순천에 이르러서 백명 가량의 무장한 군사를 얻게 된 것이었다.

5

팔월 구일에 이 순신은 순천을 떠나 낙안(樂安)에 다다랐다. 낙안에서는 순신이 온다는 말을 듣고 읍에서 오리나 되는 곳에 사오백명 백성이 나와 맞았다. 늙은이. 부인네. 아이들까지도 일찍부터 길에 나와서 아직 더운 볕에 땀을 흘리며. 우리 영웅 이 순신을 한번 보자고 순천 쪽을 바라보았다. 이 백성들 생각에는 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 적병이 전라도를 범치 못하더니.
순신이 잠시 통제사를 그만두매 적병이 전라도에 편만하였으니 다시 전라도에서 적병을 물리쳐 줄 영웅은 이 순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이 순신은 검소한 군복에 말을 타고 김응서가 선물로 보낸 큰 칼을 찼다. 순신을 따르는 군사들도 순천 군기고에서 얻은 군복과 군기를 가졌다. 모두 활과 전통을 메고 더러는 칼을 차고 더러는 창을 들었다. 오랫동안 창고에 넣어 두고 돌아 보지 아니한 군복의 야청 물은 날고 다홍 소매동에는 얼룩이 보였고. 더러는 좀먹은 자리. 쥐가 쏜 자리가 있고 구김살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래도 군사들은 좋은 장수를 만난 것을 기뻐하는 듯이 기운차에 우쭐거리며 걸음을 걸었다.
『통제 대감 오신다!』
하고 군중에서 누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길 가에와 나무 그늘에 앉았던 백성들은.
『어머? 어디?』
하고 모두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이 순신의 길고 풍부한 수염이 눈에 보일 만한 때에는 백성들 중에는 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장한 양반을 그 간신 놈들이 모함을 했어.』
하고 중얼거리는 갓 쓴 노인도 있었다.
순신은 백성들의 앞에 와서 말을 내렸다. 맨 처음에 읍하고 섰는 노인의 앞에 서며 순신은.
『어찌들 다 이렇게 나왔소?』
하고 물었다.
『통제 대감께서 오신다니까. 아침부터 나와서 기다리오.』
하고 그 노인은 잠간 고개를 들어 순신을 바라보았다.
『군수(郡守)는 어디 갔소?』
하고 순신은 다시 물었다.
『예.......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본관 사또는 어제 도망 하였삽고 병사또(兵史道)께옵서는 적병이 임박하였으니. 창고를 다 불사르고 백성은 피난하라고 영을 내리시와서. 어젯밤 본관 사또는 창고와 관사를 불을 지르고 달아났아옵고.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누구를 믿고 거접을 하오리까. 그래서 다들 부로 휴유하고 피난을 가려 하옵다가. 관속이나 부민들은 벌써 도망하옵고 소인네와 가난한 백성들만 어찌할까나 하고 방황하옵던 차에 통제 사또께옵서 이 고을로 행차 계시다 하옵기로 인제는 살아났다 하고. 이렇게 아침부터 나와서 행차를 고대하고 있소. 사또께옵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데도 소인의 참소를 받으시와 옥중 고행을 하시옵고 또 대고를 당하시다오니 무에라고 여쭐 말씀이 없소.』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순신은 노인의 말을 듣고 감개 무량하였다.
노인의 아들인가 싶었다. 젊은 사람은 노인의 손짓하는 대로 두어 식기나 들 듯한 검은 질그릇 술병과 백지에 싸고 지푸라기로 묶은 봉지를 받들어 순신에게 드렸다.
『이것이 술이요. 사또께 드릴 것이 없어 변변치 못한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소.』
하고 허리를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