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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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물은 다시 신입을 보고.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하는 비결은 험액네 웅거하는 것이니. 적은 군사로 평야에서 많은 군사를 만나는 것은 만무일리요. 만일 새재의 험액을 이용하지 아니 할진댄 차라리 물러 가 한강을 의지하여 서울을 지키는 것이 옳을까 하오.』
하고 진언하였다. 그러나 신입은 자부심이 많고 고집이 세어 김여물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만.
『영감은 염려 마오. 적군은 내가 당하리다.』
하고 호언하였다. 김 여물은 신입의 어리석음을 보고 분개하여 반드시 패하여 돌아가지 못할 줄을 알고 그 아들 유(濡)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
『삼........기』
라 하였다. 번역하면.
『삼 도에 군사를 불러도 한 사람도 오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다만 빈 주먹만 들었으니 사나이 나라 위해 죽음이 원래 할 일이어니와. 오직 나라의 부끄러움을 씻지 못하고 장한 뜻이 재를 이루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질 뿐이로다.』
충주를 막아 내이느냐. 못 막아 내이느냐 하는 문제는 곧 적군을 서울에 들이느냐. 아니 들이느냐 하는 문제다. 상주가 무너지고 적군을 넘겨 충주를 그 손에 맡길진댄 적군은 한걸음에 한강을 엄습할 것으로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서울서는 이 일과 신 입을 떠나 보내고 얼마쯤 믿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매일 대관들이 모여서 적군을 막을 방략을 토의 하였다. 혹은 두꺼운 철로 전신갑(전신을 싸는 갑옷)을 만들어 군사를 입혀서 총을 막자 하였으나 실지로 만들어 놓고 보니 무거워서 운동할 수가 없어서 버리고. 또 혹은 한강에 높게 착을 만들어 적군을 막자는 의견을 내는 자도 있었으나 그것도 총을 막지 못하리라 하여 파의 하고 말았다. 이 모양으로 저마다 묘책을 내노라 하였으나 쓸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십 칠일 석양에야 순변사 이 일이 상주에서 패하여 달아나고 상주는 적군의 손에 들어갔다는 신입의 장계가 올라 왔다.
이 기별을 들은 왕은 용상에서 발을 굴렀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하고 왕은 자못 황겁하였다. 이때에도승지(都承旨)이 항복(李恒福)이 가만히 좌의정 류 성룡의 곁으로 가서 왼편 손바닥을 내어 보였다. 거기는.
『立馬永( )』
라고 써 있었다.
『말을 영감문 안에 세웠다.』
는 말이니. 왕을 모시고 달아나자는 뜻이다. 류 성룡도 그 밖에 길이 없을 것을 생각하고 이항복이 말하는 뜻을 귓속으로 왕께 아뢰었다. 왕은 차마 먼저 달아날 말을 내이지 못하던 터이라. 곧 류 성룡의 말대로 하기로 결심하고 수상(首相)이 산해(李山海)에게 말한즉. 이 산해도 그럴까 하오 하는 뜻으로 대답하였다. 그리고 곧 메루리. 은금. 반찬. 보교. 걸음 잘 걷는 교군군 등.
달아나기에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기를 명하였다. 대궐 문으로 메투리 짐. 유삼.
보교 같은 물건이 들어가는 것을 본 종친들과 일반 인민들은 대궐문밖에 모여 통곡하였다.
『서울을 버리지 마오.』
하는 것이었다.